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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듐레어 May 31. 2024

That tea was good enough, Rose

TWG T6177. IT'S SO GOOD TEA

지난번 매직플룻 시음기에서 일본 TWG 쇼핑 에피소드를 잠시 언급했었다. 투썸에서 판매 중인 차들은 마실 기회가 너무나도 많으니 제외하고 정말 유명한 제품들 위주로 찍었는데 줄줄이 소분판매 재고가 다 떨어져서 구입이 불가능했다. 적어도 7개 이상이 ‘응, 그건 없어’였으니까 서로 민망한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틴케이스로 사 올걸 그랬나 싶긴 한데 양도 많을뿐더러 예산이 최소 두 배 훨씬 넘게 들었을 테니 자중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아무튼 홍차 위주로 추천해 달라고 해서 이것저것 시향하던 중에 “이건.. 로즈야” 하면서 열어준 게 바로 It’s so good tea. 하필이면 선호도가 낮은 편인 장미를 꺼내줘서 내심 실망스러웠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장미향에 한편으론 달달한 과일향이 오랜만에 로즈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가격은 50g, 1400엔.

너무나도 마리아쥬 소분 판매와 동일한 방식, 디자인.

공식 홈페이지 소개로는 진하고 풍미 있는 홍차에 상큼한 꽃잎과 몰캉한 베리를 슬며시 범벅했다고 나온다. 겨울의 오후에 곁들이는 완벽한 한 조각의 따뜻한 파이처럼 당신의 영혼에 빛을 비추고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줄 거라는데 과아연. 한국 TWG에서도 티룸에 가면 마실 수 있는 차인지라 이 차를 마시고 왔다는 후기를 몇 개 보았는데 대부분 위와 비슷한 한국어 소개에 기대를 품고 주문을 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론 심플하게 원산지와 블랜딩 재료를 적어두는 걸 좋아하는 편.

장미와 딸기

소분봉투를 열자마자 로즈가향이 확 올라온다. 루피시아의 풍선껌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명확한 에센스의 향이 섞여있다. 보통 가향이 어느 선을 넘게 되면 노골적으로 그 정도를 확 올리는 게 보통인데 특이하게 그 선을 넘어놓고 안 넘은 척하는 미묘한 레벨링이다. 그 와중에 고급스러운 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또 놀라운 부분이다. 이도저도 아니어서 자칫 불쾌할 수 있는 정도의 가향 레벨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어려운 구간에서 참 잘도 해냈다. 건엽을 덜어내 보면 딸기과육과 장미꽃잎이 홍차와 잘 블랜딩 되어있다. 홍차는 뭘 썼는지가 좀 궁금한데 케냐인가 싶다가도 아쌈인지 베트남인지 영 모르겠다. 뜬금없이 다른 홍차일 수도 있겠고.

대충 과자

6g, 300ml, 100도의 물에서 2.5분 우린다. 로즈향이 꽤 풍부하게 우러난다. 살짝은 크리미 한 뉘앙스도 있고 달달한 느낌도 나는 게 아무래도 위타드 잉글리시 로즈와 꽤나 비슷하다. 로즈가 꽤나 짙다고 생각하면서 한 모금 입에 머금어 보는데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훅 하고 꺼져버리는 로즈향이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옛날 루피시아 유메가 이런 쪽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쩌면 리뉴얼 전의 옛 유메의 대체품을 찾은 걸 지도? 스트로베리티에 가까운 맛이지만 입안에선 로즈티 특유의 산미가 딸기와 함께 시큼시큼 느껴진다. 쏘 굿까진 모르겠지만 낫 베드, 굿까진 거뜬히 확보. 집에 있는 걸로 차려먹다 보니 사진은 딸기초코 과자이지만 대체로 영국식 스콘과 잘 어울린다. 뻔한 조합이지만 뭐 그런 게 다 올디스 벗 구디스, 클래식의 힘 아니겠는가. 차는 그리 거칠지 않게 순둥순둥한 느낌이다. 맛도 그렇고 실론은 그래서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데 여전히 모르겠다.

가지가 많은 편이다. 엽저는 베트남스럽다.

한때 인사동에 가서 장미차를 시키면 아주 조그만 미니장미를 꽃봉오리째 네댓 개 넣어 우려 주던 때가 있었다. 로즈향이 근사하다고 느꼈던 게 아마 그 무렵인 것 같다. 지금은 로즈향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조금은 질렸달까. 되도록 구매하지 않는 향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로즈는 근사하다. 게다가 잘 블랜딩 된 로즈는 굳은 마음조차 결국에는 녹여내는 힘이 있다. 추천해 주었던 직원이 이거 향 괜찮다고 했을 때 It’s so good이잖아라고 했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답을 해주자면 so good을 주기엔 좀 아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말이지, “그 차 충분히 좋았어요.” 정도는 해 줄 수 있겠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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