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발효종으로 빵을 굽는 것에 대하여
집에만 있던 팬데믹 시절, 어느 순간부터 천연발효종만 사용하여 잘 부풀어 오른 빵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때 매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반킬로그램의 시골빵 스무 덩어리 씩은 거뜬 굽곤 했다. 그때는 둘이서 신나게 두 팔을 겉어 붙이고 큰 대야에 담긴 반죽을 섞으며 다음 날 예쁘게 태어날 빵의 조물주가 되는 것을 즐겼다. 다음 날 종류별로 섞은 열댓 개의 빵 반죽 무게만큼 딴딴하게 뭉친 어깨를 힘겹게 풀어주면서도 말이다.
천연발효종으로만 빵을 만들 때는 온도와 밀가루 종류, 수분 함량 등에 따라 발효를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집에서 기계의 도움 없이 만든다면, 눈과 손의 감촉으로 발효의 정도를 느끼는 직관과 고르게 잘 섞고 2차 발효를 시키기 전에 탄탄하게 쉐이핑을 하는 능숙한 손놀림이야말로 오븐에서 빵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아무리 배합표와 발효 환경을 철저하게 계산하더라도 대부분의 홈베이커들이 첫 시도에 예쁜 빵을 보기가 어렵다. 우리도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피자인지 떡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결과물들을 보며 자주 좌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초보에서 오븐 스프링에 혈안이 된 홈베이커가 되기까지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정연주 작가의 에세이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에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신이 이미 홈베이커라면, 또는 집에 있는 오븐에서 갓 꺼낸 뜨끈뜨끈한 빵 한 조각을 뜯어 먹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 또는 겪을 이야기를 책 속에서 발견할 것이다. 책 중, 작가는 육아와 빵 굽기를 비교하며 '발효종으로 반죽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예측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라고 말한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완벽한 계산으로 반죽을 만들었다고 해서,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고 해서 언제나 잘 부풀어 오른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발효종은 아이들처럼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서, 단지 우리는 가지고 있는 지식과 각자만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감'에 의지하여 최선을 다해 만들고 빵 다운 빵으로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재작년부터는 남편도 나도 각자의 본업과 새 취미에 눈을 돌리다 보니 빵 굽는 주기가 길어져 오븐 스프링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 어느 날은 과발효했지만 간신히 피자 모양은 모면한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힘겹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이 '감'을 언젠가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같은 날 저녁 남편과 함께 터덜터덜 마을 한 바퀴를 돌며 걱정된 마음으로 물었다.
"우리 이렇게 너무 굽지 않다 보면 진짜 언젠간 빵 만드는 감을 잃지 않을까?"
그는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대답했다.
“이젠 우리가 집에서 빵 만드는 건, 자전거 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 오랜만에 타려고 하면 ‘내가 예전처럼 잘 탈 수 있을까?’하다가 동네 몇 바퀴 돌다 보면 금방 익숙해지잖아. 빵 만드는 것도 그런 것 같아. 오랜만에 만지면 몇 번 실패할 수는 있어도 곧 다시 제대로 된 빵을 만드는 데 익숙해지겠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훗, 꽤 괜찮은 비유였지?' 하면서 뿌듯한 표정으로 밤 산책을 이어갔다. 그날 그의 말은 맞았다. 그날 이후 다시 한번 예전의 '감'을 더듬어 정성을 다해 만들었을 때, 만족스럽게 부풀어 오른 빵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실패하고 성공하기를 반복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듯 너무 힘주지 말고 예전의 기억을 불러온다는 생각으로 반죽을 하면 곧 다시 예쁜 빵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전, 냉장고 구석에 박혀 오랫동안 손길을 받지 못한 발효종을 동면에서 깨울 겸 올해 처음으로 빵을 구웠다. 아주 고맙게도 우리의 새해 첫 빵은 행복하게 잘 부풀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