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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위로바다 Jul 10. 2024

회사에 다니며 좋았을 때?

1년차 신입사원

회사에 다니며 좋았을 때?


회사에 다닌 지 1년이 되었을 때이다.

마감 시간이 촉박한 업무량에 치이고,

빠르게 결과물을 재촉하는 상사한테 치이고

퇴근길 지옥철에서 1시간 넘게 치이다가

집에 도착하면 지쳐서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쉴 때도 회사 사람들에게 메시지라도 오면

집에서도 종종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면 다음 날 다크서클로 줄넘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예민해지면 날씨가 좋아도

“이렇게 날이 좋은데, 회사에 있네….” 라고 불평하고,

날씨가 안 좋은 날에도

회사에 있어서 “기분도 안 좋은데 날씨도 거지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평생 자식을 위해 일하셨는데 아직도 식당에서 일을 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존경심과 함께 ‘좋은 점들을 더 바라보아야 하는데….’라며 반성하게 된다.     


'회사에 다니면서 좋은 점은 뭘까?'

'월급날이 가장 좋기는 한데 후후….‘

직장 동료들과 회사 건물 옥상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가

나는 엄마한테 온 메시지를 보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결국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90이 넘은 연세로 충남 공주 시골에서

작은 마늘부터 쌀까지 밭을 가꾸시고

소부터 닭, 진돗개까지 다양한 동물을 기르셨다.

7남매를 키우시면서 손주와 증손주까지 보셨기에

늘 건강한 모습으로 내게 기억되었다.     


당장 지난주까지만 해도 인천 큰 이모네로 오셨고

나를 보고 싶어 하셨지만 하필이면 그날 야근을 해야 했다.

늦게나마 퇴근 후 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빵을 사려고 알아보던 중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시골로 내려가셨었다.     


"할아버지! 조만간 시골로 내려갈게요!"


할아버지께 전하는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 내가 야근만 하지 않았어도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여전히 회사 탓을 하는 나였다.     


아이처럼 울고 있던 나를 같이 있던 대리님이 부축하며 짐을 챙겨주셨고

부장님은 회사 일은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조부모상 휴가 처리를 해주셨다.     


나는 지인들 장례식장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수많은 사람, 서있는 것 조차 힘겨워보이는 상주들을 보며

어떤 위로의 말을 건내야 좋을지 모르겠다.

좋았던 날씨는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오신 수많은 사람의 눈에도 비가 내렸다.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를 이모 삼촌들,

다들 바쁘게 살았기에 나의 어릴 적 모습만 기억했다.     


가벼운 인사치레 비슷하게 모두 나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전공은 영상 편집과 디자인이고 지금은 IT 중소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어요.”

“그래 너희 엄마가 너 키우느라 고생이 참 많아. 더 열심히 해서 효도해야지.”

막내 삼촌을 시작으로 명절 때도 들어본 적 없는 결혼 이야기까지 참 다양했다.

그래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못 봤던 메신저들을 확인해 보니

늘 내게 조언을 해주셨던 부장님과 교류가 별로 없어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팀 팀장님들의 위로 메시지가 와있었다.

친한 동료들은 퇴근 후에 3~4시간 거리인 이곳까지 찾아오겠다고 한다.     


슬픔의 무게를 정할 수는 없지만 나보다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렇게 함부로 위로받아도 되나 싶은 알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내가 그래도 회사 생활을 나쁘지 않게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잔을 받았다.

우울했던 표정에서 미소가 지어질 때쯤 회사에서 근조화환을 보내주셨다.

다양한 화환들 사이에서 우리 회사와 대표님의 이름이 적혀있다.

“회사에서 이런 것도 보내주네!”

회사에 다니니 이렇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에도

두 눈이 퉁퉁 부은 채 뿌듯해하는 표정을 한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도 인생을 열심히 사셔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과 화환들이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문득 회사에 다니는 게 뭐가 좋은지 찾던 내 모습이

그저 일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어린애같아서 부끄러움이란 숙취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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