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소크라테스

나를 가장 공격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by 한수정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 시기에 특히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쳐서 너무 힘들었다. 궁핍한 현실이 심리적으로 더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고충에 대해 토로하자, 상담사가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때를 어떻게 지나는 게 지혜로울까요?”


그러게요.

위기가 기회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

그런 말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뻔하지만 진리인 말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 해보자는 게 있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보고, 예전에 제가 적극적으로 안 해서 흐지부지된 것도 이번에는 좀 더 열심히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상담사는 내 말에 미소를 보였다.


“현실의 문제에 수정 씨가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내면의 힘이 자랄 수 있을 거예요. 결과가 어찌 되든 대처했던 행동 방식들이 쌓이는 과정에서 내가 단단해지거든요. 심리적인 에너지가 바뀌면 일이 바뀌기도 해요. 울상 짓고 있으면 될 일도 안된다고 하잖아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맥락인가.


"현실의 문제는 곧 사건이에요. 그 사건을 해석하는 내 생각이 지나가면 감정이 변하고 또 어떤 행동들을 하게 돼요. 나는 그래서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을 느꼈고, 뭘 했지? 이 현실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있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말이죠.

그동안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볼래요?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래서 내 행동들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객관화해 주는 거죠. “


어려움에 닥쳤을 때의 최근 내 생각과 감정을 돌이켜보았다.

요즘 많이 힘들어졌는데 그러고 보니 재작년쯤에도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것 같네.

직장 그만두고 몇 년 동안 돈을 별로 못 벌었는데 난 그동안 뭐 한 걸까?

그때 퇴사하고 나서 싫어도 바로 어디라도 다닐걸.

아는 사람한테 회사 소개받았었는데 너무 고민 말고 그냥 받아들일걸.

이럴 걸 저럴 걸 하는 후회......

하지만 이미 지난 일과 시간에 대한 후회는 소용이 없다.


내 행동을 그냥 평가 없이 관찰할 때 내가 나를 이해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하는 거거든요. 내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이 있고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그걸 보면 바꿀 수 있어요.

그런 답답함과 후회에 대한 감정을 수정 씨 스스로 1~10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얼마나 될 것 같으세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9나 10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담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9~10이었으면 굉장히 힘든 건데, 그래서 뭔가 의지가 안 생겼을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힘들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있는데, 수정 씨는 그렇지는 않네요. 이 어려워진 상황에 표면적인 분노도 있을 텐데, 이 문제를 나한테 갖고 와서 내가 그때 안 그만뒀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하면서 그걸 스스로에게 공격하는 스타일인 거예요.”


남을 탓해봐야 소용이 없고, 결국 내 선택으로 지금 이렇게 된 거니까 내 탓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탓했으면 좀 덜 힘들었을까?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탓하고 미워하는 나 자신이 또 싫었을 것 같다.


상담사는 말을 이어갔다.


“감정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조절만 하는데, 생각은 내가 통제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생각을 반박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럼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됐네, 하면서 답답하고 후회하는 생각 말고 어떤 생각이 수정 씨에게 이로울까요?”


“뭐라도 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뭔가 변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렇죠. 없는 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 변화에 대한 시도가 기회가 될 수 있겠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죠. 이런 변화의 기회에 대한 생각을 하면 감정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의욕적으로 될 수도 있겠죠? 변화에 대한 설렘까지는 모르겠고, 기대 정도에 가까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러면 이로 인해 행동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좀 적극적으로?”


“네. 뭘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의욕적이라는 단어와 이 감정이 행동을 하게 해요. 의욕이 생겼으니까 이번에는 이렇게 바뀐 거죠.”


예전에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흐지부지됐던 일을 최근에 다시 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렇다 할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물을 하나 만들었고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이 변화였다.


“사건은 통제가 안 되니까 돈이 없는 현실을 지금 당장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그에 대한 후회나 답답함에 머무는 게 아니라, 생각을 내가 컨트롤하는 거죠.

그러니까 현실 문제가 다가왔을 때 기존의 내 생각을 반박하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의 생각으로 반박하면서 변화시켜 주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내 감정이 바뀌고 그게 의욕적인 행동으로 나올 수 있겠죠.

이게 내 자원이 되는 거예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이자 굉장히 소중한 자원인 거죠.”


최근의 일을 생각해 보면 상대가 먼저 이렇게 해보자, 저런 거 해야 한다, 해서 거기에 동감하고 같이 하는 쪽에 여전히 더 가깝기는 하지만, 전보다 조금은 나도 의욕적으로 응답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느리긴 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전의 나보다 주도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는 맞다면서 그럴 때 내가 힘이 생긴다고 말해주었다.


“지금 수정 씨가 프리랜서로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엄청난 자원인데, 그걸 돈이라는 가치의 기준으로 봐서 너무 소중하게 안 보는 것 같아요.”


사실 많은 것들이 돈이나 결과라는 가치로 보면 보잘것없는 것 같고 애매한 것 같아서 이 부분이 나에게 쉽지 않기는 하다.

인정 욕구가 있는데 그걸 충족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 문제가 생긴 것 같고. 이것도 자동적 사고에 해당하나 보다.


“아까처럼 내가 나에게 길을 만들어주다 보면 나의 인식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어요. 그 과정을 경험하면 이것도 마찬가지로 바꿀 수 있어요. 현실은 하나도 안 바뀌었지만 내 생각이 바뀌고 감정이 변화되면서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 있거든요. 내가 나에게 소크라테스가 되는 거예요.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면서 소크라테스가 된다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나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살면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상담이 끝난 얼마 후 친구에게서 알바를 하나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팝업스토어 판매 알바였다.

솔직히 예전의 나였다면 거절했을 일이었다.

판매 같은 일은 해보지도 않았고, 내가 당연히 잘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괜히 친구한테 민폐만 끼치지 않을까? 난 이런 거 잘 못해. 그러니까 안 하는 게 낫겠지.'


원래의 나였다면 이게 자연스럽고 맞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즉답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경제적으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기도 했다.

친구는 내가 궁금해하거나 걱정할 만한 점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래. 친구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나한테 같이 하자고 했겠지.

비록 이 분야에 경력은 없지만 처음부터 경험 있는 사람이 어딨겠어.'


제안해 준 친구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하며 수락의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이나마 의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뀌어가는 노선에 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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