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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shin Jun 28. 2024

그냥 어느날


"어린 물고기가 나이 많은 물고기에게 물었다.

"바다라고 하는 그 멋진곳을 찿고 있어요."

"뭐어? 바다?"

"지금, 너있는 이곳이야!"

"뭐라고요? 여긴 물이잖아요?"

어린 물고기가 대답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Soul)에서 음악만이 삶의 이유이며 목적이었던 주인공, 조가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도로시밴드에서 멋진 재즈피아노 협연을 마치고도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낄때 도로시가 해준 이야기이다. 어느날 이 짧은 도로시의 물고기 이야기가 내 뒤통수를 쳤다. 나 역시 그냥 "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쓴 물인 날도 많았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대단한 꿈을 꾸며 용쓴적은 별로 없었지만 나도 바다를 찿았었나보다. 서울시 영등포구 시흥동 118번지 5통3반. 그 서울 변두리에서 22년간 살았던 촌닭이 11,000km 태평양을 넘어 미국, 아름다운 나라, 캘리포니아에 와있으니 그 정도면 출세한 것이겠다. 들리지 않는 영어로 맴맴대다 겨우 졸업했지만 그래도 석사 졸업장은 받았고 취직도했으니 그것 또한 과분하고, 독수리 쾅 찍힌 카리스마 넘치는 미국여권도 갖고있고, 뒤늦게 가정도 이루고, 거기다 무자식이니 완전 상팔자 아닌가.


그럼에도 고단함과 외로움, 우울감과 소갈되지 않는 갈증이 항상 있었다. 어디도 내 나라가 아닌것이 타국인처럼 불편하고, 그렇지만 어딘가에 깊이 속박되는것도 더이상 원치 않았다. 부러진 쇄골로 병원수속중에 후에 나올 미국병원비에 겁이나 다시 오겠다며 급히 나와버린 그 무식함과 용감함, 한국병원을 찿았고 시간이 지나니 쇄골은 다시 붙었고,  더한일로 몇 차례 병원을 들락날락했지만 지금껏 살아있다.  




나의 이민역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땅에서의 삶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스스로 물어보며 살았던, 뭔가 있어보이는 듯한 이러한 질문에 또한 뭔가 있어보일듯한 많은 답변들은, 압력밥솥 김 빠지듯, 잠시 요란스럽게 난리 부리다 마른 물자욱만 남기는듯했다. 아직 마무리 짖지못한 삶의 과제들과 함께, 직업상 노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정확히는 그 안에서 나를 대면하게 되면서부터가 좀더 가까울듯하다.


내가 뵙게되는 어르신들은 대개 70대에서 90대에 해당하신다. 다들 각자들의 바다를 동경하며 젊으셨을때 조국을 떠나오신 이민 1세들이거나 먼저 온 가족의 초청으로 오신분들이다. 내 인생, 내 이민역사의 대선배들이시다. 이제는 신체적으로 나약하시고 정신적으로도 우울증, 불안증, 혹은 전쟁 트라우마를 겪으시는 분들도 계신다. 사골국을 끓이시다 불을 끄는것을 잊고 나오셔서 연기로 소방차가 주인없는 노인아파트로 달려오기도 하고, 열쇠를 옷주머니에 넣고도, 두고 오셨다고 당황해하시기도 한다. 이러한 인지변화에 혹여나 몹쓸 치매라도 걸리면 어쩌나하는 염려에 나도 그렇다고 하면 잠시지만 위로를 얻으신다. 그분들의 옛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도 곱고 멋진 그시절들이 참으로 야속하다.


오늘 약을 드셨는지는 깜박거리셔도, 일제 강점기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노래들, 광복의 기쁨으로 온동네에 벌어진 잔칫날들, 일사후퇴때 피난중에 아군의 폭격에 맞아 죽게된 어린 동생이야기, 초면의 피난민들을 집에들이며 거저 먹여주고 재워주던 잊지못할 은인들, 이산가족 상봉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오르시나보다. 나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듯 듣는듯, 산증인들의 이야기 한국현대사를 들으며 내부모의 이야기도 함께 엮이고 내 나라의 슬픈 과거에 마음이 아파진다.


초기 이민생활 이야기 보따리도 끝이없이 풀어진다. 남편의 과거 바람핀 이야기나 가난해 남의 집 부엌살림하며 자식 키웠던 일들도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제는 승전가가 되어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려있고 눈빛이 살아 움직인다. 사실 숫한 승전가를 대하며 사이사이 묻어나는 아픔과 외로움, 쓸쓸함은 전사들이 애써 부인해도 내 마음에 파고들었다.




이민생활에서의 일련의 이러한 조우들이 나를 무색케 만들고 짠하고도 찐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정직한 답은 그냥 사는 것이다. 그냥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여긴 그냥 물속이잖아요" 했던 그 어린 물고기는, "지금 네가 있는 이곳이 네가 그렇게 찿고 있었던 바다야"라고 말해준 나이 많은 물고기의 말을 그때 알아들었을까. 아마도 좀더 해초, 산호초에 얽히고 치이고, 더 큰 물고기들로부터 도망다니며 어부의 그믈망에도 걸려보고, 산전, 공중전은 아니겠지만, 온갖 수전정도는 치르고 나서야 겨우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그냥 물속이라고 생각했던 그냥 어느날들, 무미 건조했던 날들, 헤매었던 날들, 버텨낸 날들, 이런 모든 날들도, 실상은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얻어낸 날들이다. 짧긴 했지만, 즐겁고 기뻤던 날들과 함께. 하루하루의 연속들이 그렇게도 갈망하며 찿았던 우리들의 삶의 한복판이다. 부와 명예와 성공과 업적만이 박수받을만한 것이 아니다. 전쟁, 가난, 생이별을 치르며, 이민생활에서의 다른 격전과, 새벽녘 피난중 잃어버린 가족의 환영에 눈물고이던 인생 대선배의 아픔과, 여전히 치고받고 싸우며 또 먹고 웃으며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난생처음 스노클링을 했던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푸른 수면속으로 뾰족뾰족한 산호초들과 흐믈흐믈한 해초들, 해저 사방팔방에 떼지어 다니던 크고작은 총천연색의 열대어들... "꼬마 물고기야, 지금 네가 있는 이곳이 그냥 물속이 아니란다! 네가 찿아 헤메며 경이롭고 위대할것이라 생각했던, 바다, 그 삶의 한복판에 지금 너와 네가 있는거야! 우와!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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