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n Aug 12. 2023

예식 한 시간 남겨 놓고 돌아간 하객 버스

주말은 언제나 정신없이 바쁘답니다. 

한꺼번에 많은 손님이 몰리죠. 그동안은 신랑, 신부만 상대했지만 예식날은 혼주 메이크업을 받는 친정, 시댁 어른들도 많이 오시기에 북적북적 정신이 없어요.


그렇기에 손님들은 사전에 약속된 시간을 꼭 지켜주셔야 해요. 


예식 시간은 보통 점심시간에 맞춰서 예약을 많이 하셔서 각 가정마다 웨딩홀로 출발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거든요. 

예식날 5분은 일반 시간으로 치면 30분이랍니다.


"Y 신부님~~"

"Y 신부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대기 로비를 살펴보았는데도 신랑, 신부 혼주분들 아직 안 오셨나 봅니다. 

다시 정신없이 다른 손님들 예식준비를 합니다.


약속 시간이 30분이 넘어섭니다. 

큰일입니다.

신부도 신랑도 전화를 안 받네요. 

차 사고가 났나? 늦잠을 주무시나? 여러 번 연락에도 아무 응답이 없어요. 

그런데 이 고객만 신경 쓸 수 없어요.


담당 헬퍼가 묻습니다.

"제가 맡은 신부는 어떻게 되나요?"

"아! 그 커플."


예약 시간으로 부터 한 시간이 훨씬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드레스 입어야 할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넘어가면 우리도 더 이상 방법이 없어요. 

이제 우리 숍도, 예식을 나가는 신부들도 마지막 피크 시간입니다. 


러시아워에 고속도로 병목 구간처럼 되는 시간이죠.





웨딩드레스, 액세서리, 티아라 빨리 마무리하고 예식장으로 출발해야 해요.


"신부님.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신부님 행복하세요~"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짧게 짧게 인사들을 나누고 그동안 함께 했던 고객들이 숍을 나섭니다. 

이제 그녀들의 세리머니 장소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Y신부님의 웨딩드레스는 아직 행거에 어제 준비해 놓은 그대로 걸려 있네요.


얼마 후 Y 신부님 웨딩홀에서 연락이 옵니다.

"신부님 안 보내세요?"

"우리 솝에도 안 오셨답니다."

"네? 정말요?"

"그러네요. 연락해도 연락이 안 닿아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글쎄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난감하네요. 당일인데..."

"혹시 하객분들은 오셨을까요?"

"오신 분들이 계시긴 하는데 신랑님네는 지방이시라 버스 대절 오신다고 하셨어요."





전화벨이 울립니다.

받기 전에 누구인지 알아 버렸습니다. 그게 그렇더라고요. 

언제나 똑같은 벨 소리지만 이상하게 상황에 따라 빠르기도 조금 빠른 거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좀 신나게 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죄송해요. 대표님. 오늘 결혼식 못하게 되었네요."

"무슨 일이세요? 어떤 일이길래."

"제가 조금 있다가 웨딩홀에 가서 위약금 정산하고, 숍에도 갈게요."


"부모님도 하객분들이랑 타고 올라오시던 버스 돌려서 다시 내려가셨어요."


온다고 한 시간까지 정말 이것저것 많이 상상해 봤답니다.

꽤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이 상황에 그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당일 취소는 하객이 식사를 했던 안 했던 모든 비용을 정산해야 하거든요. 

이런 큰 손해를 입으면서 까지 파혼을 한다고? 어떤 이유면 가능할까?


그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네요.

이유를 정말 알고 싶습니다.



해당 내용과는 관계없는 신부입니다.




신부는 진행 내내 가끔씩 미국에 있는 언니 이야기를 했답니다.


'결혼식에 맞춰 한국에 들어올 건데 성격이 장난이 아니에요. 혼주 메이크업 신경 좀 써주세요.'

'말을 좀 함부로 하는 성격이라, 걱정이에요.'

'두 번 이혼하고 지금 남편이랑 미국 간 거예요.'


이상하지 않나요?

굳이 고객의 가정사를 알필요도 없는데 묻지도 않은 언니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답니다. 

그때는 그냥 그려려니 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당일에 메이크업 진상 좀 피우겠네. 이 정도 생각?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Y 신부의 머릿속에는 온통 언니만 있었던 것 같아요.

신부는 파스타 전문 하우스를 운영하는 여사장님이세요. 

규모도 좀 있고, 나름 지역에서 유명한 가게예요. 능력자죠. 성격도 시원시원 멋있어요. 

30 중반에 성공이 당연하게 보이는 그런 멋진 여성.


신랑은 그 파스타 하우스 셰프예요. 

굳이 사회적 지위로 표현하자면, 사장과 직원이 결혼하게 됐네요.

무슨 드라마에 나왔던 소재일까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쁜 그림이에요. 그렇죠?


그 파스타 하우스가 유명한 것도 셰프의 실력이 좋아서도 한몫 차지하겠죠?

여러분, 지금 까지 무슨 문제가 보이나요?


그런데 이게 문제네요.




"안 되겠더라고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저를 무시하는 건 그럭저럭 넘기겠는데.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여기서 무너졌어요."


담담하게 얘기를 하는 예비 신랑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데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지, Y 신부 언니 그니까 촌수도 없는 처형이 될 뻔한 그 여자가 너무 이해가 안 되었어요.

이제 처음 결혼식 이틀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 전날 처음 얼굴 본 예비 신랑한테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다고? 아니 그보다도 처음 보는 사이에 그럴 수 있다고?


"미친년."


그렇게 우리는 불렀어요. 미친년이라고. 그러니까 이혼을 습관처럼 하지.


'아니, 넌 뭐가 모자라서 저 딴에랑 결혼하냐?'

'내가 말했지? 종 부리듯이 써야 되는 직원이랑 결혼해서 가게가 퍽이나 잘 되겠다.'

'부모님이 집도 한채 못해준다며. 이 집도 니 돈이 거의 다 아냐?'

'이제 봐라. 저 집안 너한테 다 들러붙는다.'


궁금하실 테니 팩트는 정리해 놓을게요.

가게는 더욱 책임지고 하지 않겠어요?

돈 많은 사람이 조금 더 내면 어때요?

신부가 훨씬 신랑을 더 좋아해서 청혼도 신부가 했다고  하네요.



진짜 이쁜 이야기는 지금부터


그 미친년은 그렇게 결혼식을 파투 내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네요.


두 사람은? 


그 일이 있은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신부한테 전화가 왔어요.

"저희 기억하시죠?"

"그럼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요?"

"저희가 웨딩 촬영까지만 하고 결혼식은 못 올렸잖아요. 그게 너무너무 아쉽고 슬픈 거예요."


알죠 그 마음.


"결혼식처럼 기념사진 찍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이거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어요. 인맥과 능력 다 동원해서 어떻게든.

"잠시만요. 신부님. 전화 끊어봐."


D- day는 금요일 오후 5시쯤.

우리 숍 옆에 자그마한 웨딩홀 대표님께 자초지종 얘기하니 흔쾌히 오케이.

금요일인 이유는 토요일 예식 앞두고 웨딩홀은 늦어도 5시 이전에 생화 꽃 장식을 마무리하거든요.

비싼 비용 모두 드릴 수 없으니, 예식 없는 날. 잠깐 사진이라도...라고 부탁했어요.


헤어, 메이크업, 웨딩드레스 다시 이쁘게 준비해 드리면 되고.


근데 왠지 대충 같다. 


"신부. 주례 선생님도 부를까? 그래도 혼인 서약서도 나누고 성혼 선언문도 하면 좋을 것 같아."

"와... 그 생각은 못했는데 가능할까요? 감사해요."


하객은 우리




사진이 이쁘게 나온 지는  모르겠어요.

신부가 하도 많이 울어서 힘들게 했던 메이크업도 다 소용 없어졌고, 표정도 다 우는 표정이라.

그래도 그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추억의 한 장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제 돌 조금 지난 두 사람의 아가도 함께한 멋진 결혼식이었어요.


작가의 이전글 당신, 결혼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