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기억이 일깨워준 것
어떤 사람은 질책받거나 직언을 들으면 그 말에 저항하기 위해 오히려 우뚝 일어선다고 한다. 나는 어떤 쪽인가 하면 시무룩해지고 혼자 동굴을 파는 타입이다. 그에 반해 칭찬이나 격려를 받으면 고래가 춤추는 것처럼 기운을 얻고 더 잘하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게 내가 약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생각했다.
"수정 씨의 경우 정서 문제가 있지는 않아요. 다만, 남에게 휘둘릴까 봐 불안이 있어서 주체성을 높이는 게 필요하죠. 본인도 그걸 원하고 있고요. 이게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주장을 훈련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표면을 다룬다고 바뀌는 건 또 아니에요."
하긴 몇십 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한 번에 바뀐다면 거짓말이겠지.
"주장성을 높여야 되긴 하는데, 그러려면 수정 씨를 더 많이 지지하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게 필요해요. 그 경험이 자신감으로 쌓여서 응축이 될 때 뱃심처럼 힘이 될 거예요."
상담사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질책에 약하고 격려에 힘을 얻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그 뱃심이라는 게 그런 지지와 공감 같은 심리적인 경험으로 인해 딱히 바뀐 게 없는 것 같지만 내 안에 ‘코어’가 자라는 과정일 거라고 이해했다.
"제가 저번에 수정 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잘 정돈된 편이라고 했잖아요. 자기 마음을 기탄없이 꺼내보면 어떨까 싶어요. 내가 이때 이런 게 참 힘들었지 하는 얘기부터 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그냥 하려면 좀 막연할 수 있죠. “
그러면서 상담사는 상담 사전에 내가 썼던 문장완성검사지에서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말해주었다.
그중에 ‘나는 어머니를 좋아했지만 지금 살아계신다면 어쩌면 나와는 그리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썼던 부분이 어머니에 대한 태도인데, 왜 그렇게 썼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 얘기가 나왔고, 가정환경이라든지 가족사 얘기로 흘러가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열네 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재혼 가정의 삼 남매 중 막내로 자랐는데 오빠, 언니와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내 기억 속에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일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교 후에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쉬시는 날 엄마는 침대에서 영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체력이 좋은 분도 아니었는데, 집안 살림을 하면서 호프집까지 운영하느라 매일같이 밤늦게 들어오시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번은 엄마가 침대에 누워 계시는 안방 문 앞에서 학교에서 배운 '어머님 은혜'를 리코더로 연주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힘든 엄마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었다.
'이걸 들으시면 기운을 얻고 나를 기특해하시겠지?'
그런데 곡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시끄러우니까 그만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엄마는 피곤해서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으셨을 텐데 내가 내 생각만 하고 방해를 한 셈이었다. 나는 죄송한 마음과 함께 금세 기가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적에 크게 관여하거나 닦달하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 공부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해주시려고 하는 편이었다. 내가 수학을 못해서 '눈높이 수학' 학습지를 시켜주시기도 했고, 보습 학원에 다니게 해주시기도 했다. 그 보습 학원에서는 과목별로 학습 비디오도 팔았는데 그것도 한 박스 구입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독서를 좋아한다는 걸 아시고 명작 도서 전집을 사주신 적도 있었다. 한 권씩 독파하면 좋았을 텐데 이게 몇십 권이나 되다 보니 좋아하는 책 몇 권 외에는 손도 안 댄 책도 많았다.
또 내가 어땠는가 하면, '눈높이 수학' 학습지의 경우 수업을 받지 않은 날이 많았다. 방문 교사가 중년 남자였는데, 친절한 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이 무서웠다. 게다가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자체도 싫어서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집에 아무도 없는 척했다.
보습 학원은 친구들과 함께 다녀서 학원 수업은 비교적 잘 출석한 편이었지만, 학습 비디오는 거의 꺼내보지도 않은 채 집에서 묵혀두기만 했다.
도서 전집도, 학습지도, 비디오도 떠올리기만 하면 덮어둔 숙제 마냥 괜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 때문에 매일 힘들게 일하시는데... 내가 저걸 안 보면 엄마가 피땀 흘려 버신 돈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데도 행동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부채감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갑작스러운 사고였는데, 병원에서 치료하는 과정 중 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여러 모로 오래 사시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엄마보다 오래 살고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스러워진다.
그때의 엄마에게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그때의 엄마에 비해 나는 얼마나 미숙한가.
엄마는 그렇게도 악착같이 열심히 사셨는데, 나는 엄마의 반도 못 따라가고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내가 열네 살에 돌아가신 것 외에 상술한 이야기는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것이므로 상담에서는 말하지 못했다.)
상담사는 엄마가 계속 일하셨고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마도 내가 지지받는 경험이 부족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엄마와의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중학생이면 어느 정도 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리다고 할 수도 있는 나이다.
엄마를 그렇게도 각별한 존재로 여겼으면서 이상하리만치 남아있는 기억이 많지 않다. 대부분 좋았다기보다는 내가 후회하고 안타까운 쪽이 많다.
내가 엄마와의 기억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고 하니까, 상담사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예시로 들면서 핵심 기억에 대해 말했다.
"그 핵심 기억이 좋으면 평생 가고 나를 지지하는 힘이 돼요. 그런데 그런 게 없다면 어떨까요? 쓸쓸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유추해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의 무수히 많은 내가 있는데 그런 데서 좀 취약한 모습들을 이야기하면 이게 객관화가 된다고 말이다.
내가 가족사와 엄마에 대한 내밀한 얘기를 꺼냈을 때 후련했던 것처럼 그렇게 웅얼거리고 있는 것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때 그게 나의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서 말해보는 경험이 나의 힘이 되고, 그게 자꾸 쌓이면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게 되고, 나의 주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상담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우는 걸로 시간을 날릴 수는 없어서 최대한 빨리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상담을 받다 보면 언젠가는 가족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예전에 에세이 소모임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한번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로 하는 것과 말로 하는 건 달라서인지 예상 밖에 또 눈물이 나와서 스스로도 살짝 당황했다.
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워해주었고, 나의 주체성 높이기와 맞닿아있는 가족사 얘기라고 말해주었다.
오늘 상담이 어땠냐고 묻길래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내밀한 얘기를 꺼낸 것에 대해 후련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 말에 상담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것 자체가 보이지 않게 주체성이 있는 거예요."
아마도 내가 그걸 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주체적인 선택들이 수정 씨가 어쩔 수 없이 영향받았던 환경들로부터 수정 씨 자신을 더 떨어뜨리는 데에 도움이 될 거예요."
상담을 통해 답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상담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내가 보습학원에서 끝나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날이었다.
학교 다닐 때 하교 시간에 갑작스레 비가 오면 내가 항상 바라는 작은 소원이 있었다.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맞벌이로 바쁘시다 보니 내 바람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학원에서 늦게 나왔던 그날, 집에 가는 길 중간에 엄마와 만났다. 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내가 집에 오지 않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마중 나오셨던 것이다. 그렇게 늦은 적이 없었는데 밤 시간에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불안하셨을 것이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걱정시켜 드려 미안하면서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에 약간 생소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것 외에도 좋은 기억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주로 기억하는 건 후회하고 안타까운 기억들이 더 많고, 그마저도 마치 필터를 씌운 것처럼 흐릿한 느낌이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엄마와의 14년을 다시 살아보고 싶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억할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렇게 떠오른 기억만이라도 되새기고 기록해두려 한다.
나도 사랑받고 지지받았었다고, 그걸 잊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