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롤로 May 07. 2021

나는 임파선 결핵 환자다

한 달간'오늘' 기록 프로젝트

나에겐 '작은 스트레스 주머니'가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왼쪽 목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5년 정도 있었는데, 한 번의 조직검사와 CT로는 정확하게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쉬어주면 다시 작아졌고, 스트레스를 좀 받거나 피곤하다 싶으면 다시 커졌다. 하나의 멍울은 두 개가 됐고, 올해 두 개의 멍울은 더 큰 멍울이 되었다.


결국, 올해 임파선 결핵 즉, 결핵성 말초림프절병증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결핵 치료는 결핵약이다. 결핵약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최소 6개월은 먹으며, 치료를 해야 한다. 결핵 치료 방법은 결핵약이다. 천천히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며 치료해야 한다.




나는 임파선 멍울 수술도 받았다. 멍울이 커지면서 피부도 빨갛게 됐고, 이쯤 되면 피부가 상하기 시작한 거라 교수님은 째서 죽은 조직을 빼내자고 하셨다. 안에서 고름이 터지면 피부는 화상 입은 것처럼 더 상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중에 흉터가 남든 안 남든 빨리 이 멍울을 처치하고 싶었다. 그동안 지긋지긋했고, 몸 상태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졌다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원인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원인을 알 수 없어서 이 멍울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교수님 진료 날 바로 째기로 했는데, 만만하게 생각했다. 조직 검사 때도 아팠지만, 이건 아픈 것 이상이었다. 국소 마취를 했어도, 찌릿찌릿 머리까지 끝까지 꽂히는 통증과 무언갈 빼내는 데 신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결국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는 힘이 풀렸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통증에도 약한 사람이고, 호들갑도 잘 떤다. 그러니까 나는 겁보에다가 쫄보다. 그러니 이 상황이 더더욱 공포스러울 수밖에...! 물론 신뢰하는 교수님이지만, 제대로 하는 게 맞을까,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호옥시나! 정말 의료사고라는 게 나면 어쩌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오빠는 이 사태를 알아야 할 텐데 등 그 와중에 오만 생각을 다했다.


"선생님.. 눈 앞이 안 보여요"

"선생님.. 몸에 힘이 풀려요.."

"선생님.. 식은땀이 나요.." 등등 선생님을 하도 불러댔다.


하다 못해 손이 너무 시리다고 했다. 사실 누가 내 손을 꼭 잡아줬으면 했다. 혈압이 떨어지면서 혈액순환이 안 돼서 그런지 손이 유독 시렸다.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분들이

"네네 괜찮아요~ 조금만 이따가 할게요 네네 심호흡하시고요~ 이제 잘 보이세요?"라고 하며, 나를 달랬다.  


결국 잠시 중단하고, 혈압 체크하고, 정상 혈압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전신마취를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수술 날짜 잡아두고, 몇 주 사이에 멍울이 터질 수도 있고 해서 급하게 하게 됐다. 이렇게 통증이 심할 경우, 나처럼 정신을 잃을 뻔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몇 분간 쉬었다가, 다시 수술을 진행했고, 죽은 조직들을 빼냈다. (내 기준에서)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를 했고, 고개를 드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온몸에 기운도 다 빠진 상태였다. 이날 오빠랑 같이 가서 천만다행이었다. 혼자 갔다가 대중교통으로 집에 가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목에서 빼낸 조직들로 결핵 검사를 다시 의뢰했는데, 양성이 나왔다. 결과가 확실히 나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핵으로 판정 났다. 결핵약이 또 두려웠는데 오늘까지 12일째 먹고 있다. 결핵약은 부작용도 심하다.


사실 지금은 결핵약도 약이지만, 수술한 목에 드레싱 받으러 가는 게 일이다. 편도 1시간 반 거리의 병원을 수술한 날부터 계속 다녔다. 그러다 이틀은 집에서 드레싱 하고, 오늘 병원에 세척 겸 드레싱을 하러 갔더니 염증이 살짝 생겼다고 한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괜찮다, 괜찮다를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괜찮지가 않다.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겠지? 해서 외출을 하면 괜찮지 않고, 집을 나서는 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억지로 억지로 몸을 끌고 병원을 갔다가, (지금 내 유일한 밥줄인) 회의에 참석했다가 몸을 겨우 이끌고 집에 돌아왔더니 기진맥진이다. 가장 속상한 건,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 때 글을 쓰게 된다. 글을 찾게 된다.


아마 한동안 내가 쓰는 글은 '앓고 있는 병과 일상'이 될 것 같다. 멍울 때문에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속상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울적해져서 우는 날도 많았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일뿐이니까. 그리고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2. 딸은 시집가면 끝이데이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