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일린 Feb 19. 2024

나도 누가 내 글 좀 봐줬으면

_초심자의 확신을 지나 번민으로

직책과 직급이 올라가면, 후배들의 작업물을 검토하는 일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나름 그 일을 즐기는 사람들을 본다. 이 방향이 맞아, 이 정도면 됐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색깔에 맞춰 작업물을 바꿔 내놓는데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색을 입혀야지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달리. 어째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의 글에 손을 대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지금 거슬리는 부분이 혹시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묻게 된다. 그저 좁디좁은 경험 안에서 켜켜이 쌓인 관성에 벗어나 거슬려 보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따라붙는다.       


의심이 불러온 번민은 다른 사람이 쓴 글에 손을 댄다는 작업을 점차 무겁게 느껴지도록 한다. 지나간 흔적이 없는 황무지를 거침없이 달려가는 초고 쓰기와 달리, 초안을 쓴 사람만의 색깔이나 특성을 살리면서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작업은 이리저리 놓인 방해물을 피해 차를 모는 운전기사의 노련함을 갖춰야 하는 일이었다.      

디자이너로서의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거침없이 검토하면서 작업물에 평가 내리는 작업을 즐기는 그 사람과 글을 봐주는 위치가 된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자꾸 망설임만 늘어가는 스스로를 비교해 본다. 그만큼 나이 먹고도 여전히 고민하는 내 모습에 자격지심이 들 법도 한데, 누군가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들뿐. 그저 그럴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엣가시를 뽑아내면 시원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