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바꾸는 게 어렵다면 이것부터 먼저

나는 나의 보호자여야 한다.

by 한수정

원래대로라면 몇 회차가 더 남아 있었지만, 상담사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 날이 마지막 회차가 되었다.


"지난번에 재정적으로 힘들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친구에게 제안받은 알바를 시작한 일을 말씀드렸다.


그 사이 또 하나의 이슈도 있었다.

어떤 원고를 고쳐야 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피드백이 내가 원고를 넘긴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왔고, 수정 기간이 꽤 촉박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없어서 수정 작업도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이 나눠서 진행하게 되었다.

지난해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실제로 흘러가는 과정과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때도 수정 작업을 여럿이서 같이 했는데, 내가 온전히 다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 같아 괴로웠다.

예전 같았으면 이번에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아마도 그때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달랐던 점은 내가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게 내 탓만은 아니야. 중간에 피드백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받지 못했고, 어찌 됐건 나는 마감을 맞췄어. 비록 퀄리티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 한 거야. 어차피 모든 사람에게 100% 마음에 드는 것이란 없어. 그러니 나 혼자 자책하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 부담을 덜자.'


물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일이 안 힘들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나 혼자 짊어지고 스스로 자책감을 가졌던 지난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었다. 생각을 바꾸자, 근소하게나마 스트레스의 무게가 덜어진 것 같기도 했다.


"자기 문제로 가지고 와서 자책감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네요. 너무 잘하셨어요! 그렇게 내가 나의 보호자가 되면 되는 거예요."


상담사는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주었다.

그 말에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학생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수정 씨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서 글 쓰는 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어요. 어떤 내적 희망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셨을 것 같거든요.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 등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꿈꿨다.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쩌다 보니 글 쓰는 일과는 상관없는 직장생활을 10여 년이나 하게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점수에 맞춰서 간 학교에서도 집안사정 때문에 입학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마음에도 없는 학교를 4년이나 대출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휴학도 아닌 자퇴를 선택했다. 그때는 내가 실기만 잘 보면 1~2년 후에 원하는 학교를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만한 판단이었다. 실기시험에 두 번 떨어진 후 자신감을 크게 잃었다.


자퇴 후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던 중,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가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그때 마침 언니가 결혼하게 되었고, 오빠 내외는 조카들과 분가를 하면 될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지만 자연스레 혼자 나와 살게 되었다. 친구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독립해서 좋겠다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속사정을 삼켰다.


당장 생계를 위해서라도 취업이 필요했다. 이렇다 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교를 자퇴했으니 나는 고졸일 뿐이었다. 출판사 같은 곳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학력 자격부터가 안 되니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자금 대출로라도 졸업할걸, 하고 처음으로 후회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잡코리아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본 한 회사로부터 2년제 파견직 사무직 제안을 받게 되었다. 사무보조 알바 경력 한 줄 덕분이었다. 그렇게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파견직이 뭔지도 잘 몰랐고, 그냥 비정규직의 일종이라는 것만 알았다. 중간에 파견회사에서 떼가는 수수료가 억울하다기보다는 그저 채용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급여명세서에 수수료가 따로 기재되어있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회사에 지원하고 1~2년 다니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작은 회사더라도 정규직을 지원해서 다니면 좋았겠지만, 나는 어느새 대기업의 부품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려면 에너지를 아끼고 내 시간을 많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 퇴근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글을 쓰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도 띄엄띄엄이었고,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지금은 좀 늦어져도 어차피 난 평생 글을 쓸 거니까.'

그렇게 서른이 넘어갈 때까지도 나는 태평했다.


그런데 몇 년이 더 지나고 30대 중반이 되자, 계속 이렇게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직장에서의 계약기간이 얼마나 안 남았을 무렵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특별한 영역도 아니었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기에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기업에서는 경력이 적거나 없더라도 이왕이면 적은 돈으로 부리기 좋고 나이 어린 사람을 더 선호했다. 나는 이제 선택권에서 점점 더 밀려나고 있었다.

계약이 끝난 후 다른 회사에 또 지원을 할지 어쩔지 고민하는 나에게 짝꿍은 더 이상 상관없는 일은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글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힘입어 짝꿍이 하는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몇몇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글 쓰는 일에 있어서 이렇다 할 경력을 쌓은 것도 얼마 없는데, 부분 참여가 대부분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한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주도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기획을 해보거나 지원사업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나거나 시도도 못해보기 일쑤였다.


어느덧 마흔에 접어들고 보니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덮쳐왔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지, 그동안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짝꿍은 나와 달리 혼자서 잘해나가는 타입이었고 자기 영역을 잘 구축해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그와 나를 더 비교하게 되기도 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하는데 난 왜 이렇게 못난 거지? 나는 항상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왜 저런 모습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걸까?'


그가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음에도 괜히 나 혼자 자격지심에 짓눌렸다. 그렇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기 효능감이 저하되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었다.






"힘든 얘기인데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동안 속으로 많이 힘드셨겠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지 항상 괴로웠어요. 그래서 상담을 받으면 내가 왜 그러는지, 이게 나아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뭔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싶었는데 번번이 잘 안 됐던 부분에서 무력감 같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걸 경험해 보면서 얻으신 것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걸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생각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고, 내 효능감도 바뀔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수정 씨는 자신이 뭔가 해낸 게 없고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예요.

직장생활을 같은 패턴으로 반복한 것도 그렇고, 스스로 기획하거나 이끌려고 했던 일들이 잘 안 돼서 몇 번 해보다 관둔 것도 다 두려움이 생겨서 그럴 수 있어요. 위축되는 감정이 커지고, 내가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되는 거죠. 수정 씨는 그런 부정적인 신념에 걸려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나는 무능하다. 사랑스럽지 않다. 나쁜 사람이다... 이런 나쁜 자아상들을 인지 치료에서 '핵심 신념'이라고 해요. 저는 그래서 내가 열심히 안 하면 도태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항상 뭘 열심히 배웠거든요."


생각해 보면 나도 무언가 배우러 다닌 적이 많았다. 그렇게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결과는 어땠는가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속기사가 되려고 큰돈을 들여 속기 키보드까지 구매해서 배웠지만 손이 영 따라가지 못해 몇 개월 만에 그만뒀다. 반복되는 비정규 사무직에서 탈출하게 해 줄 거라 기대했던 속기 키보드는 애물단지로 남아 있다가 거의 1/10 중고 가격으로 팔게 되었다.

그 외에는 주로 교정교열이나 소설을 배우러 다닌 적이 많았다. 물론 배우면서 긍정적으로 도움이 된 측면도 있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번번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건 금방 돈으로 산출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눈으로 바로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참 돈도 안 되는 걸 배우러 다니는구나, 싶으면서도 글이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자니 뭘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도돌이표였다.


상담사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는 젊었을 때 전공이 이게 아니었어요. 나이 들어서 상담을 뒤늦게 배운 케이스거든요. 오십이 다 되어서 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 9년 차예요."


내가 본 상담사는 많아야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고 하셔서 내심 놀랐다.


"사람들은 보통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하고 싶어 하고, 안 하는 쪽으로 생각해요. 저도 상담에 관심이 생겨서 한창 배울 때, 내가 지금 나이 먹었는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그냥 배우는 거랑 직업으로 가지는 건 다르니까요. 내가 이 나이에 뭘 해. 이제 와서 이걸 어떻게 해. 이게 자동적 사고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돼요? 아무것도 안 바껴요. 내가 도전해 보자, 하면 의욕적으로 되고 희망이 생기죠. 이런 생각이 자동적 사고를 바꿔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내 행동이 바뀌고 결과가 바껴요. 그때 제가 생각을 바꾼 덕분에 지금 수정 씨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줄 수 있게 됐잖아요.

지금 이 상태로 계속 이렇게 가면 나는 계속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살아야 돼요. 나는 나의 보호자잖아요. 내가 나를 좀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요?"


상담사가 자기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힘이 되기도 했다.


"불안한 사람들은 그 불안을 회피하려고 무언가 먹거나, 보거나 하면서, 계속 뭔가 해요. 그런데 불안은 우리한테 당연한 거예요. 불안하지 않으면 실존적인 존재가 아니거든요.

수정 씨 명상 해보셨어요? 명상에 이완 훈련이라는 게 있어요. 대단한 게 아니고, 호흡하면서 내가 느끼는 불안을 그냥 감내하는 거예요. 내 몸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그걸 호흡하면서 가만히 느끼고 겪어내는 거예요.

슬픔이라든가 두려움 같은 감정이 나한테 신체 반응으로 와닿거든요. 어떤 사람은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고,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아프기도 하는데, 그럴 때 그걸 그냥 느끼는 거예요. 1분만 집중해도 그게 가라앉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감정과 내가 마주한 거예요.

뭐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내가 나한테 말해줘요. 그렇게 정서를 알려주다 보면 내가 나를 이해하게 되고, 어느 순간 그게 말로 나와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옛날에는 꿀꺽 참았는데, 이제는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거죠. 내가 이래서 마음이 언짢았네, 하고 스스로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불안 같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은 내가 나에게 굉장한 자기 효능감을 줘요. 나는 수정 씨가 그런 힘을 가지면 좋겠어요. 행동이나 생각을 바로 바꾸는 게 어렵다면 감정을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 이야기를 끝으로 상담사와는 서로의 안녕을 빌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후 상담사가 말한 명상을 특별히 해보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의 다른 방법으로 해보려고 노력했다. 방법이 어찌 됐건 내 감정을 마주하고 조절할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이따금씩 달리기를 할 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상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호흡을 조절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 호흡을 느껴야 하니까 말이다. 나 자신을 채근하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는 과정이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했다.

또한 내 생각이나 이야기를 글로 담아내는 것도 일종의 방법이었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막상 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이렇게 저렇게 쓰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글로 쓰다 보면 생각과 똑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힘들 때도 있고 더 좋을 때도 있다.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묘한 희열을 주는 행위였다. 이건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게 계속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지 않을까?






얼마 후 센터로부터 새 상담사와 상담을 이어갈지, 아니면 그만할지 묻는 연락이 왔다.

비록 적은 횟수에 불과하지만 지난 3회 차를 돌아보니, 내가 상담을 하기로 결정하고 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다소나마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분과의 상담에서는 어떤 나를 알아가게 될지 궁금했다. 예약이 밀려 있어서 한 달 정도를 대기해야 했지만 나는 기꺼이 기다리겠노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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