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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Aug 04. 2024

사람들은 왜 러닝에 환장할까요?

러닝, 그게 대체 뭔데 꽤 재밌네요.

우리 다음은 러닝인 거 아시죠?


회사의 러닝 채널 멤버이자, 마라톤 유 경험자인 호야는 러닝의 장점과 효용성을 얘기하며 틈만 나면 러닝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안 그래도 러닝이 대중화되고, TV프로그램에서 아름다운 마라톤 완주 에피소드가 나오며 주변 친구들이 러닝 인증샷을 많이 올려대서 도대체 러닝이 뭐길래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러닝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엄두를 낼 수 없는 그런 운동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러닝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관리에 진심인 사람들이었고, 출근 전 아침 러닝 루틴까지 가진 사람들이 SNS에 많이 비쳤더랬다. 게다가 달리기는 초등학교 때 운동회로만 해보거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나 뛰어봤지 루틴으로 한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준비물 뭐 필요해요? 옷은 뭐 입어요?



하지만 호야의 끈질긴 구애에 모두들 속는 셈 치고 한 번은 시도해 보기로 하고, 아직 추운 기운이 완연하던 2월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올림픽 공원에서 만나게 됐다. 사실 이 스케줄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겨우 정해진 것으로, 만나기 전만 해도 겨울에 뛸 때는 뭘 입어야 하는지, 옷 말고 또 준비할 건 뭐가 있는지, 뛰기도 전에 장비부터 걱정하던 우리였다.



쿠팡에서 작은 복대를 하나 사고, 지난 요가 클래스 이후 고이 모셔두던 레깅스를 다시 꺼내 입었다. 신발은 여행할 때만 신는 활동성 좋은 뉴발란스 러닝화로, 혹시나 추울까 외투까지 중무장하고 나서야 모이기로 한 한성백제역으로 향했다. 이제야 말하지만, 가기 직전까지도 한겨울에 러닝을 하러 가는 게 맞나 한참을 미적거리다 겨우겨우 집 밖을 나섰다는 후문이다.



하나 둘 셋넷, 둘둘셋넷

마라톤 유경험자 호야의 선창과 함께 다 같이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며 러닝을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엘라의 요가까지, 정말 몸을 추웅-분히 풀고 나자 그제야 반팔 안으로 조금씩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야가 알려준 러닝메이트 어플, 런데이를 켜고 나서 드디어 생애 첫 러닝의 첫 발을 떼었다.


처음 뛰는 사람이 꽤 많았기에, 우리의 첫 목표는 가볍게 뛰기 좋은 3km, 적당히 천천히 뛰며 러닝의 감을 먼저 익혀보기로 했다. 날이 꽤 추웠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러닝 크루가 와서 서로 격려하며 다 같이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러닝 하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 보는데도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지나가는 모습이 약간 오글거리긴 해도 꽤 멋져 보였다.



3km는 딱 올림픽 공원 한 바퀴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7분 12초 정도의 페이스로 23분 정도를 달렸다. 처음 러닝은 꽤 힘들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헬스장을 다닌 효과였는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묘한 경쟁심도 생겨, 마지막에는 전력질주를 하며 "내 체력 좋아"를 굳이 굳이 보여주던 나였다. 러닝하이라는 표현이 있다고 했는데, 왜 러닝에 중독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고작 20분을 뛰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 날도 러닝은 워밍업 행사였을 뿐이고, 근처의 송리단길에 가서 맛집과 카페 투어를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러닝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논 우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요가 원데이 클래스처럼 한 번 정도 러닝을 체험했으니 보람차다, 잘했다 하며 다음 활동을 계획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럼 우리 다음에는 언제 뛸까요?



호야는 생각보다 러닝에 진심이었다. 설마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러닝의 매력도 조금 알았겠다, 성공적으로 완주도 했겠다, 누구랄 것 없이 어물쩍 "다음 달에 뛸까? 삼일절 어때"라며 애매한 다음 약속을 잡고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더랬다. 그게 마라톤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저도 한 번 갈게요


삼일절이 다가왔고, 영업팀의 건민까지 합세해 우리의 러닝 장소, 올림픽 공원에 다시 한번 모였다. 나는 다음날 일본 여행을 떠나는 일정이었지만, 처음 느낀 그 러닝하이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그저 안 해본 걸 한 번 해봐서 느낀 뿌듯함이었는지, 러닝이라는 운동이 가져다준 느낌인지를 알아볼 계획이었다.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한 번 다시 러닝을 해보고 싶었다.



이번 목표는 5km.  5, 10, 하프, 풀로 구성된 마라톤 최소 거리였기에, 대회에 나간다는 가정하에 다 같이 5km를 뛰어보기로 결정을 했다. 게다가 지난번에 비해서는 페이스도 끌어올려, 말 그대로 대회 맛보기를 해보자는 호야의 의견이었다.



지난번에 비해서 날이 더 풀려서인지, 더욱 많은 러너들이 있었다. 게다가 무슨 행사를 하는지 응원하는 사람들과 반환점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이날 달린 거리는 5.12Km, 평균 페이스는 6분 50초. 확실히 3km에 평균페이스 7분에 비해 힘이 많이 들었다. 팀원 중 몇 명은 중간에 걸을 정도였다. 분명 처음보다 힘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할만했다. 어쩌면 마라톤에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무모한 꿈을 꿨다.


이 날은 꽤 긴 코스에 지쳤는지, 밥만 먹고 헤어졌다. 놀 정도의 체력은 모두 남아있지 않았다. 다음날은 종아리와 엉덩이에 근육통도 올라왔다. 생전 처음 근육통을 느껴보는 부위였다. 러닝하이라고 하는, 그 좋은 기분은 분명 있었지만 확실히 쉬운 운동은 아니었다.



진짜 마라톤 신청할게요?



매번 말만 나오고 실행이 더딘 우리가 답답했던지, 호야가 마라톤 참여를 제안해 왔다. 마침 마라톤 행사가 많이 열리던 4, 5월 즈음이라 갈만한 마라톤 행사도 여럿 있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큰 생각 없이 "그, 그래 가자!"라고 대답했고, 엉겁결에 5월 19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소아암환우 돕기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게 됐다. 그날부터 호야의 마라톤 특훈이 시작되었다.



이제 날이 조금씩 따뜻해져 장소를 한강으로 옮겼다. 호야와 나는 천호역 인근의 새로 생긴 투썸 플레이스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다른 팀원은 9시가 다 되어서야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는 찬의 파란색 아반떼에 올라 다 같이 광나루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첫 야간 러닝이었다.


공원을 달리는 느낌과 한강을 달리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강바람을 맞는 기분, 멀리 계속 바뀌는 한강의 야경을 보는 기분은 정말 상쾌했다. 이 날은 처음으로 6km를 뛰었는데, 페이스도 6분 초반대로 꽤 올려 뛰어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였다. 한강에 앉아 치맥을 하는 인파들 사이를 뛰어가며 마치 갓생을 사는 듯한 뿌듯함도 느낄 수 있었다. 막차를 놓치고 겨우 N버스를 타고 집에 가게 됐는데,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왠지 모르게 러닝 연습을 자꾸 미루게 됐다. 러닝을 마치고 난 기분은 너무 좋았지만, 러닝 하러 가기까지 마음먹는 게 쉽지 않고, 아직도 혼자 뛸 정도로 노력할 마음은 들지를 않았다. 그 사이 무슨 자신감인지 5km 대신 10km을 출전하기로 변경하기도 했는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제제, 뛰고 있어요? 이제 진짜 한 달도 안 남았어요.


그 말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게으른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라도 같이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10km 참여를 얘기했지만, 아직 한 번도 실제로 뛰어본 적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대회에서 처음으로 완주를 하는, 상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다른 멤버들은 계속 꾸준히 연습을 이어오고 있었다.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었다.


또다시 한 달만,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서야 또 한 번 한강에 나왔다. 하필 미리 잡혀있던 강릉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자 드디어 처음으로 10km 뛰기로 한 날이었다. 밤새 강릉에서 노는 다른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오는 KTX에 몸을 실었다. 집에서 러닝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천호역에 왔다.


생애 첫 10km, 역사적인 날이었다. 가슴이 떨리고 살짝 무서웠다. 뛰다가 포기하고 싶으면 어쩌나. 혹시 뛰다가 다리 접질리면 어쩌나. 뛰다가 배가 아프면 어쩌나. 별에 별 걱정이 다 떠올랐다. 오늘도 러닝 선생님 호야의 리드로 첫 발을 떼었다. 오늘은 실제 대회처럼 조금 빠른 스피드로 달려볼 계획이었다.


5km 반환점쯤 가자 숨이 가빠왔다. 전날 강릉에서 과음을 한 터라 컨디션도 좋지가 않았다. 이제 곧 끝났나 싶은데 아직도 5km, 그리고 또 뛰다 남은 거리를 보면 3km 이상이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 10km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엘라와 찬은 무슨 일인지 저 멀리 앞서나가고 있었다. 더 빨리 가고 싶었지만 발은 따라오지 않았다.



러닝메이트 호야가 스퍼트를 맞춰줘며 옆에서 나란히 달려주었다. 체력은 거의 없었지만, 입은 살아있었다. 결혼과 이직, 회사생활에 대한 고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말없이 뛸 때보다 더 힘은 들었겠지만,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0km 완주를 해냈다.



페이스도 6분 30초로 꽤 빠른 편이었다. 이 날은 초반부터 빨리 달렸는데, 초반에는 천천히 가고 점점 스퍼트를 올렸던 지난번의 방식이 더 잘 맞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점점 러닝에 익숙해지고 나만의 방법도 생겨나고 있었다. 꾸준히 해오는 운동이 많이 없었는데, 여러 번을 반 복하고, 나만의 방법도 생겨나는 그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대회 전 마지막 달리는 날. 이번에는 대회참 여를 가정하고 개인별 스퍼트를 조절해 보기로 하고 더 빠른 스퍼트를 시험해 봤다. 다만 3일 뒤가 경기여서 10km가 아닌, 5km 안팎으로 달리기로 했다. 한 번 10km를 달리고 나자 자신감이 붙었다. 6.12km를 뛰었는데 평균 5분 52초의 스퍼트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러닝에 탄력이 붙은 느낌이 들었다. 예감이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3일 뒤면 생애 첫 마라톤 대회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온 달리기, 겨우 한 번의 완주기록.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함께 뛰는 동료들이 있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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