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영화 <드림 시나리오>를 보고서 (2)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니콜라스 케이지가 누리던 유명세의 달콤함은 잠시 뿐, 이유도 없이 그는 사람들이 꿈에 도끼를 들고 사정없이 사람들을 내리치는 연쇄살인마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를 꿈속에서 본 과격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인식해 버리고,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전락한다.
이전에 언급한 가용성 휴리스틱이 역으로 작용하면서, 그를 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공포스러워하며, 그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그의 모습만 보아도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살던 집에서 쫓겨나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인플루언서가 유명세로 누리는 부와 명예를 커질수록, 한편에서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캔슬컬처도 동시에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락 간다는 표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캔슬컬처는 언행 하나 잘못했다는 이유로 인플루언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배척과 퇴출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주 나타난다. 이런 캔슬컬처를 인플루언서를 단두대에 세운다는 의미로 디지털 기요틴에 디지틴이라고도 부른다.
인플루언서의 언행을 단순하고 손쉽게 재단하며 손가락질해 대는 사람들은 평소에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를 향해 억눌려있던 비뚤어진 시기와 질투를 분출하는 것에 불과하면서, 스스로는 마땅히 정의를 행한다고 합리화해 버린다. 유명세가 돈이 되는 만큼 그 무게를 짊어지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익명의 대중 뒤에 숨어 인플루언서의 존재를 말살하고야 말겠다는 캔슬컬처는 겉으로 보기엔 명료하고 간단하기에 사람들이 숟가락을 얹기도 쉽다. 반면, 세상일은 너무나 명확할 때 오히려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은 얽히고설킨 관계를 하나씩 풀어나간 뒤에나 보이기에, 사람들이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누군들 사랑받고 싶지 미움받고 싶을까. 하지만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다. 그건 그 사람의 감정이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사정없이 휘둘릴 때, 우리는 가장 나약해진다.
영화 속에서도 환호성에 취했을 때 보이지 않던 비토세력들이 이때다 싶게 달려들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물고 뜯고 씹어댄다. 모임에서 눈총 어린 시선을 받으며 쫓겨나거나, 이유 없는 야유를 받으며 낙서로 가득한 차를 몰고 빠르게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한 사람의 일상이 무너지고. 피폐해져 가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불행에 불행이 겹쳐 절망에 빠진 니콜라스 케이지의 서사를 따라가던 영화는 갑자기 툭 방향을 바꾸어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어야 할 꿈마저 침투한 마케팅의 첨단을 발랄한 톤으로 그려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홍보대행사가 바라는 대로 우스꽝스러운 복장과 표정을 짓고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듯 프랑스에서 사인회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과 닮아 있었다.
유명세가 돈이 되는 세상의 끝에는 잠깐의 달콤함을 누리다가 단물 빠진 껌처럼 소비되고 마는 사람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본인의 원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물고 뜯고 씹어지는 영화 속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현실보다 현실적이었기 때문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