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새들도 자요?”
“진짜 나무에게서 물 흐르는 소리도 나요?”
“도토리도 심으면 나무가 돼요?”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이 숲에 들어서자마자 질문을 쏟아낸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면서도 숲을 쳐다보며 걷는다. 눈에서 별이 쏟아진다. 나 역시 이곳에 들어오면 어린아이가 된다. 최대한 아이들 마음 가까이에 가야 숲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다. 숲 속의 소리에 집중해서 소리그물 수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나는 최대한 귀를 열어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큰 돌 위에, 벤치에 앉아서 귀를 쫑긋거린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언어를 버리고, 숨소리도 작게 내야 하며 움직여서도 안된다. 오직 귀만 열어둘 뿐이다. 떠들던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조용해진다. 하늘을 쳐다보니 키가 큰 갈참나무가 바람에 일렁거린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빗자루로 하늘을 쓸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아이들 귀에 들리고, 나뭇잎에 숨어있던 곤충들이 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계곡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가 입을 벙긋거리는 소리도 들린단다. 물결이 소리를 내고, 숲에 가을요정이 마법 부리는 소리가 들린다고도 한다. 아이들은 모두 귀가 밝은 천사들이다. 활동지를 나눠주고 나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았다. 종이 위에 쓴 수많은 숲의 소리는 어른들은 결코 듣지 못하는 마음속의 소리였다. 나는 숲을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앓고 있었던 내 마음의 병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숲을 통과하는 바람이 되어 있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숲의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자연지도사는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던 내게 또 다른 삶을 이어주는 세상과의 통로였다.
부산대학교에서 첫 자연실습을 할 때였다. ‘밧줄 따라 숲 속여행’이란 주제를 가지고 체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낙엽 더미 위로 밧줄들이 길이 되어 어지럽게 흩어졌다. 눈에 안대를 하고 조별로 천천히 밧줄을 잡았다. 땅에 밧줄을 잡는데 낙엽냄새가 확 올라왔다. 낙엽은 오래전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냄새와 닮아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따라가다가 나무둥치가 발에 닿았다. 나무의 딱딱한 외피가 손에 잡혔다. 우툴두툴하게 갈라진 나무 외피에 코를 대니 짙은 나무향이 올라왔다. 물기마저 말라버린 딱딱한 외피가 실핏줄이 선연하게 드러난 엄마 손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큰 나무둥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꽉 안았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나무에게 위로를 느끼다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나무에게 기억에도 없는 엄마 품을 느낀 것이다. 나무가 ‘너,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가슴 밑바닥까지 꼭꼭 숨겨놓았던 알 수 없는 응어리가 치밀어 오르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을 들썩이며 한참 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 내 안에 눈물이 그렇게 많이 고여 있는 줄 몰랐다. 누군가가 가만히 내 등을 토닥였다. 울고 나니 마음의 찌꺼기가 다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머릿속에 등불이 켜지고 가슴이 후련했다. 나는 낙엽 더미 속에 아예 벌러덩 누워버렸다. 낙엽더미 속에 가려진 구수한 땅 냄새와 귀를 간질이는 새소리, 바람에 낙엽이 사락사락 내리는 소리. 피톤치드가 품어내는 나무향기………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마음껏 숨 쉬고 싶었다. 이 숲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나는 그날 손끝으로 느껴지는 반질반질한 돌이며, 어린잎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습한 바람과 솔바람도 구분하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숲에 이토록 가까이 가 본 적은 없었다. 눈을 감고 보니 잃었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과 일체감을 갖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숲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그 이상의 신비한 세계였다. 내가 전부라고 말한 세상, 그것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소리 그물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곳에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다음은 ‘자연보물찾기’ 놀이였다. 이 놀이는 숲을 훼손해서 가져오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아이들은 보물찾기 주머니를 들고 각자 숲 속으로 흩어졌다.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숲에 널린 이 흔한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보물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물속에 들어가서 반질반질한 돌을 고르는 아이도 있고 나무에 걸린 새의 깃털을 가져오는 아이, 땅에 떨어진 나무열매들도 아이들에게는 귀한 보물이 된다. 아이들은 가지고 온 보물들을 둥글게 원을 만들어 하나씩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인도 그런 시인이 없다. 아이들의 언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시적언어들이 마음을 울린다.
“이건요, 새가 떨어뜨린 깃털이에요. 새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죠. 이건 우리 할머니 드릴 거예요. 이 돌을 다리에 문지르면 다리가 낫는 마법의 돌이에요, 이 도토리는 엄마에게 줄 선물이에요. 마당에 심으면 도토리나무가 되어서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제각각 마음속 이야기들을 풀어내었다. 그런데 한 여자 아이는 보물 주머니 안에 아무것도 없단다. 왜 없냐고 물어보니 이 숲 전체가 보물이어서 주머니에 넣지 못했다는 거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다. 숲을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그래서 담을 수 없었다는 아이, 난 오늘 그 꼬마 철학자에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현대문명에서 벗어나 숲 속의 보물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 보물을 발견하면서 선물할 상대를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큰 위로를 받는다. 나는 비로소 숲을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직접 나무를 만져보고 느낀 감정들은 숲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숲에 마음을 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은 어느새 여유로워지고 넉넉해진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나쁜 감정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들을 보내고 다시 숲으로 들어왔다. 내일 ‘나무의 일 년’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수업하기 전에 내가 체험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두발을 어깨너비로 벌렸다. 허리에서 커다란 뿌리가 뻗어나가는 것을 상상한다. 뿌리는 무릎, 발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뻗었다. 몸을 앞뒤로 흔들어본다. 단단히 땅을 잡고 있는지 본다. 나는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한다. 햇빛을 받아들여 공기와 대지에서 빨아올린 물로 양분을 만든다.
수첩에 기록하고 나니 내일이 빨리 기다려진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예전의 나는 동굴에 갇힌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빛을 비춰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 이제 남아있는 시간, 소망이 있다면 마음속에 한그루의 나무를 키우고 싶다. 가지 하나를 내밀어 작은 새를 쉬게 하고, 돋아나는 풀꽃에게 내 자리를 빌려주고, 내가 뻗은 뿌리에 기생하고 있는 온갖 생물들에게 양분을 나눠 주고 싶다. 나무처럼 타인을 돌보는 삶, 그런 나무들이 하나, 둘 모여 숲이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생명의 숲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숲을 꿈꾼다. 어느 듯 해가 숲 사이로 빛기둥을 만들고 있다. 나는 오늘도 가슴에 아이가 말한 보물 같은 숲을 품고 내려간다. 나는 내일 또 이 숲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