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멍이 나를 후벼 파는 줄도 모르고...
돌아보면 이 회차의 상담에서 가장 큰 놀라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혼자서는 절대 알아챌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숙제 검사를 확인받는 걸로 상담을 시작했다.
주위 사람이 본 나는 어떤 사람이고, 뭘 잘하는 사람일까?
-알바를 제안해 준 친구: 너는 차분하고, 진득하고, 꼼꼼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고,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
(친구의 눈에 내가 기복이 크지 않다고 느낀 점에 대해서는 내 목소리가 차분하고 소리가 작은 편이라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아는 작가님: 수정 작가님의 가장 큰 장점은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은 대체로 해낸다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성실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든 상황을 돌파하려고 시도한다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생각이 많아서 행동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은 뭐라도 하시더라고요.
-짝꿍 : 너는 뭔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하려는 일이 있으면 진득하게 꾸준히 해내는 편이야.
눈치가 없는 건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잘 배려하기는 타입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다만, 내가 느끼기에는 네가 눈치를 채고 그걸 행동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게 다소 아쉬운 점이야.
이들이 내게 해준 말을 다 기억 못 할 것 같아서 메모로 따로 정리를 해왔다. 나에 대해 진심으로 해준 말이니까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말하는데, 상담사는 나더러 숙제에 나와 있는 답변들처럼 꼼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짝꿍이 내 단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한 것에 대해 기분 나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는 않았고, 오히려 나를 오래 봐오고 아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내드린 숙제를 해온 본인의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나름대로 애쓰고 있고,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작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 그전에는 뭔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에만 좀 고여 있었다면, 지금은 거기에서 조금씩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에는 제가 자존감이 낮거나, 나는 이런 것도 못하고, 부족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하고, 거기에만 골몰해 있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숙제를 충실히 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지금 새롭게 시작하고 있고, 내가 나를 알기 위해 변화하려고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좋네요. 자기 효능감이 한 칸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자신감 같은 게 아예 이렇게 딱 올라왔다기보다는 이제 올라오려고 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짝꿍이나 지인들한테서 나에 대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들은 이 사람도 느끼고 저 사람도 느끼는 거니까 나한테 그런 점이 있긴 하구나, 하고 확실히 인식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죠. 그걸 하기 위해 숙제를 낸 거였어요.
왜냐면 수정 님은 자신을 잘 못 믿어요. 옆에서 아무리 너 이런 사람이야,라고 얘기해도 그걸 한 사람한테 듣는 걸로는 잘 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수정 님이 오히려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알아왔다는 게 너무 박수치고 싶은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변화해야 하는 동기가 생기고, 나 이 정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잖아요. 나는 이런 거는 되게 잘하는데 이런 건 좀 못하는 부분도 있네, 하고 이렇게 보니까 어떤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저에 대해 알아가는걸 좀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전에 얘기하실 때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자신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엄격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내가 조금 잘했다고 해도 잘했다는 말을 나한테 별로 안 해주실 것 같아요. 정말 조그만 성공을 했을 때 내가 막 칭찬을 많이 받아봐야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거든요. 나한테 너무 엄격하다 보니 100점 중에 95점을 받아도 5점은 왜 못 받았지, 하는 거죠.
그러니까 잘한 건 잘 못 보고 내가 지금 올라가는 과정만 보이는 거지,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대한 그런 기쁨을 잘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내가 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잘해야 돼 더 잘해야 돼 이렇게만 가다 보면 너무 지치기가 쉬워요.
수정 님이 하고 싶은 일도 있고, 목표 지점도 있을 거잖아요. 그걸 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렇게 찾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상담사는 아는 작가님(편의상 이하 N작가님으로 지칭)이 나에 대해 해준 말에 대해 언급했다.
'성실함 이상'이라든지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하려 한다'는 말은 과찬이라고 느꼈다.
'생각이 많아서 행동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엔 뭐라도 하는 것 같다'는 말에는 약간 웃었다. 항상 내 머릿속은 분주하고 복잡하지만, 행동은 그다지 빠르거나 크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긴 해서 말이다.
N작가님과는 글에 대한 고민이나 마감하기 싫은 투정 때문에 자주 통화하는 사이였다.
나는 N작가님이 이렇게 말해준 게 각자 똑같이 마감을 앞두고 있고 하기 싫은 건 똑같지만 N작가님은 계속 미루는 반면, 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래도 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느끼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가 듣기로는 그분이 수정 님의 이런 면을 보면서 의지를 좀 하시는 것 같네요.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힘들 때 이 사람한테 전화하면 왠지 힘을 받아서 그다음 일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마음이 드는 거. 그래서 수정 님한테 그런 면이 있다고 얘기해 주시는 거네요."
"실제로 너무 마감하기 싫어서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저랑 1시간 정도 얘기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 쓰게 됐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건 진짜 엄청난 건데요. 수정 님만의 매력이네요. 수정 님의 그 차분함이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렇게 닮고 싶다,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 같고요."
"좋게 말해주셔서 고맙긴 한데, 제가 그분에게 그렇게 보일 수 있었던 건 마감을 지키는 정도였던 것 같은데요. 제가 무슨 불굴의 의지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단지 돈을 받으려면 어쨌든 해야 되니까 했던 것뿐인데."
"수정 님, 이분도 돈 때문에 해야 되는 거 알아요. 근데 안된다잖아요.
만약에 이 작가님이 어떤 일을 할 때 지금 마감은 너무 급한데 하기 싫고 몸까지 아픈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 분이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다해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내고 있어요. 그럼 이분한테 수정 님은 뭐라고 말해주실 것 같아요?"
"되게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고..."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 자신한테는 뭐라고 말하냐면, 해야 되니까 그냥 했어요. 지금 온도가 다르죠. 나는 다른 사람은 되게 좋게 보고, 다른 사람도 나를 좋게 봐주는 면도 있어요. 짝꿍이 단점을 말했을 때도 그렇게까지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데요.
나한테 이렇게 냉정하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얘기하고, 엄격하게 말하는 나를 볼 때 좀 어때요?"
일순간 멍해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똑같은 상황인데 다른 사람한테 대하는 거랑 내가 나한테 대하는 게 참 다르네.'
그걸 처음 깨달았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엄격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빗댄 거를 나에게 적용하니까 정말 좀 다르게 내가 생각한다고 느껴져서 약간 새롭게 인식되는 것 같네요."
"그래서 마음은 좀 어때요? 이렇게 느끼고 있는 나를 볼 때 내 마음은 좀 어떤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앞으로는 좀 더"
나에게 관대해져야겠다고 마저 말하려고 했는데, 상담사가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앞으로를 묻는 게 아니에요. 저는 지금 수정 님의 마음을 만나려고 하는 거거든요.
불안한 사람들은 자꾸 미래로 가버려요.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에 못 머무르고 있다 보니 계속 뭘 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계속 뭘 하려고 해요.
근데 내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요. 뭘 해야 된다 생각하는 것도,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에너지를 되게 많이 쓰는 거예요. 이거는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거 고민한다고 힘쓰고, 그러지 말아야 되는데 하면서 누르는 데에 힘쓰고,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목표한 데까지 가려고 할 때는 마지막에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될 대로 돼라 이러다 보니까 성과가 없고요. 그게 반복되면 내가 못하는 사람이구나, 느끼게 돼요.
제가 이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시 돌려볼게요.
수정 님이 마감시간에 열심히 막 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너 그거 돈 벌려면 해야 되니까 당연한 거지,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좀 어떨 것 같아요?"
가슴이 찌르르했다.
"... 야속할 것 같아요."
"맞아요. 야속하겠죠. 그게 내가 나를 보는 마음이에요.
너무 엄격하게 이런 기준으로만 나를 보고 있다 보니까 내가 잘하고 있는데도 안 한 것 같은 거예요.
맨 처음에 오셨을 때 그런 얘기하셨거든요. 제가 이때까지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뭘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난 뭘 잘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방향도 헷갈리기도 하고 그래요,라고 했거든요.
이런 마음에서 내가 나를 계속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세요? 이렇게 보는지 잘 몰랐죠? 이렇게까지 본다고 생각 안 하셨을 거예요. 수정 님이 나한테 되게 엄격해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글이나 일에 있어서 내가 그런 사람들이나 환경에 좀 노출되어 있었던 것 같다.
2018년도에 평소 관심 있던 작가님의 소설 수업을 수강했을 때가 기점이었던 것 같다.
그 작가님은 글쓰기에 있어서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퀄리티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강조하셨다. 지나고 보니 그게 나에게 부담이자 엄격한 기준의 잣대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저 사람도 메이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 자기 실력을 갈고닦았을 거고 노력을 했으니까 저렇게 말하겠지 싶어 처음에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건지, 저분이 말한 정말 잘해야 된다는 거기에 내가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야 되지? 창작에는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그걸 똑같이 따라 할 수도 없는데...
그전까지는 내가 쓴 거에 대해서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게 쓴 것 같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서 아니었구나 싶어졌다.
이후에도 다른 작가님들의 수업을 듣고 합평을 할 때마다 좋게는 객관화가 되기도 했지만, 내가 괜찮게 썼다고 생각한 게 사실은 아니었다고 여기게 된 경험이 자꾸 쌓였다. 그러다 보니 합평을 받기 전에도 불안하고 객관화가 점점 안 됐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눈물이 왈칵 터졌다. 이 부분이 나에게 많은 상처와 부담을 주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더 작아졌네. 그렇죠.
그런데 저는 지금 수정 님이 얘기하셨던 그 말이 너무 좋거든요. 이게 지금 수정 님이 내고 싶은 목소리인 거예요. '적당히'가 어떤 거야?
당신이 했던 대로 내가 한다고 해서 나는 당신이 아닌데. 내가 당신처럼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과 똑같은 길을 내가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면 안 된다고 이 말이 되게 크게 들렸고, 수정 님은 그것 때문에 내 기준을 되게 엄격하게 보면서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당신이 봤을 때는 당신 기준에는 아니겠지, 하고 마음속에 일종의 감시자를 두시게 된 것 같아요. 나를 조금 더 엄격하게 해야 돼. 나의 기준을 이 정도에 둬서는 안 돼. 그러신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러면 수정님이 생각하는 적당히 해서는 출세할 수 없어,라고 하는 그분의 말에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요?
여전히 내게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지금 그 질문도 그렇고, 전에 글 쓸 때 내가 뭘 잘하는 것 같은지 물어보셨던 질문도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제가 묻는 질문이 어떻게 보면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에요.
그러니까 수정님이 어떤 부분에서는 누군가가 그 말을 했을 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부분이 없잖아 있어요. 좀 전에 얘기하신 거 보면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거든요. 나는 당신이 아닌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당신이 그렇게 해서 당신은 됐겠지만 나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안될 수도 있어. 그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초심이라고도 말하는 나의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고, 내 믿음, 내 만족이 없다 보면 수정 님이 뭘 해도 나를 만족시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기준을 잡아드리려고 하는 질문인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빨간색이라고 하면 이게 하얀색이 빨간색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는 게 공감인 거잖아요. 지금 수정 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게 그거잖아요. 나를 돌볼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너무 추상적인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얘기예요. 누가 얘기했을 때 너 뭐가 되고 싶어? 나 건물주가 되고 싶어, 그러면 그다음에 할 얘기가 없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그런데 작가니까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가 있어야 돼요. 그걸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더 깊게. 나는 빨간 색깔의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 파란 색깔의 작가로 어떤 공감을 주고 싶은 건지. 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나를 돌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나를 돌보고 있는 건지, 나는 지금 나를 만나고 있는 건지, 그런 것들요.
제가 수정 님한테 기준이 높게 느껴지는 게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었을 때도 다른 사람의 판단은 믿으면서 내 판단은 없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스스로 잘하고 있는데도 뭘 잘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다음에 뭘 해야 될지를 또 모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게 분명히 있어줘야지 그 목적을 향해 갈 때 바뀌는 게 많아요. 이걸 했는데 안되네. 버려. 이거 했더니 조금 반응이 있네. 그럼 이건 좀 합쳐봐. 이렇게 하면서 만들어가겠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내 글에 공감이 되어야지 자신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이 글을 봤을 때 다른 사람이 너 이거 별로야,라고 말해도 나는 이 정도면 잘 썼구만, 나한테는 이런 마음도 있는 건지 그걸 질문하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자꾸 묻는 거예요. 다른 사람 판단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어떤 글을 썼을 때 저도 물론 이건 잘 쓴 것 같아,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이럴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게 반복되니까 제가 만족했어도 이게 좀 자기 위안에 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거든요.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게 확신을 못하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
"그랬네요. 그런 이유가 있었네요.
이렇게 말을 해보니까 마음은 좀 어떤 것 같아요?"
"내가 그랬구나 싶어요."
"그런 나를 좀 아니까 어때요?"
"힘들었다. 되게 애썼다."
"그죠?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나는 어떤 말을 좀 듣고 싶어요?"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그거 누가 얘기해 줘야 돼요?"
"내가 나한테..."
"맞아요. 몇 번 정도 들으면 나 진짜 잘하는 거 같을 것 같아요?"
"몇 번 정도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주기적으로 들으면 좋지 않을까요?"
"수정 님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듣는 기준을 정하는 거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왜 약간 농담 식으로 몇 번 들으면 괜찮을 것 같냐고 물었냐면, 불안한 사람은 이렇게 기준을 좀 정해놓으면 덜 불안해져요. 그러니까 무한대로 그냥 계속 잘하고 있어, 이렇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듣는다고 해서 내가 힘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나 이거 그냥 한 100번만 들으면 나 진짜 잘하는 사람일 것 같아,라고 내가 기준을 정해놓는 거예요. 100번이 지나고 나서 또다시 100번을 도전하든 1000번을 정하든 지금 내가 느꼈을 때 그렇다라면 좀 어때요? 100번까지 내가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걸 '긍정 셀프 톡'이라고 해요. 이거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나한테 해줘야 되는 거예요. 우리 수정이 잘했네. 아유, 그래. 너 잘할 줄 알았어. 이 말을 100번 정도 들었으면 내가 넘어지고 못할 때도 수정이 잘하고 있네, 너 잘할 거야, 옛날에도 잘했는데 뭐, 너 얼마나 침착한데,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나를 믿을 수 있을 건데 이제는 누가 해줘서 되는 나이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돼요.
없는 창조도 막 해내는 게 작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약간 마법에 걸린다고 할 정도로 매일 손 씻을 때마다 나한테 얘기해 주세요. 내가 너무 힘들면 나한테 그 말을 해주기 위해서라도 손을 씻으러 가면 돼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힘이 빠질 때 나는 그 말을 더 많이 들어야 되는 사람이에요. 100번을 듣든 1000번을 듣든 내가 기준을 정해놓고 나는 이 정도의 말을 들어야 좀 힘이 나는 사람이야,라고 느끼면 좀 어때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수정 님이 매일 화장실에 가면 이제 이 말이 생각날 거예요. 그냥 잘하고 있다고 하면 누가 잘하는지 몰라요. 나를 불러주세요. 수정아, 나 잘하고 있어. 한번 연습해 보세요."
"수정아, 나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도 낯간지러웠는데, 내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하려다 보니 그 간단한 한 마디를 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떤 때는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 얘기가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잘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얼마나 침착하게 하려고 노력했고,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성실하게 애썼고, 마감 전까지 나 최선을 다했잖아요. 결과에 상관없이 나 잘하고 있었잖아요. 그런 나를 칭찬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일주일은 열심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뭘 잘하고 있는지도 한번 봐주세요. 그리고 난 좀 어떨 때 힘이 좀 빠지는구나. 어떨 때 힘이 나는구나. 셀프 톡을 했을 때 나는 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이런 것들을 좀 신경 써보면서 손 씻을 때마다 잘하고 있는 나를 칭찬해 주기. 이게 이번 주 숙제예요.
나를 보고 좀 웃어주세요. 다른 사람이 웃어줘서 기쁜 세상이 아니라 내가 나를 보고 웃어줄 때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거예요. 지금도 잘하고 계세요.
오늘은 어떠셨어요? 자기 효능감 좀 생기는 것 같아요?"
"객관화 같은 게 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좋네요. 자기 객관화를 하시려고 수정 님이 그렇게 많이 노력하셨네요. 이 부분이 중요하면서도 사실 제일 어렵기도 해요.
나를 찾고 있는 중이니까 지금 조금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는 거예요. 수정님이 지금 제가 처음 봤을 때보다 그래도 자기 생각이랑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표현력 같은 부분들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도 잘해주고 있어요. 이제는 그런 부분들의 성취와 기준점을 하나씩 낮춰가지고 내가 매번 성공하는 경험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어떤 장면이 하나 기억났다.
외출하려고 옷을 다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확인하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양말의 뒤꿈치가 해져있었다. 구멍이 완전히 뻥 뚫린 건 아니었고, 씨줄 날줄의 실 몇 가닥이 간신히 구멍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뜬금없이 왜 그 생각이 난 걸까?
곧이어 깨달았다.
아... 그게 지금까지의 내 마음이었구나...
내 마음의 뒤꿈치에 구멍이 뚫리는 중인 줄도 모르고 난 앞만 보고 있었구나.
신발을 신으면 감춰지니까 그냥 외면한 채 방치했었구나.
나는 나에게 가장 야속하고도 무심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