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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만섭 May 26. 2024

2024년 5월 18일

장문의 추도사-‘오비튜어리(OBITUARIES)’





제목 : 2024년 5월 18일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칠십종심소유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습니다.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공자의 경험담을 설명한 문장으로 흔히 나이 칠십을 종심(從心)이라고 일컫지요. 

 

 2024년 5월 18일, 머리가 하얗게 센 70살 넘은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의정부 종합고등학교 보통과 반창회가 이강연 회장님의 열성적인 참여 독려와 애교 섞인 협박(?)으로 23명이나 되는 동창들이 열 일 제쳐놓고 오로지 옛 친구들의 얼굴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을 친구는 ‘이창선’과 ‘유병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장 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려운 걸음을 해 주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면, 자기 자신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음에도 친구들에게 밝은 웃음을 선사해 준 두 친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와 보통과 모임에 초석을 닦은 신복룡, 김천주 등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참석하기로 약속했으나, 긴급한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김두식, 김종옥, 김영욱 등도 참석한 거와 다름없다는 생각입니다.


이강연 회장이 이번에 참석한 친구 중에서 부모에게 받은 장기 중 일부를 미리 신에게 반납한 개인 병력을 소개했습니다. 임도상, 황창수, 박상배, 김창식, 최만섭 등입니다. 아마 많은 동창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불같은 생존 의지로 악성종양의 무자비한 공격을 이겨내고 오늘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강연 회장도 뇌 수술로 죽음 앞에선 인간 본연의 모습을 경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나는 2024년 6월 1일부로 새롭게 회장직을 이행할 김진규 박사와의 경험에서 그의 종심(從心)을 여러 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 동창 모임의 화두는 ‘성공 신화’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자랑스러운 동창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였는가에 귀를 기울이고, 그러한 작은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삼보회 출신이라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던 그런 모임이었을 것입니다.


 


70이 넘은 노인이 된 우리의 관심사는 이제 건강입니다. 매일 기름칠하고 가끔 정비소에 들러서 고장 난 부품을 교환하면서 조심스럽게 관리해야만 운행이 가능한 수십 년 된 중고 트럭을 운행하는 운전기사와 같은 겸손한 마음만이 우리들 건강의 지킴이가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이러한 하심(下心)을 가진 친구의 의미를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라는 수필에서 찾고자 합니다. “진정한 친구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다. 서로 다르면서도 동등한 관계에서 태어나는 게 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



실로 오래간만에 만나서 가득 찬 술잔을 부딪치면서 다음 모임에 건강한 몸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날 것을 몇 번이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편안하게 잠을 이룬 다음 날인 2024년 5월 19일 ‘승원식’이 사망했다는 청천 벼락같은 비보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신문에는 ‘오비튜어리(OBITUARIES)’라고 불리는 부고란 있습니다. 미국인 들은 장문의 추도사를 신문에 게재하는 전통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백영옥 소설가는 이력서와 추도사의 길이는 반듯이 비례하지는 않은 것이 인생이라고 주장하면서 데이비드 브룩스가 ‘인간의 품격’에서 이력서와 추도사의 차이를 “이력서에 언급되는 일은 세속적 성공이 지향하는 덕목으로 타인과 비교가 불가피하지만, 추도사는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한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고인은 인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사소한 개인사까지도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 ‘오비튜어리(OBITUARIES)’이어야 하며 이러한 개개인의 역사를 존중해 주는 태도가 민주주의적인 사고의 근본이 된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동창들이 단체 카톡에 올린 추모 글에서 왜? 고 승원식에 대한 추도사가 장문이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삼보회 카톡에 김순문이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어제 모임 때 내 옆에 앉아 나보고 "너는 부동산 하면 안 돼. 직업상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라고 했던 원식이에게 하루 사이에 이런 변고가 생겼다는 게 믿기질 않아. 놀랄 일이다. 좋은 친구로 잊지 않을게! 정말 슬픈 일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연상되었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군자는 화합하되 자기의 소신이나 의로움까지 저버리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고 승원식 님은 화이부동(和而不同) 하게 살고자, 산을 사랑하였고 수없이 백두대간을 종주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솔직했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던 고 승원식 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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