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마스크처럼 새하얀 똥이라니까.
오래간만의 가족 외식이었다. 지방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오빠가 서울 집에 놀러 온 기념이었다. 오빠는 오른팔 깁스와 함께 서울로 왔는데, 취미로 하는 축구 동호회에서 다쳤다고 했다. 밥은 어떻게 먹고 회사에서 키보드는 어떻게 친대. 농땡이 치겠구먼. 동생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걱정을 십 프로 정도 섞어 애정 어린 구박을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깁스에서 이 시대 최고의 화두인 ‘건강’으로 흘렀다. 건강검진은 1년에 한 번씩 꼭 받아야 해. 아빠 엄마는 작년에 했더니 아빠는 갑상선에 혹이 있고 엄마는 당뇨 위험이 있었어. 비타민D, 콜라겐에 최근 유산균 영양제를 추가로 섭취하고 있는 갓 서른인 내가 열변했다. 아빠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너니, 파절이에 상추쌈을 싸며 말했다.
근데 얼마 전에 하얀 똥을 쌌어.
살면서 변비나 설사로 고생하는 사람은 봤어도, 장이 안 좋아서 빨간 똥을 싼다는 사람은 봤어도, 하얀색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얗다고? 새하얗다고? 갈색 하나도 없이 아예 하얗다고? 아빠가 연속된 나의 똑같은 질문에 지쳤는지 볼륨을 높였다. 그렇다니까, 니 지금 쓰고 있는 마스크처럼 아주 새하얀 똥이라니까. 아빠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네이버에 ‘하얀 변’을 검색하고서는 누가 봐도 조회수 목적으로 기계적인 의학 정보를 포스팅한 블로그 글을 보여줬다.
여기 봐봐. 하얀 똥이면 췌장암, 담도암 등의 위험이 있대.
내용은 별 거인데, 마치 별 게 아니라는 듯 아빠는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빠의 핸드폰을 뺏어 블로그 글을 자세히 읽었다. 진짜네, 아빠? 이거 빨리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빠는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중얼중얼 말했다. 췌장암이면 체중 감소가 있다는데 최근에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어. 근데 다시 살쪄서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어. 변도, 그 뭐 며칠 그렇더니 요즘은 다시 괜찮아. 췌장암은 황달이 온다고 하길래, 며칠 눈 색깔을 열심히 봤거든? 근데 노랗지는 않은 것 같아. 그치, 네가 보기엔 어때.
속이 없는 건지 무심한 건 지 모르겠는 오빠는 아빠의 변 색깔은 생각도 안 한 채 고속터미널로 갔고, 나는 집에 돌아와 검색을 지속했다. 새하얀 똥을 쌌던 아빠는 트롯신이 평가하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배를 긁으며 시청했다. 나는 걱정에 쪼그라들어서는 네이버, 구글, 그리고 생전 쓰지도 않던 네이트, 다음까지 ‘새하얀 똥’을 검색해봤다. 유튜브 어디 몸신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의사 아저씨는 변 색깔이 흰색이면 무조건 바로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가야 한단다. 암환자 카페에서는 첫 암 증상이 흰 변으로 나왔다는 간증 글이 넘쳐난다.
삼겹살이 소화가 될만한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서운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자꾸 아빠가 암인 것 같았다. 흰변 담도염. 흰변 결석.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흰변의 원인이라는 담도염, 담도 결석 등도 찾아봤지만 암에 관련된 정보가 훨씬 많았다. 찾으면 찾을수록 심장이 뛰고 나중에는 눈물이 나왔다. 변기 속에 있었던 새하얀 놈은 나에게 와서는 아빠의 암덩어리가 되었고, 아빠는 나에게 암환자가 되었다.
내일 아침 아빠한테 병원 가서 CT 찍자고 말하자. 라고 다짐하고, 핸드폰을 저 멀리 두고 잠을 청하려고 해도 오늘의 충격은 유령처럼 나를 지배했다. 새벽 2시, 3시. 암환자 카페에 가서 5시간 전에 검색했던 똑같은 검색어를 입력하고, 암환자 후기를 읽었다. 아빠 말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증상일 수도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집착하지. 바보 같은 걱정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벌건 눈으로 다시 safari를 들어갔다. 눈물이 났다가, 다시 차가운 마음이 되었다가, 걱정해서 뭐해 싶다가, 근데 암 같아, 라며 우울감에 빠졌다. 이 악마의 사이클을 백 번은 돌고서는 새벽 5시에 지쳐 눈만 감아 보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뒤척이다 나온 나는 아빠에게 제발 병원에 가라고 보챘다. 밤새 찾아봤다고는 안 하고, 어제 잠깐 검색 좀 해봤다고 했다. 아빠는 귀찮아하더니, 엄마의 설득에 아침에 바로 동네 병원에 가셨다. 30분 뒤,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의사 선생님이 장기간 지속되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지속되면 다시 오라고 했다고 보고했다. 어제의 밤샘 고민은 의사 선생님 상담 한 번으로 허무하게 (하지만 기분 좋게) 사그라들었다. 잠을 못자서인지 회사에서 너무 피곤하고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암이 아닐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에, 괜찮았다.
감기만 걸려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곧 사망할 죽을병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걸 알면서도, 걱정이 되니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 손에 쥐인 스마트폰에서 검색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했다. 이렇게 밤을 새보니, 아빠의 건강과 내 수면시간과의 완벽한 정비례 관계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아빠가 더 나이가 드셔서, 정말 많이 아프시게 되면, 내가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그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아니길 바라면서 인터넷을 뒤지고 있지는 않을까.
아빠가 하얀 똥 같은 것 없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사실,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아빠는 병원에 가셨을 때, 오랜 세월 쓸개 내에 담석이 있었고 체중 감소는 있었으나 최근에 다시 회복되었다고, 마치 의사 선생님을 다독이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니 의사 선생님도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하셨던 것이고. 의사 선생님은 혹시 모르니 건강검진표 가지고 다시 방문하세요. 라고 하셨으나, 아빠는 그 이후로, 당연하게도 병원에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아빠의 눈에 혹시 황달은 없는지, 흰 변을 보지는 않는 지 이따금 변 안부를 물어보면서 산다.
글, 다독(Dadok)
사진.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