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할머니가 되더라도 결혼 대신 사랑을하련다
나는 지금 꽤나 평온한 상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인생에 대한 조급한 마음도, 주변 결혼 소식에도, 자녀 소식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고, 소중하다.
나는 30대가 되면서 결혼에 대한 꿈이 있었다. 물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갈망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건강을 잃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다. 내 몸 하나 성치 않은데, 일도, 결혼도 무슨 소용일까. 애쓴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이성이 아닌 감정이기 때문에, 그저 밀어닥치는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됐다.
결혼, 묵직한 무언가
서른에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100이었다면, 서른한두 살이 되면서 그 마음도 서서히 줄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였다. 일은 물론 육아도, 양가 부모님도, 여기에 살림까지 다 잘할 수 있을까? 물론 잘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은 내 욕심이고, 어떤 역할이든 칭찬받고 싶은 내 욕구 때문이겠지.
여하튼 어느 순간, 결혼은 내게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현실을 알게 된 것 일수도. 이따금 집에서 걸려온 결혼 독촉 전화는 가끔 숨 막히게 했다. 결혼이 인생에 전부인가, 결혼이 뭐길래...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결혼 대신 사랑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의문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 좋을 뿐이다. 대신 사랑을 하고 싶다. 콩닥콩닥 가슴 설레는 사랑이 아니라 매일 서로의 생각을 묻고, 감정을 나누고, 별 거 아닌 일로 꺄르륵거리고, 이상한 외계어를 남발하고, 이상한 춤을 춰도 웃어주고, 음란마귀가 씐 농담을 해도 받아주는 사랑.
일이 바빠도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꿈을 많이 꾸는 내게 ‘오늘은 꼭 좋은 꿈 꿔’라 말하고, 식당에서 나온 생선 구이를 잠깐 화장실 간 사이 발라 놨다거나 큼직하게 나온 겉절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거나, 들꽃 한 송이라도 건네주거나,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길어졌거나 일 때문에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 잠들지 않고 기다려주거나, 작은 케이크에 생일 초 켜고 함께 불어준다면, 내 사랑은 그걸로 족하다.
그럼 나는 내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거다. 당신의 생일에 꽃 선물을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하고, 일이 힘들거나 동시 다발적으로 그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생겨서, 내게 소홀해지더라도, 괜찮다며 그를 다독여줄 것이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어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함께 공감해줄 것이다. 하루의 끝에서 짧은 통화라 할지라도 찰나의 위안이 되길 바라며, 잠들기 전 그의 앞날이 조금이나마 평안하길 기도할 것이다. 이게 내 사랑법이다.
몇 개월 뒤, 서른셋이 되겠지만,
그러다 서른다섯이 되겠지만,
칠십 할머니가 되더라도 결혼 대신 사랑을 하련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하루의 끝에서 서로의 위안이 되어주고,
그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단단해지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