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음마를 뗀 아이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가 벌어지기 때문에 어디에 부딪힐지, 뭘 집어먹을지 하루종일 쫓아다니며 진땀을 흘려야 한다.
그럼 침대에서 생활할 때는 괜찮지 않을까? 걸어 다니면 힘들 테니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방심이 다소 지나친 결과를 낳았다.
서준이에게 일이 생긴 건 뒤집기를 겨우 하던 갓난쟁이일 때였다. 작은 손발을 꼬물거리며 팔다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갈 때, 혼자 침대에서 놀다 벽과 침대사이에 머리가 끼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바로 발견이 되지 못했고 서준이는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얇은 갈비뼈가 부러질까 연약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다행히 호흡이 돌아왔다. 아빠가 응급처치를 배운 적이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던 게 한수였다. 하지만 호흡이 돌아온 뒤 바로 검진을 받지 못했고, 서준이가 숨을 쉬지 못했을 때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서준이네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서준이는 삼키는 법을 잊어버려 코를 통해 위까지 연결한 관으로 우유를 먹기 시작했고, 흉곽을 움직일 수 없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서준이네 부모님은 돌아가며 1분 1초를 놓치지 않고, 잠시나마 호흡이 또 멈추진 않을지 혹시 다른 증상이 생기진 않을지 관찰해야 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겪어도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충분히 있을 법한 작은 사고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불행히도 손상된 뇌를 회복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피부에 난 생채기처럼 재생이 되면 얼마나 좋으련만 불행히도 뇌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서준이네 부모님은 아주 밝고 귀여우신 분이었다. 두 분 다 교회를 오래 다니시며 마음을 수련한 덕분인지 큰일을 겪으시고도 특유의 씩씩함이 있으셨다. 아이를 향한 죄책감과, 평생 이렇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도 마음속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한순간의 사고였던 것만큼 한순간에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서준이가 노란 설사를 반복했다. 균검사를 했더니 노로바이러스였다. 보통 굴이나 조개 같은 해산물을 잘못 먹었을 때 생기는 바이러스인데, 어디서 균이 온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서준이의 면역력이 아주 나빠졌다는 점이었다. 전염성이 강한 균이건만, 서준이는 병동에서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유일한 환아였다.
그쯤부터 서준이네 부모님은 점차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매일을 반복한 지 이미 오래 지난 터였다. 한 번씩 병실을 돌다 서준이의 인공호흡기의 알람이 울려 가보면, 서준이의 아버님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님은 한동안 보이지 않으셨다. 보호자가 지친 만큼 간호사들이 더 애써가며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긴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쯤이었다.
서준이네 엄마가 이전처럼 밝고 귀여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에 더 반갑게 느껴졌다. 어머님은 교회에 오래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의 답을 찾아오셨다. 모임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으셨는데, 서준이를 위해 기도하다 보니 계속 기도하는 자리를 찾게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중보 하다 자신의 신앙도 잃지 았았다는 말에 무릎을 치셨다고 했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모두에겐 주어진 역할이 있다.
바로 옆에서 아이를 간호하며 마음을 수양하고, 엄마들의 연대에서 위안과 위로를 주고받고, 누군가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여러 형태의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진이네의 고민이 내 아이가 세상과 고립된 걸까 했던 염려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만나니, 그 역할도 충분하게 하신 셈이었다.
보통은 사춘기를 겪으며 스스로에게 던질 존재론적 이유를, 서진이는 빨리 찾게 되었다. 그건 아마 어머님이 애정을 듬뿍 담아 준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혹은 신께서 기구한 운명을 안타깝게 여기신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