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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Jul 12. 2017

장거리연애의 시작

평범한 국제결혼 이야기(2)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니 국적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짝이 된 친구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열적이고 감정표현에 솔직한 남미 남자들의 아시아 여자에 대한 애정공세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무척이나 개방적인 연애와 성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느닷없는 들이댐과 스킨십은 그냥 가벼운 호기심 정도로만 여기고 상대하지 않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헤어져야 할 게 뻔한데,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과의 연애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진심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고백에 대한 답변은 미룬 채, 그와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나는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떠났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거란 생각과는 달리,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김없이 그의 안부 메시지가 와 있었고, 매일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나보다 먼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라는 다르지만 비슷한 환경에 있는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무엇을 느끼고 있을지를 알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외로웠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와의 대화는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갔다. 


특히나 인터넷은 커녕 전화 안테나도 없는 지역으로 옮겨가고 나서는 그와의 대화에 대한 (어쩌면 그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다. 이렇게 연락 없이 지내다가 그와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지, 이미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온갖 상상과 걱정으로 혼자 소설을 쓰고 마음 조리며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도시로 나가 볼일을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이런. 기대하지 못했던 그의 목소리. 무인도에 혼자 지내다가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에 나갈 때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그의 전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당시 같이 지내고 있던 친구 말에 따르면 그와 통화를 하고 난 후 내 입꼬리가 하늘을 치솟았다고...)


그렇게 멀리 떨어진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모잠비크에서의 6개월이 지나갔다. 그 사이 그는 미국에서의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가족이 있는 브라질로 그리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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