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OT 집결지에서의 첫 만남?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 그 집결지에 둘이 마주 보고 있을 수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다.
그건 어디까지나 둘의 실수에서 비롯되었으니까.
T는 고3 6월 수능 모의고사 이후 주요과목에서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었다. 2008년도 수능은 등급제가 적용되어 상위 4% 안에 들면 1등급을 받고 등급 평균으로 대학을 가던 시기였는데, 하나를 틀리건 두 개를 틀리건 T는 적어도 여름 이후 부터는 모두 1등급이었다. 수능 당일을 제외하고.
수능 영어는 3교시에 치른다. 점심을 먹은 직후이기 때문에 식곤증 때문에 졸릴 수 있어 듣기 평가할 때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식곤증 핑계로 모의고사 때 듣기를 한 개 놓친 경험이 있던 T는 당일 영어 듣기 평가의 유일한 3점짜리 문제를 앞두고 생각했다. 그런데 '긴장을 늦춰선 안돼' 라고 생각하는 순간 결정적인 문장이 넘어가 버리고 답을 고를 때가 왔다. 답을 맞힐 수 없는 상황.
패닉이 찾아오고 T는 '가장 중요한 날에 이런 멍청한 실수를 하다니!' 라고 생각했다. 다음 문제 핵심 문장은 하필이면 맨 앞에 있었다. 멍청한 실수를 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다음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 문장은 또 지나가 버렸다. 5지선다 문제에 있어 맞출 확률은 20%다. 정답이 절대 아닌 문항 하나씩은 지웠으니 정답 확률은 25%로 늘어났다. 25%확률이 두 문제. '하나는 맞을 수도 있겠지.' 하며 T는 깔끔하게 두 문제를 포기하고 다음 문제부터 집중한다. 채점을 해보니 그 두 문제는 다 틀렸고 나머지는 다 맞았다. 3점짜리 한 개 2점 짜리 한 개를 틀려 100점 만점에 95점. 당시 수능 영어 1등급 커트는 96점이었다.
T는 전날 공부한 사회과목에서 문제가 2개나 나와 국어, 수학, 사회과목 전체를 1등급 받았다. 영어만 평소대로 1등급이 나왔다면 SKY 중 KY대학교는 어디나 무혈입성이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S대는 T가 이렇게 성적이 오를 줄 모르고 국사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당초 선택지에 없었다. T는 K대와 Y대 중 고를 수 있다면 다소 자유로운 이미지가 있는 Y대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실수로 순식간에 눈앞에 둔 Y대를 놓쳤지만.. 괜찮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좋다. 어차피 고1 때는 공부를 너무 못해 지방국립대 입학을 '운이 좋았을 때'의 최고 목표로 두고 명문대 지방 분교를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하던 T였다. 그런데 무려 SKY대 바로 뒤에 위치한 s대(모두가 우러러보는 S대는 아니니 s대라고 하자)를 그것도 평균 학점 3.5만 넘으면 4년간 공짜로 다닐 수 있는 장학금 제도에 선정되었다. 천지개벽도 이런 천지개벽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이른바 '과잠'을 입었을 때 Y대와 s대의 멋 차이는 크니까.
부모에게 빨리 독립해 스스로 힘으로 모든 걸 하고 싶었던 T의 입장에서는 그저 아르바이트할 부담이 줄어든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그래도 실수만 안 했다면 '올 1등급'이었으니 입학장학금은 Y대에서도 받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 등 여러 생각들을 거치며 s대 운동장으로 향했다. 여유있게 도착했지만 신입생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OT가 기대되기도 하고 또 Y대 캠퍼스보다는 덜 멋진 듯한 s대 운동장에서 계속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도 했다.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T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 A는 고3 내내 갑갑한 시절을 보냈다. 고2가 한참 지나서야 바꾼 진로. 자신이 이과 수학과 과학을 해낼 깜냥이 안된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해 버렸다. 고1 때 과학선생님이 너무 좋아 열심히 했던 과학이 자신의 적성이라고 착각해 버린 A는 고2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진로 상담 끝에 문과로서 응시하기로 한다.
오랜 기간 대기업 해외 주재원에서 근무하신 아버지 덕분에 일본에서 초등학교 고학년과 고1생활까지 보낸 A는 대학 입학이 그나마 수월하다는 재외국민 전형으로 응시할 예정이었다. 재외국민 전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영어 성적이 나쁘지 않아 그나마 상위권 대학 응시가 수월한 편이라고는 하나, 다들 고3 때는 마무리할 시기라고 하는 마당에 고3을 앞두고 진로 변경이라니, A는 착잡하기만 했었다.
후회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엇이 잘 돌아갈 리가 없다. 결국 열심히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긴 했으나 후회와 방황 속에 어영부영하다가 고3이 지나갔다. A역시 Y대를 낙방하고 s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한 손가락에는 꼽히는 대학교였지만 A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A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s대는 중위권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다. 명문 학군으로 울릉도까지 소문난 강남 8학군. 거기에서도 명문고로 단연 한 두 손가락에 꼽히는 여고에 다니는 A는 전교 상위 30%까지는 SKY에 여유롭게 들어가는 분위기 속에 정말 답답한 심경으로 고3을 보냈고 결국 결과를 그에 맞게 답답하게 받은 터였다.
나름 일본에 살 때 유복한 아이들이 가득한 학교에서도 반 1등을 거의 놓치지 않던 A였기에 자존심과 자존감에 상처는 더했다. 거기에 은근히 그런 자신을 책망하는 엄마까지. 하늘도 스스로도 부모도 자신을 돕지 않았다고 느끼며 s대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가고 싶지 않던 학교였기에 OT 집결지까지 버스 시간에 임박해 도착했다.
현장에서 조를 배정해 다들 둥그렇게 앉아있는 가운데 남는 조로 배정된다.
그렇게 A와 T가 난생처음 한 공간에 앉았다.
# 2023년 TA부부의 주석 :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우고 살지만 실제로 삶이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계획이 틀어질 때 더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함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실수해서 계획이 틀어질 때 우리의 반응은 늘 비관적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 삶을 돌아보고, 돌아본 삶을 또 돌아보고나서 그 삶마저 돌아보면 우리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과거에는 실수고 잘못된 선택이거나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던 일이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다.
어찌되었건 살아내보리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떤 고난에도 살아만 있다면 살아서 다행이될 희망의 확률은 언제나 우리 편이다. 하지만 실수했다고 생각해 비관하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그것이 끝인 경우도 있다. '뭐든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은 그렇게 실수라고 생각되었던 삶마저 딛고 나왔을 때 뱉을 수 있는 개운한 대사일 것이다. 인생이 그 자체로 고난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살아내어 보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사랑의 첫단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