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갈 때는 좋았으나 바닥에 곤두박질치다
번아웃은 단순히 과도하게 일해서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진정한 염원이 있는데요. 이러한 염원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계속해서 에너지를 가져다줍니다. 유대, 자유, 친밀감, 아름다움 등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핵심 동기는 상황이 달라져도, 외부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지속되는 내재적 보상이 거든요. 다시 말해서 번아웃은 내가 하는 '일'과 끊임없이 연료가 솟아나는 샘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잠시 폭발적인 힘을 빌려주는 회피 동기를 계속해서 쓰면 완전히 소진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이너마이트에 불을 붙이고 날아갈 때까지는 참 좋았는데요, 바닥에 곤두박질치면 무조건 아플 수밖에요.
- 김지언·노영은, <불안 다루기 연습>
때로는 우연히 펼친 책에서 너무나 정확한 답을 찾을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불안 다루기 연습>라는 책을 읽다가 최근에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명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혼자 보는 노트에 썼던 글의 제목이 '정서적 번아웃'이었다. 일주일 전 글을 쓸 때만 해도 해상도 높게 감정을 진단하고 쓴 글이 아니었다. '이런 감정 때문에 힘든 건 아닐까?'라고 어렴풋하게 생각했고, 그 감정을 표현할만한 단어가 정서적 번아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힘들고 고갈됐다고 느끼던 때였다.
놀랍게도 그 진단이 정확히 맞았다. "업무를 하는데 정신적 에너지 소비는 계속했지만 정서적 충족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기간이 길어지며 정서적으로 고갈됐다"라고 노트에 썼다. 어렴풋하게 느꼈던 '소비만 하고 보충되지 않는 느낌'이 책 속의 문단을 만나니 명확한 나의 감정상태임을 알게 됐다.
내가 바라는 염원은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가 솟구친다. 특히 일을 통해 도움의 결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예를 들어 회사에 사내 위키를 도입했는데 매월 페이지 뷰가 2,000~3,000씩 나온다. 그 숫자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감각을 직접적으로 일깨운다. 그만큼 보람을 느꼈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가 속한 조직일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조직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스스로 있다면 역시나 꽤 힘든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전에 했던 조직문화 진단이 그 예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바꿔야만 했고, 바꾸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었지만 마지막에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혼자서 5-6개월 프로젝트를 끌고 나갔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한 일들은 스스로의 염원을 충족하지 않았다. 개인 혹은 조직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일이 많았다. <불안 다루기 연습>에서는 개인의 동기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특정 대상이나 목표에 가까워지려는 '접근 동기', 다른 하나는 두려운 상황이나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회피 동기'이다.¹ 올해는 회피 동기로 일하는 상황이 많았다. 경영진에게 깨지기 싫어서, 팀장님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아질까 봐, 허겁지겁 급하게 일했다. 그렇게 반년을 쉼 없이 일하자 감정 창고가 바닥나 버렸다.
지금은 소진된 마음을 겨우 채워서 움직이고 있다. 기름은 바닥났지만 긴급주유로 움직이는 상태랄까. 그래도 마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던 건 내가 과거에 했던 일, 지금 하고 있는 업무 경험을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채용 공고를 발견했던 경험이다. '지금 하는 일이 정서적으로는 힘들지만 일 자체는 언젠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졌던 접근 동기가 조금은 생겼달까. 지금 일의 생각지 못했던 측면을 볼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지 아직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 현재 팀 내에서 일의 종류를 바꾸거나, 아예 팀을 바꾸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일과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현재 상황 그대로 가는 건 위험하다. 기회를 보아 가능한 일을 하나씩 시도해 볼 생각이다.
1. 김지언·노영은, <불안 다루기 연습>, 리드앤두,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