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돼요.

감정에 곰팡이가 핀 그녀를 만났을 때

by 섬세한 다육이








딩―

늘 듣던 말은 유리알 소리와는 달랐다.

오늘의 종소리는 묵직했고, 공기를 천천히 짓눌렀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의 몸 안에서

회색 연기가 문틈으로 스며 나왔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루크, 진정해.’


천장 위를 맴돌던 루크는

날개를 바쁘게 흔들며 내게 시선을 던졌다.

‘조심해. 한 번에 안 될 수도 있어.’


그의 눈빛은 말보다 선명하게 속삭였다.

회색 연기가 밖으로 번져 나오는 건,

그녀가 단 한 번도 감정을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다는 신호다.

곰팡이처럼 번진 감정이, 조용히 그녀를 안에서부터 갈가리 찢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괜찮아요... 그냥 좀 둘러볼게요.”


그녀의 대답은 눈물이 목소리를 삼킨 듯 작고 떨렸다.

그녀는 책장 앞으로 가더니

자신의 눈높이에 있던 책을 꺼내 펼쳤다.

중간쯤을 읽던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괜찮다.. 그래, 난 괜찮아..”


눈물 한 방울이 책에 닿는 순간―

책이 붉게 타올랐다.

그녀 안의 회색 연기는

토네이도를 만난 듯 책방 안을 휘몰아쳤다.


책들이 들썩이고, 잔잔했던 공기가 찢어졌다.


‘밖으로 나가면 끝이야.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에 삼켜질 거야. 루크, 막아야 해.’


‘알겠어! 책방 전체에 방어막 펼칠게!’


책과 커피잔, 의자까지 공중에 떠올랐다.

붉은 기운이 천장을 휘감으며 울었다.

나는 그 틈을 뚫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마음속 깊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둡고, 조용했고, 무너져 있었다.

손바닥을 그 깊은 구멍에 대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상처는 말없이 흘렀고,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 그녀는 부모의 싸움 속에서

늘 친구 아버지의 집에 맡겨졌다.

낮엔 집안일을, 밤엔 분풀이를 견디며 자랐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괜찮다”라고,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하며

감정을 꾹꾹 눌러 묻었다.


그녀는 감정을 지우는 대신

깊숙이 덮어두고 버티며 살아온 것이다.


그 마음은 차갑고, 오래 묵은 채

말라붙은 상처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그 안에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은, 괜찮지 않아도 돼요.”

그 순간—

책방 안 붉은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공중에 떠 있던 책들이 조용히 제자리로 내려왔고

회색 연기는 산들바람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바닥에 조용히 주저앉아

책을 가슴에 안은 채,

숨죽이며 울기 시작했다.


루크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 작은 몸이 가볍게 떨렸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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