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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Dec 21. 2023

아산 공세리 성당의 추억

<잘못 찾아간 곳에서의 뜻밖의 발견>


  집안의 장손이셨던 아버지는 온양 정(鄭) 가의 문중 일을 오래 맡아 오시면서 유난히 문중 이야기를 많이도 하셨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방학을 이용해 잠시 시골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자부심은 문중일을 보시는 것이라 느꼈었다. 어린 마음에도 유난히 문중얘기를 하실 때 가장 힘이 나셨기 때문이다.      


딸인 나로서는 참으로 따분했던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 나는 아버지한테 들은 대로 온양에 있다는 그곳 '정 씨 문중 사당'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길치친구와 함께 떠난 길치인 내가 제대로 길을 찾을 리는 만무했다.

네비도 믿지 못하는 고집은 영영 다른 길을 달리고 있었고 한참 헤맨 끝에 찾아간 곳이 바로 ‘공세리성당’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그루의 나무에 반해버렸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었다.

서예를 하면서도 수묵화에 몰두했다.

그래도 양심상 진행 중이었던 내 전공만큼은 빠질 수 없었기에 그림 도구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면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수묵화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었다.

수묵화의 장점은 먹 하나로 명암을 내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출처 : 네이버(공세리성당 팽나무)



  그런데 내일 있을 마지막 수업자료를 만들며 피치를 올리던 중, 크리스마스가 떠오르고 교회와 성당의 크리스마스 맞이의 분주함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몇 년 전  우연히 찾게 된 아산의 ‘공세리성당’이 떠올랐다.    


‘공세리’란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 일대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貢稅倉)’란 말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성지순례의 대표로 꼽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길을 잃고 들어갔던 공세리성당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낙엽 쌓인 나무뿌리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인 커다란 아름드리 팽나무는 세월을 보여주듯 위용을 자랑했고, 제각각 앞을 다퉈 땅을 뚫고 나온듯한 뿌리의 굴곡진 선들은 성당의 분위기에 걸맞게 알 수 없는 무언의 말을 건네는 듯했다.     


공세리 성당의 문지기라 불린다는 이 팽나무의 높이는 32m, 둘레 5.5m의 크기로 그 웅대함으로 성당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숙연함과 겸허함을 가르치는 듯했다.     


당시 그곳 분위기 압도된 나는 서둘러 뿌리 부분을 카메라에 담아왔고 그것을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성당을 찾았으면 성당 전체를 담았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한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무종교인 나의 시선은 오로지 나무뿌리였다.

    

찍어온 사진을 놓고 먹의 농담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검은색의 먹만을 사용해 그린 것이기에 음습하고 무서운 느낌이라 집에는 두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게 우리네 인생과도 같아서 나름 제목을 ‘연륜’으로 지어 작은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 성당은 1890년에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입구에 서있는 이 나무의 수령은 350년이 지나 400년이 가까워진다고 한다.     



수묵화 : 공세리성당 입구 팽나무

    


성당건립의 목적은 순교자들을 기리는 곳으로, 천주교 박해 사건에 대해서는 이곳 브런치에 ‘영화 사일런스로 본 기독교 박해’라는 제목으로 기록 한 바 있다. 그리고 영화가 담지 못했던 것들은 일본의 “침묵”이란 작품을 통해 내용을 가미했었던 것 같다.      

나는 책과 영화를 통해 알아왔던 천주교 박해 사건을 생각하며 이곳 성당의 역사를 짚어보기로 했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공세리성당은 1890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으며, 충청남도 기념물 144호로 지정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성당이 고풍스럽고 조경 또한 잘 다듬어져 있어 사진사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여러 드라마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님이 고약을 만들어 많은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에밀 신부는 고약 만드는 비법을 이곳 신자였던 '이명래'에게 전수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했다고 하니, 공세리 성당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 명래 고약'의 발원지가 된다.   


우연히 찾았던 이곳 입구에서 위용을 자랑하듯 서 있었던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며 감탄사와 함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기억. 그림 연습을 한다며 먹의 농담으로 뿌리의 굴곡을 표현하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내게는 다가올 크리스마스의 추억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봄이 되면 찾아가 뿌리의 안부라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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