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와 친해지는 방법
다음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인정 욕구와 실제 내가 느끼는 갭의 차이에 대한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상담사는 주관적으로 내가 나를 낮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수정 님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글 쓸 때 어떤 걸 잘하는 것 같으세요?"
내가 뭐라고 했을까?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짐작할지 모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대답 맞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런 걸 말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알아야 해요.
내가 원하는 게 90인데 실제의 내가 50이면 당연히 힘들겠죠.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게 50이고 나도 50이면 어때요? 갭이 적어지니까 힘들 일이 없겠죠. 내가 뭐가 부족한지를 알면 그걸 깨닫고 채우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요. 이 부분은 내가 약하니까 한번 해봐야겠네. 해봤는데 안돼. 그러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돼요."
지금까지 내가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것들에 대해 늘어놓자, 상담사가 말했다.
"결국 나 못해요,라고 또 말하고 있는 거네요."
나는 꾸중 들은 아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내 반응에 상담사는 약간 마음이 쓰였는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이런 이야기는 분명하게 할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좀 잘 안 되는구나를 스스로 이제 알면 돼요.
수정 님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본인이 아주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조금이라도 잘한다고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수정 님 보고 뭘 잘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그 질문에 정말이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는지, 아니면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는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말이다.
한참 후에야 내가 성실할 것 같아 알바를 추천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서 그 얘기를 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말은 몇 번 들은 기억도 났다.
그럼 반대로 약점은 뭐냐고 묻길래 눈치에 관련된 걸 말했다. 사실 이 부분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짝꿍이나 친구가 워낙 눈치 빠르고 센스가 좋은 사람들이라 상대적으로 내가 눈치가 없거나 느린 것처럼 느껴진 적이 많기도 했다.
다른 약점이 더 있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받은 질문이라 그런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럼 지금 하신 얘기를 종합해 보면 수정 님은 이런 사람이네요. 나는 성실하고 이런 것들을 잘하지만 어떨 때 보면 나는 눈치가 좀 없는 것 같아. 이런 나를 보면 어떤 것 같으세요?"
그 말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있다가 뭐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수정 님은 항상 좀 이렇게 불확실하게 말하는 편이세요, 아니면 진짜로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서 그런 거세요?"
그 말이 마치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들렸다.
하지만 내가 불분명하게 대답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보다 상담 때 유독 그게 잦아지는 편이었는데 아마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수정 님, 숙제를 내드릴게요. 주위 사람 세명에게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물어보세요."
상담사는 감정 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수정 님이 선뜻 이야기를 못하는 건 어떤 마음 때문에 그런 걸까요?"
나는 테이블에 어지럽게 펼쳐진 각종 감정 카드 중에서 '답답하다'는 카드를 골랐다.
"'답답하다'는 카드를 고르셨네요. 그럼 수정 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싶으세요?"
여러 장의 카드를 몇 번이고 눈으로 훑어봤지만, 사실 100% 마음에 맞는 카드는 없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감정 카드를 골랐다.
"'자신 있는' 카드를 고르셨네요. 좋아요. 그러면 수정 님은 어떻게 했을 때 혹은 뭐를 할 때 좀 자신 있으셨어요? 사소해도 좋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번에도 모르겠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자신 있었던 게 언제였을까? 뭘 할 때였을까?
문득 달리기를 30분 동안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100미터 달리기를 20초 안에 들어온 적이 없었고, 오래 달리기는 항상 꼴찌였다. 그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아주 간헐적이긴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2~3분 뛰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비록 느린 속도이긴 해도 30분 내내 뛸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인간승리라고 자축할 만한 결과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신나 보였던 걸까?
상담사가 씩 웃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수정 님, 그때 그 마음을 기억해야 돼요."
왠지 상담실이 조금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나를 너무 광범위하게 보고 있으면 내가 잘하는 거 못하는 거를 빨리 체크할 수가 없어요. 잘하는 것만 보고 싶은데 못하는 것만 자꾸 보이니까 점점 자신이 없어질 수밖에 없죠. 아이들한테도 너 잘한다 잘한다 해야 자꾸 더 잘하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너 왜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그러면 잘하고 싶다가도 나는 못하는 사람이구나, 해서 더 하기 싫어지잖아요."
잘한다거나 좋은 말을 들으면 일부만 믿으면서도 기분이 두둥실 떠서 의욕이 고취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까 달리기 얘기해 주셨잖아요. 만년 꼴찌가 30분이나 달리게 됐다니 얼마나 대단해요. 수정 님도 몰랐던 자신을 알게 된 거잖아요.
내가 나랑 친해지면 또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나는 눈치가 좀 없는 것 같아서 이런 부분에서는 잘 못하지만, 인내심 있게 하는 거 끈기 있게 하는 건 되게 잘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나 오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오늘은 뭘 못한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해요.
누구에게나 강점과 약점이 있어요. 못하는 건 익숙하지 않거나 안 해봤으니까 못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약점은 보완하고 개발을 하면 돼요. 못하는 건 아는데 개발을 안 하면 그건 내가 잘못하는 거겠죠. 내가 정말 못하는 게 맞는지, 왜 못하는지 그런 부분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으니까 하나씩 하나씩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개발을 좀 해야겠구나. 좀 더 노력해 보고, 그러다 보면 내가 봤을 때 어제보다는 실력이 조금 늘었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동안 짝꿍에게 상담 얘기를 안 하다가 이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상담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그런 얘기들을 들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가만가만 들어주던 짝꿍은 내게 상담이 도움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담사의 말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냥 좀 걸러 들어도 되는데 너는 대부분 사람들의 말을 필요 이상으로 다 받아들이려고 하는 면이 있어. 그런 순진한 면 때문에 네가 너를 힘들게 하는 것도 있을 거야.
그리고 창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 그걸 깨닫고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그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큰 거야. 뭔가를 배울 때 그냥 알려주는 대로만 배우는 사람과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를 알고 그걸 채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꽤 다르거든.
생각해 봐. 우리가 아는 대가들은 모두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해. 으레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본심도 그럴 거야.
너는 네가 잘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 너무 막막하다고 했지만 그건 네가 이상한 게 아니야. 그 질문 자체가 광범위하고 어려운 거야. 나도 누가 뭘 잘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려운 건 너와 다르지 않아. 다만 내가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과하게 포장하지 않는 선에서 말할 뿐이지."
너는 참 별 생각을 다 한다고, 뭐 그런 걸로 고민을 하냐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지 않고 네가 이상한 게 아니고 나도 너와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어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오늘도 짝꿍에게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