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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Feb 27. 2024

prologue

살육의 서막이 열리다

* 아우스트리전투(프랑수와 제라르)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고, 숙성해 지는 것이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앞으로 전개될 폭력에 앞서 누군가 역사를 향해 질타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걸쭉한 핏덩이를 가득 문 반성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어서 시작한 글임을 밝힌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류는 폭력과 살육의 연속이었단 사실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마치 지옥의 유황불에서 타죽고 싶은 병적인 욕구에 휘둘린 인간의 본능처럼…. 무지한 인간이 신념을 지니면 더욱 무서운 법,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광폭한지, 얼마만큼 폭력적이고 악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실험 중일 것이다.      


크로아티아를 끝으로 본격적으로 폭력의 서막이 열린다. 실로 두렵고 설렌다. 과거로 돌려보내는 것은 기억이고, 미래로 가는 것은 꿈이라고 한다. 무수히 많은 자료에서 발췌한 것들을 과거로 돌려보내 미래로 가는 꿈을 위해 엮어볼 참이다. 왜곡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친일부역자, 폭력 전과자들, 특히 기득권층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흑백의 순서를 뒤집고도 시치미를 뚝 떼기 일쑤다. 




발칸반도 폭력의 중심에 섰던 권력, 어마무시한 전쟁무기에서 내뿜는 화력과 인간 살상용 무기개발에 경쟁적으로 열 올리는 강대국의 등장은 아무래도 지구 종말을 앞당기려 용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 마치 미뤄둔 살육이 있다는 듯 유고내전과 보스니아 전쟁, 그리고 민족을 앞세운 권력욕이 매몰된 인간들에 의해 자행된 코소보 살육의 현장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해방정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정권에서 자행됐던 끝나지 않은, 당대 유명한 오제도吳制道 검사가 기획하고 이승만이 승인한 국민보도연맹사건國民保導聯盟事件에서 죽어간 수만 명의 억울한 주검 앞에 그 누구도, 백주대낮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는 약과다. 희대의 살육자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이다. 뒤이은 월남전, 중동전쟁을 넘어 민족분규와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청소한다면 자행한 인종청소가 21세기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강대국은 이익이 나지 않은 곳에 눈 돌리지 않는 법, 어쩌면 재고 넘치는 순 구제 무기라도 팔아먹으려면 그마져도 부추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평생 호위호식하며 몸을 살찌우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인물이 부지기수다. 이나마 다행이라면 슬픈 일이다. 악에 물들어 추호의 의심도 없이 살육에 앞장선 인물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지독한 고독을 이겨내고 내일을 위해 인류의 평화를 밝혔던 역사 속 인물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현실보다는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조차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했다. 이것이 ‘기억의 힘’이다.


역사교육의 목적이란, 미래를 위한 교훈적인 성격이 담겨 있다. 되돌아보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서두르지도, 넋을 놓아서도 안 된다. 아무리 두려워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 과거에 아픔이 있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활용할 일이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낫 놓고 기억자의 나라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 플리트비체 물길따라 흐르는 장엄한 풍경, 아드리아해 진주 아름다운 항구 두브로브니크 성벽에 올라서서 윤슬 반짝이는 바다는 여전히 추억에서 반짝이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중세 골목골목을 누벼가며 장검을 찬 기사가 된 양 폼을 잡고, 골목 비탈길에 앉아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나 홀로 맥주를 홀짝거려본 기억도 그립다.


달마티아 해변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시간, 달마티아 출신 최초로 로마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만년을 보낸 궁전에서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 압도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설렌다. 성도미니우스대성당의 고즈넉한 맛과 함께 신을 향해 흐르는 인간의 물결은 보이지 않는 신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그레브에서 밤거리를 대한민국인 양 휘청거린 경험은 치기의 아찔한 추억이다. 마치 식탁보 같은 자그레브대성당 크로아티아 국기 지붕을 보며 집요한 나라사랑을 느꼈다. 자그레브 옐라취치 광장에서 어린 학생들 단체사진을 찍어준 일,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명강사는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베테랑 여행자일수록 꾸러미가 간소한 법, 청산靑山과 녹수綠水가 죽이야 대어줄 터, 어찌 소인小人처럼 짧은 쾌락과 아름다움에만 얽매이겠는가. 


길을 걷다가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 

그렇다고 여행을 멋으로 맛으로, 기분으로, 흥으로, 눈 따위로 들어온 시야를 광휘의 언어로 지껄이기 위해서 다녀서야 될 것인가. 쌀 한 톨의 무게가 우주에 비교되는지를 안다면, 승자독식구조에 빠져 허우적대는 말과 행동과 감동 따위는 하찮은 감성에서 우러나온 찌꺼기란 사실도 알아야 한다. 


삶은 길에서 배운다고 한다. 유랑민의 본능이 살아나면 못난 사연과 폭력의 아픔과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름다움에만 빠져 하늘을 우러러 찬사의 목청만 높일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멀리 거슬러 갈 것도 없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성에 올라 둘레를 걸어보라. 몇 발자국만 걸어도 과거 아픈 상헌이 채 아물지 않은 채 생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몬테네그로 자칭 용사들이 한 명의 크로아티아인도 남겨두지 않겠다며 무차별적인 포격의 아비규환을 상상해보자. 크로아티아도 할 말은 없다.  일명 ‘문화전쟁’이라니? 문화재를 총알받이로 앞세워 전략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세르비아군을 문화재 파괴의 주범으로 몰기 위해 텔레비전 중계까지 준비하고 파괴하기만을 기다리는 크로아티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르비아군이 아니라 몬테네그로군인에 의해 아드리아해 진주가 박살이 났다. 역사적으로 몬테네그로인들은 용맹을 과신하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폐허로 변한다는 사실조차도 우쭐대는 꺼리다. 이런 전사들 앞에 바다를 낀 천연 요새는 무용지물이었다. 성벽 두께 4m라고 해도 파괴를 피하지 못했다. 13세기에 건축된 이 건물들이 포격에 노출되고 화염과 포염에 휩싸인 상상을 해보면 마냥 아름답고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젖을 수만은 없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유고 내전 당시 연방군과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군 살육전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마냥 게임 정도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소름 돋는 역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극우세력이 나치 지원 아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 35만(부상자 포함 70만?) 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그렇게 순박하게 생긴 청년들, 밤에만 피는 박꽃 같은 여인들, 팁이라고 내민 손을 부끄럽게 만든 할아버지……. 그런데도 역사로 흐르면 대변에 돌변하는 표정에서 동방의 끝자락에서 날아온 이방인을 향한 비아냥대는 청소년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차별적 질서가 정당화하려면 보편적인 강제규범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권력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 상하 흐름에 순종해야 한다는 비굴한 진리를 견뎌야 하는데 말이다.  


크로아티아에서 보스니아,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 국경선의 군인들 눈초리가 여전히 이들의 가슴에는 폭력의 앙금이 완전히 씻어지질 않았다고 대변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지도를 보면 낫을 닮은 기억자의 나라다. 크로아티아민족주의를 위해 지독한 투쟁의 결과에 의한 역사가 그린 화판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좌우가 바뀐 반전된 ‘ㄱ’자지만…. 


좌측 왼쪽부터 달마티아지방 스플리트 항,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과거 드브로브니크 파괴의 연장, 플리체비체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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