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과 새로운 새대의 심리적 분단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까
90년도에 태어난 세대들의 어린 시절 동네 풍경은
아마도 소독차의 길고 새하얀 꼬리겠지만
나에게는 나른한 오후를 깨우며 거리를 지나가던 탱크 포효와
빠르게 날아가는 제트기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나는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국경으로부터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지리적으로 북한과 근접한 곳이라 오랫동안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90년도에 태어난 세대들의 어린 시절 동네 풍경은 아마도 소독차의 길고 새하얀 꼬리겠지만 나에게는 나른한 오후를 깨우며 거리를 지나가던 탱크 포효와 빠르게 날아가는 제트기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이것은 그저 익숙한 나의 일상 중의 한 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북한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살았지만 북한은 그저 교과서에 배운 곳, 심리적으로는 나와 어떤 연계성도 없는 나라로 여겨졌다. 가끔씩 의무적으로 겉핥기 식의 통일교육을 받을 때는 역사적 비극에 대해 책임을 강요 받는 느낌이 들어 입을 삐죽거릴 뿐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사회 초년생 때의 북한을 향한 내 관심 수준은 간간이 북의 도발 소식이 들릴 때 잠깐 긴장하거나 북한 지도자를 희화한 패러디에 깔깔 웃기만 하는 정도였다. 무관심은 서른을 앞둔 근래까지 이어졌었다.
그러다 북한에 대한 관심의 불씨가 켜진 건,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산 지 3년 차 되던 해의 어느 날이었다. 스페인인 남편이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화면속에서 동양인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들의 외모를 보아 한국사람인 것 같았다. 그 중 한 명의 억양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 나는 그들의 대화에 더 집중했다. 북한의 고위 간부였던 북한이탈주민과 인터뷰하는 영상이었다. 그는 황해에서 목숨을 걸고 6시간을 헤엄쳐 탈북에 성공했고 현재는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히 한국에 살 때 탈북민과의 인터뷰를 몇 번이고 시청했을 테지만, 그 인터뷰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해외에 살면서 이방인으로서 겪는 매우 비슷한 어려움과 복잡한 감정을 그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사상적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곧장 탈북민이 쓴 책 두 권을 전자책으로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성주 작가의 <거리 소년의 신발>이라는 책으로 어렸을 적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꽃제비”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한국으로 건너온 이야기였고, 또다른 책은 동 아일랜드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된 박연미 인권운동가가 북한 여성의 탈북 과정을 담은 <내가 본 것을 당신도 알게 됐으면> 이라는 책이었다. 서로 만나본 일도 없는 두 사람이 서술한 북한의 생활들은 여러가지로 겹치는 것이 많았다. 부모님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남아있던 아이들은 배고픔을 달래고자 산으로 들로 푸성귀들을 뜯으러 다니는 장면들, 가족이나 형제들이 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상황들, 북한 간부들에게 당하는 폭력들,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한 어린 소녀들이 성폭력과 인신매매를 당하는 장면들은 내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소설과 영화 속의 사건들보다 더 끔찍했다. 그리고 이미 풍요로울 대로 풍요로워진 200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북한 사람들, 그리고 어딘 가에 살고 있을 나와 같은 ‘90년대 생’의 누군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아팠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들이 한 두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북한 전반에 걸친 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까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의 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X세대 이후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북한 주민의 인권에 무관심했던 나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 아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합창했던 것이 전부이다.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한민족이기에 진심으로 통일을 소망한 적이 거의 없는 우리 세대에는 심리적 분단이 분단의 역사보다 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북한 주민에 대해 이질감과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사실, 직접 만나보지 못했고 전쟁이후 북한에 거주하는 가족이 생존하지 않은 이상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이질감과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리고 통일 교육은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정서적 연대가 부재인 상태에서 통일의 염원과 민족의식의 고취를 장려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심리적 분단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 통일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다.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세대가 평화로운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형제자매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재회를 독려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의 신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민족애를 바탕으로 통일 의지를 가진다면 수많은 이점이 따른다. 남북 간 신뢰와 연대는 평화적인 화해의 속도를 높일 수도 있을뿐더러, 통일 후에도 남북 주민 간의 심리적,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부작용을 빠르게 회복시키고, 단합하여 경제와 사회 등 다방면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통일의 가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때, 심리적 분단의 세대가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린된 북한 주민의 인권’이다.
우선, 한반도의 물리적, 정서적 분단 문제에 앞서 북한의 인권 문제는 여러 국제정세와 기형적인 북한 체제를 고려해 풀어야 하는 난제다. 이미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적으로 다양한 인도적 접근이 있었지만, 북한은 지원을 오로지 핵문제나 외국인 억류 등의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켜 특정 목적의 교섭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지원이 쉽지 않았다. 특히 북핵 문제는 전 세계가 가장 견제하는 부분이며, 인권 문제가 함께 거론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북한사람들의 비윤리적인 실태에 대해 지적을 하면 비핵화 협상에 방해가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정부와 인권 문제를 반드시 다루어야 했던 중요한 순간에도 수차례 묵인되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인권 문제를 희생한 비핵화 노력에는 아무 진전이 없었다.
물론 정치적인 협상 전략을 벗어나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상당한 효과를 본 사례도 있었다. 바로 유엔 활동을 통해 북한 정부가 자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넣었을 때이다. 유엔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 발표, 보편적 정례검토(UPR),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 등을 통해 국제 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집중하게끔 하고 있다. 초기에 북한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이후 유엔이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을 언급하며 문제 수준을 높였을 때, 그제야 반응을 한 것과 동시에 권고사항 중 정치적으로 예민하지 않은 부분들이라도 수용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례는 각 국이 개별적으로 협상을 시도하는 것보다 범세계적으로 북한이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북한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인 압박은 북한 체제의 상부에만 변화를 기대하는 방법이어서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외부적인 압박과 병행하여 북한 내부에서의 변화도 촉구해야 한다. 인권이 보장된 근대 국가들의 대다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활동, 즉, 아래로부터 일어난 움직임으로 그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북한도 이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인권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북한 체제가 자국민의 요구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프트 파워’가 있다. 북한 주민에게 한국과 해외의 미디어 콘텐츠를 공급하여 그들이 외부 세계와 북한의 실상을 깨달아 자발적으로 개혁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내 외부 미디어 확산으로 인한 효과는 기대할 만하다. 북한인권단체 국민통일방송(UMG)과 데일리NK가 2022년 북한 주민 50명을 전화 인터뷰로 조사한 결과 49명이 ‘한국 등 외국 콘텐츠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 중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578회에 출연한 북한이탈주민 전원도 북한에 거주할 때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북한의 학교와 언론에서 보여주는 외국의 모습과 달라, 북한 정부가 보여주는 정보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데이터들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외부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어 하며 현 체제에 불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정보 전달의 노력과 더불어 북한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미디어 기기 공급도 겸행해야 한다. 소프트 파워를 통해 문제를 인식하더라도 북한 주민 간 연결성이 떨어진다면 실제 움직임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를 이용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법은 남북한 젊은 세대의 심리적 분단 문제 해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역사적 경험 없이 분단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새 세대에게 맞는 통일 교육은 가장 먼저 분단 문제의 무거움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미디어 콘텐츠 제작이 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같이 직접적으로 탈북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영화 <모가디슈>처럼 남북 간의 애틋한 정서를 움직이는 콘텐츠는 차세대가 분단의 문제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현재까지 생산된 콘텐츠들은 전쟁, 간첩 등
정치적인 소재에 제한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 콘텐츠 생산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한쪽으로 문화가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의 개별 문화가 공존하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정착할 때, 자신의 문화를 보존하면서 국내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인 주제 없이 남북 간 문화의 차이를 배우고 인정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하거나, 탈북민 연예인 발굴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에서 MZ세대에게 익숙한 인물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치적 편견 없이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화해를 통해 궁극적으로 차세대가 자연스럽게 인권 문제에 눈을 뜨고, 함께 국제적인 목소리를 내며, 남북의 문화가 모두 살아있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방법은 쉽지 않다. 북한은 외부 정보 접근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북한 정부가 자국민이 외국의 미디어를 접해 북한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소프트 파워가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미디어 유입을 통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진실의 확산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북한 체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의회, 코윈 스페인 여성회, 콤풀루텐세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Madrid) 주관 <2023 북한인권에 대한 글짓기 대회> 출품작 입니다. 그리고 오늘 마드리드에 상 받으러 왔어요☺️ 좋은 결과가 있어서 기분이 좋네요! ㅎㅎ 몇 주 동안 북한 인권에 대한 책과 여러 기사를 읽고 머리 싸매고 열심히 쓴 작품이라 브런치에도 공유해요.
부끄럽지만 금번 기회로 처음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통일에 대한 의식이 깨어졌습니다. 저처럼 해외에 나와 살거나 다른 여러 나라들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의 당연한 삶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북한의 실상은 정말 끔찍해요. 더 많은 대한민국 시민과 세계 시민이 북한 인권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길 바랍니다. 작게는 저처럼 북한이탈주민의 책이나 다큐멘터리, 방송 프로그램과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을 깨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도 가져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