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제 안에 심연이 있다.
상담사는 이어서 내게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수정 님 부모님은 좀 어떠셨어요?
사실은 그전 상담사한테 다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아서 그 얘기는 하는 게 좋을지 어떨지 조금 보류하고 있었는데요. 그 부분을 못 건드리니까 지금 이야기가 계속 맴돌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원가족한테 느끼고 있는 마음이 미해결 된 문제로 남아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그 주변을 계속 맴돌기만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를 수도 있거든요.
수정 님이 생각하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을 텐데요. "
처음에 상담을 시작할 때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을 예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깊은 상담으로 들어가려면 역시 가족이나 어린 시절을 떼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재혼해서 새아버지가 친아버지나 다름없이 자란 것, 나이차가 많이 나는 오빠와 언니가 있었던 것, 나에게 책을 사준다거나 학원을 보내주거나 하면서 나름대로 신경을 쓰려고 하셨지만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어리광 부리거나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엄마가 악바리로 살아야만 했던 것 등등.
"어떤 게 제일 기억이 나요? 엄마 하면 어떻게 생각나요? 어떤 분이라고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눈물이 터졌다. 목이 꽉 메이고 막히더니 말이 잘 안 나왔다.
"되게 열심히 살았는데... 너무 일찍 가셨고, 좀 불쌍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럼 엄마가 언제 제일 보고 싶어요?"
지금은 옛날에 비해서 많이 그립다거나 슬픈 마음은 많이 줄었다고 느낀다. 없어졌다기보다는 그런 감정이 잔잔해졌다고나 할까. 10대 때는 종종 '섬집 아기'를 부르면서 혼자 참 청승이라고 느끼기도 했고, 30대까지만 해도 길 가다가 전혀 모르는 모녀 사이만 봐도 부러웠다.
심지어 친구들이 자기 엄마 이야기를 하면 그게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너네는 그래도 어쨌든 엄마가 살아계시는 거잖아. 감사한 줄 알아야지.'
속으로 혼자 그렇게 말하다가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저 친구가 나 속상하라고 그런 얘기를 한 건 아니었을 텐데. 친구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마음의 준비도 못했는데 엄마를 보냈겠네요.
아빠와는 어땠나요?"
첫 시간에 상담지를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족에 대해 적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가족의 신상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가족 구성원의 성격에 대해 쓰는 부분이었다. 그런 건 처음 써봤는데 그래서였을까. 이름이나 나이라든지 직업 등과 다르게 단번에 써지지가 않았다.
특히나 아빠의 성격에 대해 쓰는 부분이 마지막까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다. 언니에게 듣는 아빠는 때로는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외가 식구들에게 듣는 아빠는 배신감이 드는 사람이었다.
"수정 님이 생각했던 아빠랑 다른 사람들에게서 듣는 얘기랑 다르니까 혼란스러우셨겠어요."
아빠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었다.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쪽저쪽에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반응을 보여야 했다.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 같았고, 둘 다 맞는 것도 같았다.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빠와 외가 사람들을 마주치게 해서는 안될 것 같은데, 그럼 나는 결혼을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 언니랑 오빠와는 지금 사이가 어때요?"
"언니와는 큰 문제없었고,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에 더 친해지고 편해진 것 같고요.
그에 반해 오빠는 예전부터 그리 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빠한테 어릴 때 공부를 배웠던 게 대체로 안 좋은 기억으로 많이 남은 것 같은데요. 물론 제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적도 있지만, 혼나거나 맞았던 기억이 크게 남아있어요, "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의 편차가 워낙 커서 성적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엄마는 오빠에게 내 공부를 봐주라고 했다.
오빠가 공부를 잘 가르쳤던가? 사실 그런 것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덜 열심히 하거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매를 맞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집 베란다 창문에 붙어있던 쇠창살 하나가 부러져서 한동안 현관에 그걸 세워둔 채 보관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나중에 고칠 생각으로 두었다가 그냥 방치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어느 날, 공부 안 하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오빠에게서 그 쇠창살로 종아리를 맞았다. 마치 훈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러듯이 말이다.
"네가 지금 왜 맞는지 알지?"
나는 온몸에 힘을 준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교복 치마 아래로 퍼렇게 멍이 든 종아리를 어기적거리며 등교를 했다. 내 뒤에 오는 전교생이 내 종아리를 보고 수군거리는 기분이었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이후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주눅 드는 두려움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안 좋은 말을 한다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눈물부터 나오는 버릇이 생겼다. 그게 내가 정말 잘못해서 그런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도 물론 당당하게 맞서서 따지고 싶은데 눈물부터 나오니까 말을 못 하는 거다. 스스로도 답답하기 때문에 정말 오랜 시간 고치고 싶은 습관 중의 하나인데 영 쉽지가 않다. 원래 성격이 소심한 편이기도 하지만, 매 맞으면서 주눅 들었던 경험이 더해지면서 더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매를 맞던 그 시절,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오빠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만화를 방영하는 시간에 오빠가 보면 슬금슬금 옆에 떨어져 앉아서 보기도 했다. 보고 싶은 만화를 보면서도, 또 뭔가 혼나지는 않을지 눈치를 보느라 좌불안석이었다.
내 또래에서 매 맞으며 큰 게 나 혼자만도 아니었을 텐데, 내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오빠한테 안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
돌아보면, 초등학교 입학 무렵 등하굣길에 나를 데려다준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무거운 책가방을 오빠가 새끼손가락으로 들면서 허세 부리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그보다 더 어렸던 어느 날에는 동네에서 하던 서커스를 같이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오래전이어서일까. 마치 꿈처럼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흐릿하고 아스라한 기억이다.
지금은 이러저러한 문제로 오빠와 만난 지 오래되었다. 연락처도 모를 정도니까. 조카와는 연락을 하고 지내기 때문에 물어보면 알 수도 있지만 굳이 묻지는 않는다.
몇 년 전에 이제는 성인이 된 큰 조카를 만난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애가 자라면서 오빠한테 많이 맞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동생한테는 안 그러는데 유독 자기만 그렇게 많이 혼나고 맞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큰 조카가 반항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아이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자기 아빠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조카의 마음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지만, 착잡하면서도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퍽 난감했다.
이전과는 달리 이런 이야기들을 길게 풀어내는 나를 보며 상담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 보니 누군가가 이렇게 품어주거나 하지 못해서 마음이 되게 힘드셨겠어요.
중학교 때면 참 예민한 시기잖아요. 엄마가 아직 필요할 때인 데다 사춘기도 있고, 내가 이렇게 해보겠다는 내 욕구도 막 이야기해 보고, 떼도 써보고 그랬을 나이인데 받아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언니도 그렇고, 오빠는 무섭기도 한 데다가, 또 엄마는 없지, 아빠는 어렵지. 그러다 보니 수정 님이 그런 내 마음을 좀 표현을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너 이랬겠구나 해주는 사람만 있었어도 나 오늘 힘들었어, 나 오늘 슬펐어,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을 할 데가 없다 보니까 내 감정을 그냥 무덤덤하게 없는 것처럼 나를 계속 이렇게 느끼지 못하고 살면서 자기감정을 잘 못 만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가 쪽에 대해서도 말을 꺼내게 되었다.
고모에게서 친아버지와 조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재혼하기 전에 나를 키워줬다는 고모는 나를 각별히 여겼다. 하지만 내가 너무 어릴 때라 사실 나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 애정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의 짐처럼 왠지 모르게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친가 쪽의 마지막 혈육이었던 고모마저도 안 계시다. 대부분 먼저 떠나셨기 때문이다. 조부모님이나 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듣기는 했지만, 내가 그걸 직접 본 게 아니고 그들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인지 약간 담담한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고모의 죽음은 내가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한동안 꽤 괴로웠다. 그 마음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떠올리면 힘들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친가 쪽의 가족사 때문에 얼마간은 나도 그렇게 나쁜 선택으로 죽을까 봐 불안했다. 처음에는 이런 가족사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내게 너무 버거웠다. 내가 불행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얼마든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더 이상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특별히 더 도움 되지도 않을 테니까... 그래서 점점 더 객관화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기억들이 있는데, 말하자면 이게 뭐랄까... 땅 속에 묻어놓은 기분이에요."
나조차도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만큼 깊고 깊은 땅 속에 오래전 묻어놓은 내 기억의 타임캡슐을 이제야 캐내는 느낌이었다.
"수정 님의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 이해가 되네요. 그리고 왜 진짜 내 감정을 잘 안 만나려고 했는지, 못 만나고 있는지도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 조금 수치스럽기도 한 면도 있는 거고, 이런 내가 좀 까발려지는 것도 원치 않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내 감정을 만나기가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한 건 짝꿍 외에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해보시면서 마음이 좀 어떤 것 같아요?"
"뭔가 다 연결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일단 들고요. 인정받고 싶다거나 그런 게 내가 그런 환경을 거쳤기 때문에 생겼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수정 님이 왜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게 낯선지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본인이 이야기하면서도 낯선 거예요. 그래서 지난주에 과제로 나 잘하고 있어,라는 이 칭찬을 해주는 것도 나한테 너무 인색한 거죠. 분명히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봤을 텐데 처음에는 하다가 어색하니까 이제 그 말이 안 나오기 시작했을 것 같아요."
내가 이야기하면서도 낯선 거... 그렇구나.
어쩌다가 가끔 떠올리게 된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타인에게 길게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밀도 높은 이야기들을 많이 게워놓은 날이어서 그런지 힘들면서도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감정도 경험과 같아요. 자꾸 무시하면 표현할 길이 없어져요.
그런데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마주하고, 인정하면 내가 원하는 걸 알게 돼요.
이번 주에는 감정일기 쓰는 걸 숙제로 내드릴게요. 내 감정이 어떨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한 줄만 써도 괜찮으니까 기록해 오세요.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내가 어떨 때 이런 감정을 느꼈고, 이 감정이 그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그 정도로 쓰시면 돼요."
가족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내가 그때도 지금도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보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해결해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쓸 때는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실제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적용하게 되면 캐릭터나 제3자를 보는 것과 같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나와 직접 관계된 사람에게 객관화를 할 수는 있는 걸까?'
'나는 작가가 되려고 하는 건데,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마음을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