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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린 Apr 15. 2024

틀린 사람일까, 틀려야만 하는 사람일까

[만화] 하나노이 군과 상사병을 보고서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10대 시절에 읽고 지나갔어야 할 하이틴 로맨스 만화에 푹 빠지고 말았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또래들이 풋풋한 연애를 나누는 만화 속 세상이 그저 아니꼬왔던 듯싶다. 학교와 집만 오가는 무채색 일상과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만화 속 세상과의 괴리는 넘어설 수 없이 컸으니.     


일상과 만화의 시간대가 붙어 있었던 그 시절에는 만화 속 세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만큼 더욱 비교되고, 더욱 질투가 났겠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실과 만화 속 세상과 충분히 거리가 생긴 지금에야, 온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속 여유가 생겼나 보다.      


얼마 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하나노이 군과 상사병>은 고등학생들의 사랑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하이틴 로맨스물이면서도, 인간관계가 서툰 남자주인공의 성장을 보는 재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여느 일본 만화들과 다름없이 학교축제, 수학여행, 아르바이트, 동아리 등 익숙한 소재를 다룬다. 남자주인공도 뛰어난 외모에 공부도 잘하고, 여자주인공은 평범하고 귀여운 소녀라는 설정 역시도 별 다른 건 없다.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남다른 설정은 남자주인공 하나노이가 매번 여자들의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지만, 흔히 눈치 또는 사회성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번번이 차이고 만다는 점이다. 남들이 말하는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려웠던 하나노이가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르는 순수한 여학생 호타루를 만나 여러 사건을 겪으며,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조금씩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며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문은 호타루에게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겼던 여학생에게 하나노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앙갚음하면서, 이로 인해 두 사람이 다투고 화해하는 사건에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질투에서 비롯된 오해로 인해, 호타루는 친구에 의해 머리카락이 뭉텅 잘리는 경험을 하게 된 후, 한동안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는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하나노이는 당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눌려버린 나머지 호타루를 외면하고 달아나 버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호타루에게 동시에 큰 트라우마를 안긴 여학생을 만난 하나노이는 그 여학생에게 복수하는 차원에서 호타루가 당한 것처럼 똑같이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하고, 마침 이 장면을 호타루에게 들키고 만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하나노이의 모습에 호타루는 크게 충격을 받고, 둘은 서먹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이 화해하는 과정에서 하나노이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면서 인정한다. 끝내 분노하고 용서히지 못한 대상은 무력하게 도망쳤던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하나노이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여학생에게 투사해 왔음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폭력적이고 과도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 된다.      


만화 속 하나노이처럼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자신의 연약함을 상대방에게 덮어씌우며, 오랜 세월 악감정을 품고 사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과거 비겁했던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맹비난하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모습도 자주 본다. 안타깝게도 하나노이처럼 자신의 본심을 깨닫는 사람들은 드물다. 세월이 흐를수록 보호본능은 강해지고, 생각은 굳어져 가니까.     


내가 옳기 위해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려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틀린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는 답답한 처지에 놓인 자기 자신만 남는다. 가시 돋친 비난의 말로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은 떠나고, 결국 남는 건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만이 함께 할 뿐이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도, 갉아 먹히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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