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민족주의 ②

네이셜리즘과 문화적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

by 박필우입니다



인종적 동질성이 비교적 높은 우리나라는 민족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며,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로 보는 시각에 반감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민족 실체에 대한 믿음은 일제강점기 식민시대 속 저항을 통해서 생겼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발칸반도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새롭게 생긴 패러다임, 즉 민족 방어를 위해 배타적 민족주의의 네이셜리즘(Nationalism)과 언어, 종교 등 문화적 요소에 따라 구분 짓는 문화적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가 본격적으로 기세를 울리며 폭력의 불씨로 자라났다.


민족과 국가를 동일선상에 놓는 서유럽 민족주의는 경제 범위와 영토가 대부분 일치하면서 국적을 따지는 ‘정치적 민족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민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며 충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발칸반도는 달랐다. 혈통이 중요시 되면서 언어는 물론이고, 역사와 체험의 공유, 더불어 종교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문화적 민족주의’였다. (우리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지만?) 민족과 국가는 별개이며 국가에 충성하기보다 민족이 우선이었다. 그런 까닭에 신화가 떠받들어지고, 우리 민족끼리 독립이라는 희망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꿈으로 연결된다.


발칸반도는 혼란한 역사를 거치면서 거듭된 이합집산을 경험했다. 따라서 여러 민족이 뒤섞여 있었으며, 민족의 경계와 영토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발칸반도 민족주의는 폭력을 품고 태어난 ‘이질적 민족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칸반도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은 제국의 그늘에서 막 벗어난 민족의 민족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그들 민족주의는 민족결집에 의미가 궁색했던 까닭에 미래를 과거에서 찾았다. 과거를 이 잡듯이 뒤져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발견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매일 매일 환각제를 투여하듯 스토리텔링했다. 영웅적인 인물과 신화는 물론, 역사적으로 가장 화려했던 시기만을 잘라 민족정기를 일반화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7.야블라니치브릿지 (2).jpg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닉크를 향하다 보면 야블라니치가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과 독일군이 전투를 벌이던 곳이다. 부서진 철교와 기차가 당시를 증언한다



민족 우상화 작업으로 민족 태생적 우월주의를 심어주었다. 집권세력은 민중을 길들이고자 이를 교묘하게 정치에 적용하면서 폭력마저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민족내부의 이질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발칸반도 모든 나라가 독립투쟁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우리네 독립운동사에서 보듯 발칸반도 나라 역시 의기에 혈기까지, 가슴에 벅찬 열정을 품고 풍찬노숙을 당연하게 여기며 독립투쟁에 매진했던 투사들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큰 그림을 놓고 보았을 때 아쉽게도 스스로 힘으로 광복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 힘의 논리에 의해 독립을 이룬 나라가 대부분이다. 우리 미군정기처럼 주권은 있되 자주는 없는 이상한 체질, 강대국 품을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뇌사상태에 빠질 허약한 나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민족은 자신의 나라를 가질 권리가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공인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을까.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강대국의 섬세하고도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승전국끼리 패전국을 조각조각 갈라놓아야 했다. 후발 제국 도이칠란트가 똘똘 뭉쳐 거대한 힘으로 등장해 전쟁을 치러야 했던 뼈아픈 경험을 잊지 않았다.


승전국은 작은 나라와 소수민족을 부추겨 착하고 말잘 듣는, 버르장머리 있게끔 사람과 땅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면서,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게 새판을 짰다. 그 중심에는 영웅놀이에 재미가 든,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 지도자를 뽑고 그를 위해 전사를 자처하며, 그만 생각하면 가슴이 요동치는 장엄함을 맛보면서 정신까지 발기해버리는 단순한 인간에 의해 탄생된 자칭 민족지도자가 있었다. 서구유럽 입장에서 보면 말잘 듣는 착한 지도자이자, 고매한(?) 인품을 지닌 인간이었다.


유럽 강대국 힘을 빌려서 결실을 맺은 발칸반도의 무기력은 마치 우리 해방정국과 흡사했다. 광복 후 혼란했던 대한민국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보릿고개 넘기기조차 힘에 겨웠건만, 친일청산은커녕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정당과 자칭 애국지사 등장, 반공이라는 구호로 무지한 백성의 부추김, 그리고 연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기사불능 상태로 몰아갔다. 그러나 극동 아시아에 공산정권의 마지막 저지선으로 강대국의 지원과 본능적, 태생적 부지런한 배달민족 희생 속에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치에 묵묵히 순응하면서(분배의 정의가 혼탁해지긴 했지만) 기적과도 같이 세계 속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었지만 말이다.




민족주의 파괴력


연이어 터진 2차 세계대전은 또 한 번 발칸반도를 아귀지옥으로 변하게 했다. 인류전쟁사에 정점(?)을 찍는 폭력이 일어나 발칸은 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히틀러가 민족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어서 살육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지구 화약고’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른다.


“보스니아 분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조직적이자, 힘과 힘이 충돌한 필연적 사건이었다.”


1993년 영국 수상 존 메이저가 한 말이다. 하긴 발칸반도와 인류전체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를 두고 비교해보았을 때 발칸반도 학살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타인종,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민족이라는 우월성이 빚어낸 학살,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도화된 폭력이었다.


한 나라에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는 내 뜻에 반하는 세력이 있는 이상 필연적으로 폭력이 동반된다. 일단은 두들겨 패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발칸반도에서 상대적으로 인구 비율이 높은 민족은 전 지역에 걸쳐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뿌리인 본국(예를 들어 세르비아 같은)의 지원을 얻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독립을 외치며 분쟁을 일삼는다면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한 민족이 각기 다른 나라에 갈려 살면서 그곳에서 독립을 요구해보라. 기막힌 노릇이 아닐까.



16.두브로브니크 파괴의 현장.jpg 아드리아해의 진주 드브로브닉크 성을 돌다보면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해 파괴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인천, 혹은 제주도에 일본인들, 혹은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 살면서 스스로 독립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것도 본국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말이다.




발칸반도에는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무진장 존재했다. 그러자 그들 스스로 발칸반도 맹주를 자처하면서 타인종에 대한 살육과 강간이 정의로 포장되는 악의 고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들만의 민족은 광기에 휩싸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자가발전해 자긍심을 불어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타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상승기류에 대항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로 일순간에 내몰리고 자연적으로 배타적,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판이 짜인다. 더구나 같은 민족이면서 본적도 만져본 일도 없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도 없는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할 말을 잊게 한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대루마니아주의와 슬라브족 첫 제국을 건설했다는 대불가리아주의는 오랜 갈등으로 늘 반대편에서 총칼을 들이댄 맞수이자 관객의 입장에선 폭력의 세트다. 발칸반도 동남부를 대표하는 대세르비아주의야 말할 것도 없다. 코소보 인종청소 주역들이니 말이다. 나토의 코소보 공습으로 해결된 듯하지만, 세르비아에 의해 저질러진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불안한 산맥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는 스스로 발칸반도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부유한 나라이자, 그만큼 뛰어난 족속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나라 이름에서 보듯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말이 한 국가이지 한 지붕 세 가족이 험악한 인상으로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다. 이 외에도 동방정교와 로마가톨릭, 이슬람 등의 종교 갈등은 또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글쎄…, 민족과 종교와 영토분쟁에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이들의 조각보 같은 반도의 미래를 신인들 알까? 안다면 1천 년 전에 해결했겠지만….


민족이란 유기체는 어떤 사건과 역사를 체험하고 공유하느냐에 따라 개념이 포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사상은 물론 생각의 공유에 따라 민족을 구분할 수도 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처럼 민족주의가 마치 고대국가 혹은 중세 때부터 시작되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무지막지한 착각은 배타적 민족주의의 시발점이다.


울릉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벗어난 적 없는 할아버지와 흑산도 할머니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사투리로 무장되었다면 소통에 애를 먹을 것이 자명한 일이다. 고대 신라가 지금 우리처럼 단일민족, 즉 한반도 배달의 민족정신이 있었다면 당나라를 끌어들이면서까지 통일을 추진했을까. 민족 반역자 패거리로 낙인찍힐 일을 말이다.


하긴 북한과 일본이 전쟁이 나면 어딜 도울 것이냐의 물음에 일본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필자의 주위에 태반이 넘는 상황에서 경이롭게도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민족이 빨갱이보다 하수다.


비약하면 아래로부터 단 한 번도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않은, 말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민족 일본이란 나라도 있다. 단언컨대 착한 백성, 그것이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죽음에 떠밀려도 감동의 눈물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무라이 정신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민족!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없으니 그야 말로 대단한 단어다.


“어떤 이는 가는 곳마다 행복을 만들어내지만, 어떤 이들은 떠날 때마다 행복을 만들어낸다”

-오스카 와일드-



① 김철민 《발칸유럽민족문제의 이해》, ‘민족 기원과 민족주의’, ‘19세기 민족시대와 발칸유럽’ 2010. 12. 14.,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5쪽, 212쪽 참조


다음 편에는 '오스만트루크제국 치하와 그리스 독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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