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경험이다.
지난 상담 날의 저녁과 그다음날 한 번씩 손을 씻으면서 거울 속 나에게 말해보았다.
"수정아, 잘하고 있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목소리가 떨리고 괜히 쑥스러웠다.
이게 지금 힘이 되고 있는 건가?
한두 번 만에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게 우습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였을까.
이틀 후부터는 일이 바빠져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손을 씻으면서도 거울 속 나를 보면서도 나에게 그 말을 해줘야 한다는 자체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가끔 돌아서면 뒤늦게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다시 들어가서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나에게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해준 건 두 번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 상담을 갈 때는 마음이 살짝 무거웠다. 주위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알아왔던 지난번 숙제와는 달리 이번 '긍정 셀프톡' 숙제는 잘 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담사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속으로 찔리는 마음이었다. 진도를 잘 나가다가 쓸데없이 뒷걸음질 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TV 같은 데서 사람들 인터뷰나 얘기하는 거 보면 '~한 것 같다'고들 자주 말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거 볼 때마다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상담 시간에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럴 수 있어요. 수정 님의 진짜 욕구가 뭐였는지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면 모호하게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예요.
제가 보기에 수정 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욕구 중의 하나는 성취욕인 것 같거든요."
나도 그런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성취욕이 이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고 내가 원하는 세상에 살 수 있을 텐데 왜 그걸 못 이루는 것 같냐고 물었더니, 수정 님이 뭐라고 하셨냐면요. 내 역량과 이루고 싶은 지점의 갭이 너무 커서 마음이 힘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게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을까?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하는 것 같은지, 그런 질문들을 드렸던 게 생각나실 거예요. 어떤 게 나의 이상이고, 지금 내 자리는 어떤지를 조금 더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거거든요.
그랬을 때 내 마음의 욕구는 뭐인 것 같아요? 내가 성취하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성취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뭐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음... 자신감과 실행력 아닐까요?"
"자신감과 실행력이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느리지만, 수정님한테 실행력이 없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자신감이 조금 더 필요하겠다. 그죠?
어떤 부분에서 내가 좀 잘한다고 느끼면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가도 아무래도 여러 가지의 분야가 있을 텐데, 내가 어떤 부분에서 칭찬을 들으면 자신감이 좀 생길 것 같아요?"
"그걸 구체화해서 생각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궁극적으로는 글 잘 쓴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데, 그러면 글을 잘 쓰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을 거고, 그러면 어떤 부분에서 잘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실 것 같은데..."
"계속 질문이 맴돌까 봐 말을 못 하시는 거군요. 거기서 또 막혀도 괜찮아요.
막히는 나는 좀 어때요? 이것도 자기 효능감하고 연결돼요.
내가 말을 못 한다고 느낄 때 나는 좀 어떻게 느껴져요?
만약에 상담사가 질문했는데 내가 지금 구체적으로 뭔가를 자꾸 얘기해야 되는데 딱 막혀버려.
이럴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때요? 내 감정을 하나 찾아야 돼요."
내가 망설이는 것 같으니까 상담사는 감정카드들을 꺼내 펼쳐 보였다.
그중에 나는 '당황스럽다'는 감정카드를 골랐다.
"좋아요. 상담사가 자신감을 언제 느끼냐 물었을 때 내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되는데 못하니까 당황스러워졌어요. 그럼 이 당황스러움 밑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머릿속에 딱 스쳐가는 내 마음에서 어떤 자동적인 사고가 떠올라요?"
이번에는 '막막하다'는 감정카드를 골랐다.
"이 막막하다는 거는 어떤 내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막막한 것까지 생각이 났을까요?"
"그러니까 구체적이거나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 막막하고 당황스러운 마음 안에는 혹시 나는 무능력하다, 아니면 무가치하다, 아니면 나는 이걸 좀 못한다, 이런 마음이 느껴지는 게 있을까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가치하다거나 이런 것보다는 제가 뭔가 하고 싶은 거나 잘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러면 저는 대체로 그걸 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그 이유가 제가 원래 행동이 빠르지 않은 편이기도 하지만, 이걸 잘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덜 실패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나름의 계획 같은 거를 어느 정도 좀 하고 나서 실행하는 게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하고 실행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게 제 생각대로 되면 좋지만 잘 안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뭔가 좀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했을 때 좀 당황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런 게 이제 계속 반복되거나 쌓이다 보면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고 이런 방향으로 갔던 것 같아요."
"말 되게 잘하시네요."
아... 그냥 생각난 대로 말한 건데 이게 그렇게 되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드는 내 마음은 좀 어때요?"
"내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게 말을 잘할 수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가 좀 나뉘는 것 같아요."
"언제는 말을 잘하는 것 같고, 언제는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뭔가 확실히 경험을 했거나, 그거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생각을 정리해 본 적이 있거나, 그런 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말을 좀 하는 것 같은데 그 반대의 경우에는."
상담사는 갑자기 손뼉을 한번 치더니 내 말을 잘랐다.
"맞아요. 지금 경험이라고 말했잖아요. 수정 님이 경험을 하고 생각을 해보게 하려고 지금 제가 계속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한번 정도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을 안 해본 걸 이야기하면 내 안에 데이터가 없어서 말을 못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중에서 수정 님이 못하는 게 뭐냐면 내 마음과 접촉하는 게 힘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계속 질문하는 건 사실 인지적으로 머리를 쓰는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많이 묻거든요.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자꾸 머리로만 생각을 하려고 하세요.
그러니까 지금 수정 님 되게 중요한 얘기 했어요.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이거를 어떻게 말로 해야 할지 나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맞아요. 그러니까 수정 님이 이럴 때 내 마음이 이랬더라, 가 경험이 되면 되는 거예요.
좀 전에 이야기하셨을 때는 내가 실패하지 않으려고요. 계획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불안하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그거에 대해 당황하지 않으려고 좌절하지 않고 대처하려고요. 이러셨어요. 이렇게 내 마음을 그냥 객관화시켜서 이야기할 때는 말 되게 잘해요.
그런데 말을 못 할 때는 어떤지 아세요? 내가 잘 못할 때는 마음이 어떤데요, 하면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조금 이해가 되세요? 느껴져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지금 이해하기로는 지난번 상담했던 거랑 약간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을 때와 내가 하고 있을 때 적용하는 말이 달라지는 거에 대해서 짚어주셨잖아요. 지금도 그거랑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객관화는 잘하시는데 내가 내 마음을 못 만나줘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내가 나를 자꾸 소외를 시켜요. 그래서 이게 슬프면 슬픈 대로 인식하고 그렇게 나에게 얘기해줘야 하는데, 너 지금 슬프면 안 돼, 하는 내가 많다 보니까 내가 부적절한 거예요.
그럼 봐요. 내 마음은 지금 슬퍼요. 그런데 내 머릿속은 지금 넌 슬프면 안 돼, 딴 거 해야지, 지금 그건 슬플 시간도 없어, 하다 보니까 내 마음이 일치가 안 되는 거예요. 내 마음과 생각이 일치가 되면 내가 편안해지는데."
"방금 말씀하신 그 객관화를 하는 것과 제가 저 스스로 자기 객관화를 하는 건 다른 건가요?"
"그렇죠. 객관화라는 의미가 어떤 의미예요?"
"누가 봐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거."
"그런데요. 누가 봐도 동일한 거랑 내가 느끼는 건 달라요. 내가 만약 애기라면 엄마 나 이거 사줘, 저거 해줘, 할 수 있지만 성인인 지금은 아무한테나 그럴 수 없잖아요. 슬픈 감정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슬픔을 똑같이 객관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내가 느끼는 내 감정에 대해 물었을 때는 10살 이전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수정 님이 지금 이야기할 때는 사회적으로 불편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내 감정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면 내 마음을 접촉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어쩌면 못 느끼고 살아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수정 님이 이거를 느끼지 말아야 되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저는 이런 생각이 좀 들거든요."
내가 내 감정을 그렇게도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했나?
나는 지금까지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상담사가 내 마음이 어떤지,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물어볼 때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나 보다. 내가 그때마다 난처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나는 그래도 글을 쓰는 사람인데 내가 이 정도로 감정에 무지했던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어떤 상황이나 제3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객관화를 잘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조건적인 동조나 감정적인 반응보다는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내가 적절하게 반응해 줄 수 있거나 할 때만 치고 빠지는 식으로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게 어떤 친구에게는 냉정해 보이거나 관심이 없는 걸로 보였을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말을 잘하기도 한다는 것도 새삼스레 알았다. 청산유수처럼 술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항상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인들에게서 종종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거나 상담을 잘해준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내가 상대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니까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느끼는 거고, 꼭 나여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 내가 들어줬기 때문에 상담을 잘해줬다고 느낀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또 나에게 야박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