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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n 22. 2024

제제, 같이 클라이밍 할래요?

저도 같이 하고 싶지만요.

회사에는 클라이밍 소모임이 있다. 신규 입사자가 오면 자연스레 합류 제안을 하곤 하는데, 나에게도 가볍게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왔다. 같은 팀 팀원과 HR 담당자까지, 그리고 그 외 교류가 적은 뉴페이스들까지. 빠르게 친해지고 싶어서 깊이 고민했지만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제가 클라이밍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요.



2년 전, 함께 해외 봉사활동을 갔던 팀원들에게서 오랜만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팀원 중 둘이 가끔 만나 클라이밍을 하는데, 다 같이 모여 한 번 하자는 거였다. 한창 클라이밍 붐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옷은 뭐 입어야 해? 신발은?


클라이밍의 ㅋ자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면 장비부터 사모으던 나는 옷을 사야 하나 고민을 했다. 다행히 상의는 봉사할 때 입던 팀복을 맞춰 입고, 하의는 긴 트레이닝복이면 된다고 했다. 신발은 클라이밍장에서 암벽화 대여가 된다고 해 안심이 됐다.



모이기로 한 날,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거의 3년 만이었다. 근황 이야기를 하며 클라이밍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클라이밍장은 결혼식장을 개조한 곳으로 커다란 샹들리에가 걸린 곳이었다. 천장은 높고 창 밖으로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 신기했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완전 초보였던 나는 초보자 팔찌를 차고 조금씩 클라이밍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난이도는 색깔별로 구분되어서 노-분-파-... 순서랬나 그랬다. 다 같이 몸을 풀고, 각자의 난이도에 맞춰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클라이밍 경험이 많은 팀원이 처음 몇 번 도와주고, 처음인 팀원끼리 뭉쳐 낮은 난이도부터 시작했다.



같은 색만을 활용해 가장 높은 홀드를 터치하면 되는데, 가는 길을 고민해 풀어나가는 과장이 재밌고, 게임 같았다. 암벽화가 꽉 끼어 불편한 것만 빼면 그래도 클라이밍은 꽤 재밌었다. 아, 한 가지 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E 성향으로 가득 찬 것만 같은 분위기가 부담이 되긴 했다. 


문제를 풀고 나면 바깥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문제를 풀 방법을 찾는데, 그게 뭔가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오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다른 사람이 어려워하면 경로를 알려주고 성공하면 환호하는 에너지 가득한 분위기도 어색했다. 누가 옆에만 있어도 몸이 굳어 뻣뻣해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나름 문제 푸는 재미가 있다 보니 점점 더 높은 단계로 향했다. 그러다 기울어진 벽을 보게 됐는데,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기울어진 벽은 오버행이라고 불리는데, 홀드의 색은 같더라도 일반 벽보다는 더 난도가 높은 유형이었다. 그리고 초보자는 사실 오버행을 안 하는 게 좋은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운동을 하다가 아파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버행을 하며 허리의 근육통이 오는 것도, 그저 안 하던 운동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계속 운동을 이어갔다. 2시간 여의 클라이밍을 마친 후에 다 같이 피자를 먹으며 허리가 계속 아팠지만 내일이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허리는 낫질 않아 근육통이 오래가나 보다 싶었다.  그래도 조금 활동하니 일상생활은 가능할 정도로 조금 나아졌다. 원래도 아픈 걸 잘 참는 편이었고, 헬스를 할 때 생긴 근육통도 이틀정도 갔기에, 역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그 후 며칠 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주기 위해 시골로 향했다. 오랜만에 도와드리는 거라 아주 열심히 고추밭에 말뚝을 박았다. 한 구역을 끝냈을 때쯤일까, 이제 거의 나은 듯싶었던 허리에서 또다시 지끈지끈 통증이 올라왔다. 그러다 조금 지나자 허리를 굽히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함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니 하필이면 일요일. 문을 연 통증 전문 병원을 겨우 찾아 진단을 받았다. 진단명은 태어나 처음 들어본 허리디스크. 게다가 원래 몇 번과 몇 번 사이 디스크가 좁아 무리한 운동은 삼가야 한다는 거였다. 몇 번의 치료 덕에 이제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무거운 걸 들거나 무리하면 금세 신호를 보내오는 허리가 됐다.


그렇게 첫 클라이밍은 허술한 내 몸에 대한 이해와 10만 원이었나, 더 되는 병원비를 남겼다. 그리고 클라이밍은 섣불리 도전하기 무서운 운동으로 남아버렸다.


-


제제, 같이 클라이밍 할래요?


제가 클라이밍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요. 

(또 그럴까 봐 무서워요. 하지만 저도 정말 같이 하고 싶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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