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신호소에 기차가 멎었다.
3시간 남짓 달려간 니키타 현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즈음이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곧이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눈 세상이었다.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던 여행이었던가? 타카한 여관은 개 증축해서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넓은 로비를 지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방이 보고 싶었다. 작가의 창작적 고뇌가 느껴지는 그 공기를 맡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서니 작고, 보잘것없는 텔레비젼 한 대, 탁자와 의자, 그리고 다기가 보였다. 작가는 이 허름한 방에서 설국을 집필했을 것이다. 작가는 창밖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설국의 이미지처럼 현기증 나는 삶을 허무한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을까? 어느새 밤이 오고 있었다. 밤은 어두워질수록 더욱 푸른 빛이 났다. 나비처럼 서서히 하강하는 눈을 바라보니 꿈인 듯 마음이 아련했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가슴 언저리가 아팠다. 료칸에서 준비한 흑백 설국 영화를 보고 우리는 온천으로 갔다. 목조로 만들어진 온천은 게이샤의 이름을 본따서 “고마코 온천" 이라고 했다. 소설 속의 요코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목욕하면서 노래를 불렀다지. 시마무라의 눈빛은 젖어오고 우수의 그늘이 드리워진 요코의 신비감은 시마무라의 마음을 잡아두기에 충분했으리라. 야외 온천에서 꿈에도 그리던 목욕을 하게 되었다. 눈은 머리에, 등위에 떨어졌다. 물은 뜨겁고,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푸른 밤, 눈발이 날리는 뜨거운 욕조, 나는 어느새 소설 속 고마코가 되었다. 목욕하고 마을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했다. 개울물 사이로 뽀얀 더운 연기가 올라왔다. 어디서 찬 공기를 가르고 오르골 소리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천상의 소리였다. 나는 푸른 빛이 나는 밤을 가슴에, 눈에 담고 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