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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Aug 27. 2023

명절에 일하고 싶은 간호사들

우리끼리 다복하게

찌는듯한 더위가 한결 가시고, 하늘이 높아졌다. 늦게나마 찾아보니 입추가 한참을 지났다.

벌써 추석이 다가오나 보다.  올해에는 특히 개천과 겹쳐, 벌써 주변에서 휴가 계획이 한창이다.




스케줄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도 이맘때쯤 그다음 달 근무를 배정받는다. 간호사의 근무는 보통 3교대로 나뉘는데 병원마다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 (내가 다녔던 병원은 이브닝 근무가 막차를 탈 수 있도록 노사가 조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근무표 예시>


다음 달 근무가 나오면 앞서 신청한 휴무날을 확인하고, 연속해서 쉬는 날이 언젠지 살펴보며 일정을 잡는다. 부모님 생신이나 동창회 같이, 정해져 있는 약속에 미리 쉬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원하는 날에 오프(=휴무)가 나왔던 것 같다.


야간근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하루 반 이상 쉴 수 있게 보장하고, 같은 근무에 저연차들만 몰리지 않도록 숙련도를 고려하는 등 복잡한 기준을 가지고 근무가 배정이 된다. 또한 근무표는 해당 부서 수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짜기 때문에, 직급이 없는 간호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2022년 9월 근무표>


그리고 의외로 명절은 인기가 많은 근. 무. 날이다. 꽤 많은 간호사들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결혼적령기인 싱글들, 제사를 지내는 시댁을 둔 며느리, 본가가 꽤 먼 신규간호사 등등 각자가 가진 또 다른 역할에 따라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 스트레스를 좋은 구실로 넘기고, 명절비에 휴일근무, 야간근무 수당을 합치면 연휴기간에 받는 돈이 꽤 짭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오히려 명절이 낀 달에는 휴무뿐 아니라 근무신청도 박빙이다. 특히 야간근무가 아주 인기였다.


언젠가부터 명절에 가족여행을 다니기 시작해 명절에 쉬겠다고 신청을 하면, 올타쿠나 다들 양보해 꽤 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동료를 향한 배려에 짭짤한 수당이 한 스푼 더해졌던 것 같다.




연휴가 가까워지면 환자들도 다 나았다며(?) 퇴원을 자처하고, 교수님 진료와 정기 시·수술, 검사가 모두 없으니 병원은 꽤 한산해진다. 항상 긴박하게 굴러가는 병원의 평온한 모습을 보는 게 또 르다. 바삐 먹었던 식사도 여유롭게 하고, 커피 한 잔 손에 쥐어 병동으로 돌아오곤 했다.


연휴를 짧게 보내고 돌아온 간호사들의 명절음식을 노나 먹는 재미도 있다. 누군가는 집에 다녀오지 못했을 걸 알고 서로 챙기는 것이다. 사과를 감자칼로 깎아먹는다는 신규 간호사를 위해 너나 할거 없이 과일을 깎고, 왕고 선생님은 잡채 한 젓가락씩 하라시며 냄비를 통째로 가져오시기도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의 시댁얘기는 항상 재미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그런가 보다 또 어떤 부분은 그럴 수가 있냐며 깔깔대다 시간이 금방 갔다.


다양한 연령대의 간호사들이 직급 없이 평등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일상에 대한 조언도 유쾌히 얻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병원이 한산하기 때문에, 병동 식구들끼리 오랜만에 충분히 대화를 나눌 여유가 주어졌던 것 같다. 몇몇 환자들은 명절에 집에 못 갔냐며 안쓰럽게 보시기도 했지만 오히려 좋다며 웃고 넘길 수 있었다.

항상 긴박하게 돌아가는 병원업무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응급상황에 대비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뒤로 두고, 우리끼리 다복하게 보냈던 명절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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