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을 내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짧은 가을의 문턱에서 새 상담사와의 개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새 상담사는 전에 했던 분과는 꽤 다른 분이었다. 예전 상담사가 매우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말투였다면, 이분은 목소리도 말투도 시원시원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거기에 따라가게 되는 느낌이었다.
지난번의 호소 문제인 '자신감 부족'에 대해 계속하는 것보다는, 조금 방향을 틀거나 깊이 들어가는 문제를 다루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가 제안한 알바를 하게 된 것도 그렇고, 아직은 머릿속 생각에 불과하지만 이런저런 계획도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뭔가 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하기만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무것도 안 하던 전보다는 조금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보다는 나 혼자서는 좀 더 다루기 힘든 '자기 효능감'에 대해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걸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전 상담사로부터 내가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자기가 봤을 때는 큰 자산인데 내가 이걸 너무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경제적 가치로만 봐서 보잘것없게 여기는 게 안타깝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남아서이기도 했다.
새 상담사는 내게 어떤 글을 쓰고 싶냐고 물었다. 이런 질문이 항상 참 어렵다. 말문이 턱 막히면서 단번에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이런 내가 또 답답했다.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상담사는 그럼 어떤 작품이나 작가를 좋아하냐고 다시 물었다. 머릿속에 둥둥 떠오르는 것들은 있는데 이상하게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그것들을 왜 좋아하는 걸까? 휴머니티? 공감과 위로? 각자의 의미대로 생각할 여지?'
"수정 님과는 나를 좀 찾아가는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상담을 통해서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게 높아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나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되게 중요한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수정 님 말씀은 어떠냐면 반대로 얘기하자면 내가 지금 마음에 안 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힘을 내야 될 때 언제 힘을 내야 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나는 스스로에 대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과 말을 참 자주 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해서 그랬구나.'
"제가 오늘 같이 이야기해보니까 수정 님이 이미 가지고 있는 거나 가치 이런 것들이 되게 예쁜 데도 내 거를 내 걸로 잘 못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잘하고 있는데도 자꾸 자아비판이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버리니까 이전에 상담해 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요.
수정 님은 나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요. 돈도 제대로 번 것도 없고요. 마흔이 됐는데도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에 상담해 주신 분은 수정 님이 못 본 걸 봐주신 것 같거든요.
내 가치관이 부정적이면 글도 부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수정 님이 하고 싶은 글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일상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게 인생의 목표이기도 한 거고요. 어떻게 보면 내 글이 결국 나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럼 그 글이 잘되려면 거기서 자기 효능감이 필요할 거 같아요. 나 잘하고 있는 사람이구나. 나 유능한 사람이구나. 이게 되려고 하면 내가 나랑 친해야 돼요.
수정님은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곁에 두었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뭔가 결과를 이루는 그런 게 필요한데, 아마 잘돼도 수정님은 그럴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잘됐겠지, 아니면 뭐 잘됐지만 이 정도까지는 잘된 게 아닐 수도 있어. 돈을 좀 더 벌어야지. 아마 이런 마음으로 가실 것 같아요. 어때요? 제가 너무 넘겨짚었어요?"
이 부분에서 마치 타로나 점을 보는 것처럼 딱 맞다고 생각했다.
'내 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나? 어떻게 알았지?'
돌이켜보면 합평 수업이나 내가 쓴 글에 대해 어떤 평을 들을 때 아무래도 장점보다는 단점이나 고쳐야 할 점에 대해 더 먼저 더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에 대해 부족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던 것 같다. 장점에 흔들리거나 취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걸 들어도 온전히 못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말에 상담사는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내 장점에 대해 못 받아들이니까 효능감이 없는 거예요. 좋은 말을 해줘도 왜 이렇게 못 받아들이고 믿지 못하는지 그 부분을 좀 더 탐색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어떤 게 되고 싶은 건지, 목표가 확실하면 자기 효능감은 바로 올라갈 수 있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목표가 불확실하니까 효능감이 뭔지도 잘 모르는 거예요. 나는 어떤 사람이야, 내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거야,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면 수정 님이 그때부터는 원하는 글을 조금 더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인정 욕구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비해 실제 내 실력이나 결과가 그만큼 못 따라가니까 자꾸 좌절하고 나를 미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잘하려는 마음도 의욕과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 욕구에서 나를 좀 편하게 해 주려면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거나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만큼 대충 하면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 그러기도 어렵다. 어차피 열심히 해도 욕구만큼 못 따라가는데 말이다.
이 시기에 하던 일도 그런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예전에도 원고에서 이 점에 대한 지적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하지?
안 그래도 알바랑 병행해서 시간이 빠듯한데 이런 문제까지 겹치니 진도가 더 안 나가는 것 같고, 기한 내에 못 해내면 그것도 문제고... 이런 것도 못해내면 프로가 아니라는 말을 듣기도 싫고...
이러다 보니 처음에는 의욕 있게 했다가도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지곤 했다. 힘들어도 즐길 수 있으면 그 힘으로 할 텐데 그런 동력이 점점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거 말고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누군가 그런 나를 보면 넌 이런 것도 못하면서 다른 건 잘하겠냐고 할까 봐 겁이 났다.
'지금 하는 일을 경력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까? 나는 뭐 하나 완벽하게 해내는 게 없구나.'
이런 생각으로 나는 스스로를 또 수렁으로 끌고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