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신입생 OT 때 같은 조로 처음 만난 그녀와 입학식 다음날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주변의 선배들은 "좋을 때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해보는 연애는 정말 달콤했다. 그런데 꼭 "OT 때 같은 조로 만난 신입들이 사귀면 얼마 안 가긴 하지만..."라는 말이 붙어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정말 얼마 안 가 헤어지려나 싶기도 했다. 2년을 넘게 함께한 어느 날 나도 어느덧 군대에 가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또 "남자친구가 군대 가면 거의 헤어진다."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 우리 둘은 내가 군대를 가기 몇 개월 전부터 데이트를 하다가도 별안간 울곤 했다. 입대 하루 전에는 둘 다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아침부터 밤까지 데이트를 하다가 다시금 울면서 헤어졌다. 1년 10개월이 지나 나는 제대를 하고 예비군 패치를 단 바로 그날 그녀를 만나고 귀가했다. 복학 후 1년 정도 지나 그녀는 취업을 했다. 주변에서 또 "여자가 먼저 취업하면 거의 헤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믿지 않았다. 정말로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고 9년 364일을 연애하고 10주년 기념일 하루 전날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나는 남자들은 거의 부러워하지 않는 '첫사랑과 이루어진 남자'가 되었다.
결혼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렸다. 누군가는 "신혼이 가장 좋을 때"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장 많이 싸울 때"라고도 했다. 이번에는 둘 다 맞는 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자면서도 하루하루 같이 있다 보니 가장 많이 싸웠고 싸우면서도 가장 좋았다. 하지만 결혼에 관해 주변기혼남녀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말과 비슷했지만 다른 말이 하나 더 달려있었다. "좋을 때다. 아이를 낳고 나면 좋은 시절은 다 간 것이니 그전에 즐겨라."
결혼 2년이 지나 우리에게도 아기가 찾아왔다. 우리의 애칭인 토리(나), 아리(와이프)를 이어받아 4월 초 예정일, 그러니까 벚꽃이 예쁘게 피어날 때쯤에 맞춰 건강하게 와달라고 체리라고 태명을 지었다. 임신 5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점점 커져가는 와이프의 배에 '튼살크림'을 발라주면서 생각했다. '네가 나오면 정말 좋은 시절은 다 간 것일까.' 하고. 이번에는 정말로 주변 말이 맞을 것만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녀와의 오붓한 시간들이 없어질 것은 정말로 확실했으니까.
아기가 태어났다. 정성스레 이름도 지었다. 실명을 밝히기는 쑥스러우니 우니라고 하자. 우니가 태어나고 와이프가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주변에서 이번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금이 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정말 좋은 시간은 비로소 끝난 것이구나.'
아기가 집으로 왔고 와이프, 나, 아기 이렇게 셋만 집에 남았다. 그에 맞춰 나는 2주 정도 휴가를 쓰고 와이프를 도왔다, 라기보다는 육아를 배웠다. 처음엔 신기하고 무서웠다. 이 조그만 생명이 내 손에서 잘못하다 떨어지거나 바스러지지 않을까 무서웠다. 와이프랑 사랑해서 낳은 아기이니 당연히 소중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엄청 예쁘거나 귀엽거나 보고 싶어 죽겠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성애를 그렇게 타고나지는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젖병에 분유를 담아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울 때 안아 달래고, 품에 안아 재우다 보니 내 생에 별로 겪어보지 못한 평온함을 얻었다. 출산휴가 2주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손아귀를 폈다 접었다 할 수 있게 된 우니가 내 손가락 하나를 꼭 잡고 잠들었고 고단했던 나 역시 소파에 앉아 잠이 들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좋은 시절은 도대체 언제 가는 것일까.'
이제 우니는 미운 네 살, 36개월로 다가서고 있다. 나는 나날이 그 녀석이 너무 보고 싶어서 남자로서는 드물게 육아휴직까지 내버렸다. 이렇게 나의 연애, 결혼, 출산은 그저 감사하고 행복에 겹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확신하건대 나만 똑바로 사랑한다면, 특별한 자연재해나 재앙이 없는 한 나는 내가 그녀와 꾸린 이 가정과 함께 행복할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에게 배우라고 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사람에게 배우라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성공하고 싶거나 행복하고 싶으면 그런 노하우를 갖춰 실제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결혼도 결혼에 성공한 사람에게 조언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이 글쓴이다.
이 선언은 남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과 사랑은 왜 이렇게 끝도 없을 것처럼 이어질까 생각해 보니 내 지난 연애와 결혼, 출산 육아의 세월에 반성할 것도 많았지만 꼭 기억하고 지키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반성할 것을 반성하고 지키고 싶은 것만 지킨다면 앞으로도 정말 나와 우리 가족의 행복, 사랑은 끝이 없을 것이기에 그 모든 역사와 생각들을 남겨놓고자 이 글들을 쓴다.
곰곰이 돌아보니 우리 부부의 지난 역사는 서로를 사랑하는 역사라기보다는 사랑 자체를 배우는 역사였다. 무엇보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자신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상처 주고 서로를 통해 상처받는 날이 많았다. 다행히 그때 우리는 아직 어렸으므로 대차게 헤어지지 못하고 상처와 눈물콧물이 얼룩진 구질구질한 관계를 이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고 결혼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까지 그 사랑을 키워가며 행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지난 15년의 시간을 돌아볼 모든 글들을 '모두를 위한 주례사'라고 이름 붙였다. 법적인 결혼은 남녀가 만나 혼인신고를 하는 것을 뜻하지만 결혼을 '누군가와 평생 함께하기 위한 다짐 혹은 약속'이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결혼을 한다. 누군가는 평생 자기 스스로와 함께 하기를 각오한다. 누구나 남녀가 만나 함께하는 형식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하지만 겪어야하는 여정은 결코 완전히 다르지 않다. 부부가 서로 많은 대화와 갈등을 지나야 하듯 혼자 사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와 부단히 부딪히고 대화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인생은 마땅히 존중받고 응원받아야 한다. 다만 그 모든 인생의 과정에는 사랑이 깃들어야 한다. 사랑이 의무라기보다는 사랑이 깃들어야만 지속이 가능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까닭이다. 남녀가 결혼했다면 자기 자신과 결혼 상대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고 자신과 결혼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더 철저한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남녀가 만나는 결혼과 출산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치라고 회자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법적인 혼인을 포기하고 떠밀리듯 혼자 살기를 각오한다. 내가 결혼과 출산이 메말라가는 사회적 세태에 불편한 이유다.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니라 결혼과 출산이 줄어드는 맥락에 사랑에 대한 냉소가 깃들어 있고 주체적인 선택이 아닌 떠밀린 선택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맥락들이다. 따라서 연애부터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 모두 과분한 행복의 연속이었던 나에게 혼인과 출산의 감소는 개인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사회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이미 말했듯 모두가 결혼과 출산이 행복의 관문일 수는 없다. 누군가는 혼자 살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낮은 출산율을 보일 정도는 아니다. 내 주변의 수많은 30대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할 수 없다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또 상대방에게 맞춰 살아가는 결혼은 그 자체로 구속이자 불행의 관문이라고. 그러니 나는 결혼은 포기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에도 동일한 말을 한다. 출산과 육아는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한 아이를 이 엄혹한 세상에 내보내는 현실이라고. 그래서 결혼은 할 지언정 출산은 포기하겠다고.
하지만 나의 삶으로 증언하건대 남녀가 만나 출산과 육아를 겪어가는, 그러니까 동물로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번식과 가족 구성의 과정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오히려 본능에 충실한 행복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번식을 본능으로 하는 동물이다. 때문에 평생의 반려자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출산을 통해 자식을 길러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행복의 유일한 길은 아니더라도 행복의 지름길이자 가장 큰 행복의 관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은 다수를 위한 행복의 길이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소수가 혼자 사는 삶과 출산하지 않는 삶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결혼과 출산은 현실이지만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정말 현실적으로 본다면 결혼과 출산, 육아까지도 오로지 사랑만이 현실이다. 다만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꼭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할 때 특히 잘못 사용할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쩌면 사랑에 대한 정리가 잘못되어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인 저출산 문제에 시달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 개인의 행복도가 그렇게 낮은 국가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어찌 보면 이 모든 글들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정리해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쓰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글들은 크게 연애와 결혼+출산+육아로 나뉜다. 연애는 부족한 스스로와 서로를 통해 사랑을 배워가는 시간이었고 결혼 전후의 모든 과정들은 그때 배운 사랑을 돌아보며 사랑에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시간이었기에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 의미도 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점점 흐릿해지는 우리의 연애 기억과 기록과 여러 재산 변동의 흔적으로 또렷이 남는 결혼 이후의 기록으로 나눈 의미도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분명 결혼은 우리의 10년 연애의 부산물이었다. 그래서 늘 또렷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도대체 왜인지 거짓말처럼 이 녀석을 낳기 위해 우리가 만난 것만 같은 기억에 대한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니 점점 그 기억들이 흐려진다. 분명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상상에서조차 없던 녀석인데 왜 이 녀석이 우리의 모든 사랑의 기억을 왜곡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짧지 않은 청춘의 추억이 자꾸 기억의 저편으로 흐려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펐다.
그래서 연애의 과정은 우리의 부족했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던 과거를 더 이상 잊지 않고자 당시 부족했던 두 사람의 연애 실화와 상상을 섞어 소설의 형식으로 썼다. 우리의 치부를 완전히 솔직하게 드러내기에는 쑥스러웠으므로 가명을 사용해 허구를 좀 섞었지만 그 모든 허구는 나나 와이프가 취재를 통해서든 독서를 통해서든, 아니면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든 실제로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진실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우리 스스로가 겪었던 사실만 걸러낼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연애에 대한 소설 형식의 글들은 삼국유사와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 설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로 결혼을 확신하고 결심한 때부터의 이야기는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이고 특히 이 글쓴이는 결혼 전에도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 인격적으로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다. 하지만 SNS의 발달로 결혼 이후의 기억들은 온라인상에 비교적 자세히 남아있기도 하고, 재산 변동이나 직장의 변동 등으로 그 변천과정을 다시 기억해 내기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연애의 기억과 결혼의 경험들을 모두 버무려 거기서 얻은 사랑에 대한 생각과 깨달음만 증류해 냈다. 그래서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나의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다면, 또 사랑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런 깜냥이 되는 글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족히 15년, 5천 일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 수 만 시간의 고민을 최소 수 백 권의 독서와 버무려 정성껏 증류하긴 했다. 적어도 나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한 명일지 또 생길지 모르는 나의 자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며 한 땀 한 땀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