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추석이 다가오나 보다. 올해에는 특히 개천절과 겹쳐, 벌써 주변에서 휴가 계획이 한창이다.
스케줄 근무를 하는 간호사들도 이맘때쯤 그다음 달 근무를 배정받는다. 간호사의 근무는 보통 3교대로 나뉘는데 병원마다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 (내가 다녔던 병원은 이브닝 근무가 막차를 탈 수 있도록 노사가 조율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근무표 예시>
다음 달 근무가 나오면 앞서 신청한 휴무날을 확인하고, 연속해서 쉬는 날이 언젠지 살펴보며 일정을 잡는다. 부모님 생신이나 동창회 같이, 정해져 있는 약속에 미리 쉬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원하는 날에 오프(=휴무)가 나왔던 것 같다.
야간근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하루 반 이상 쉴 수 있게 보장하고, 같은 근무에 저연차들만 몰리지 않도록 숙련도를 고려하는 등 복잡한 기준을 가지고 근무가 배정이 된다. 또한 근무표는 해당 부서 수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짜기 때문에, 직급이 없는 간호사들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2022년 9월 근무표>
그리고 의외로 명절은 인기가 많은 근. 무. 날이다. 꽤 많은 간호사들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결혼적령기인 싱글들, 제사를 지내는 시댁을 둔 며느리, 본가가 꽤 먼 신규간호사 등등 각자가 가진 또 다른 역할에 따라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 스트레스를 좋은 구실로 넘기고,명절비에 휴일근무, 야간근무 수당을 합치면 연휴기간에 받는 돈이 꽤 짭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래서 오히려 명절이 낀 달에는 휴무뿐 아니라 근무신청도 박빙이다. 특히 야간근무가 아주 인기였다.
언젠가부터 명절에 가족여행을 다니기 시작해 명절에 쉬겠다고 신청을 하면, 올타쿠나 다들 양보해 꽤 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동료를 향한 배려에 짭짤한 수당이 한 스푼 더해졌던 것 같다.
연휴가 가까워지면 환자들도 다 나았다며(?) 퇴원을 자처하고, 교수님 진료와 정기 시·수술, 검사가 모두 없으니 병원은 꽤 한산해진다. 항상 긴박하게 굴러가는 병원의 평온한 모습을 보는 게 또 색다르다. 바삐 먹었던 식사도 여유롭게 하고, 커피 한 잔 손에 쥐어 병동으로 돌아오곤 했다.
연휴를 짧게 보내고 돌아온 간호사들의 명절음식을 노나 먹는 재미도 있다. 누군가는 집에 다녀오지 못했을 걸 알고 서로 챙기는 것이다. 사과를 감자칼로 깎아먹는다는 신규 간호사를 위해 너나 할거 없이 과일을 깎고, 왕고 선생님은 잡채 한 젓가락씩 하라시며 냄비를 통째로 가져오시기도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의 시댁얘기는 항상 재미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그런가 보다 또 어떤 부분은 그럴 수가 있냐며 깔깔대다 시간이 금방 갔다.
다양한 연령대의 간호사들이 직급 없이 평등하게 일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일상에 대한 조언도 유쾌히 얻을 수 있었다.
지나고 보니 병원이 한산하기 때문에, 병동 식구들끼리 오랜만에 충분히 대화를 나눌 여유가 주어졌던 것 같다. 몇몇 환자들은 명절에 집에 못 갔냐며 안쓰럽게 보시기도 했지만 오히려 좋다며 웃고 넘길 수 있었다.
항상 긴박하게 돌아가는 병원의 업무를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응급상황에 대비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뒤로 두고, 우리끼리 다복하게 보냈던 명절이 가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