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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 잡고 싶어서

by 카타리나 Mar 25. 2025

우리 반 남학생인 민성이는 우리 반 여학생인 진아를 좋아한다. 진아가 좋아하는 간식을 매일 헌납하고 진아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덕질하면서 진아의 관심을 받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다. 심지어 진아가 짝사랑하는 가수 영케이와 우리 학교의 체육선생님마저 민성이는 같이 짝사랑한다.

“민성아, 너는 영케이랑 체육선생님을 왜 좋아해? 너는 질투를 해야 맞는 거 아냐?”

“진아가 영케이랑 체육선생님이 좋다고 하니까 저도 영케이랑 체육선생님이 좋아요. “

“질투가 안 나?”

“진아가 좋아하는 건 무조건 다 좋아요.”

“……그렇구나. 민성이는 인류애를 가지고 있네.”

그랬던 민성이가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꺼이꺼이 운다. 평소에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애인데도 말이다..

 “민성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휴대폰이  다 망가졌어요. “

민성이 휴대폰을 살펴보니 액정이 심하게 망가져 있다.

“왜 이렇게 된 거야? 떨어뜨렸어? “

“진아가 사진 찍는다길래 빌려 줬어요. 근데 진아가 떨어뜨렸어요.”

동아리 부서에서 사진반에 들어가 있는 민성이와 진아가 촬영 활동 중에 벌어진 일이었나 보다.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들만 모인 사진반은 각자의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담당 선생님께 보여 드리면 좋은 사진을 골라서 출력을 해주신다.

민성이는 지난주에 새 기기로 바꿨는데 자랑도 할 겸 진아에게 빌려주었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엄마에게 말씀드리면 민성이 엄마랑 진아 엄마가 잘 알아서 해결해 주실 거야. 그러니까 너무 울지 마. “

“그럼 제가 가오를 잡을 수가 없잖아요?”

“?????? 가오를 잡아? 그게 무슨 말이야? “

평소에 민성이에게서 ‘가오 잡다.’라는 말을 들아본 적이 없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민성이의 어휘 구사력이 남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런 말까지도 사용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우와, 우리 민성이 그런 말도 아네! 어디서 배웠어?”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어요.”

“아 그랬구나. 근데 왜 폰 깨진 거를 엄마한테 말씀드리면 왜 가오를 못 잡아?”

“진아가 자꾸 걱정하길래 제가 괜찮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우리 아빠가 돈 많이 버니까 또 사주실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사실은 민성이도 엄마에게 말씀드릴 일이 걱정인 거구나?”

“엄마가 비싼 거니까 조심조심 사용하라고 했어요. 지난번 폰처럼 막 사용하면 혼내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하면서 또 꺼이꺼이 운다. 자초지종을 말하느라 잠시 멈췄던 눈물보가 다시 터진 것이다.

그래 민성아! 네가 상남자구나. 좋아하는 진아가 상심하고 걱정할까 봐 진아 앞에서 가오는 잡았으니 됐다. 심하게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성인 남자보다 민성이 네가 더 낫다.

하지만 민성이 너도 어쩔 수 없는 순진하고 착한 10대로구나. 구입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새 전화기가 망가졌으니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날 오후에 민성이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

“하하하하!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저희 민성이가 제대로 크고 있는 거 맞는 거네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넓은 마음, 좋은 모습으로 보이려고 하는 거니까요! “

망가진 전화기는 보험으로 처리하면 되므로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통화는 끝났다.

같이 살고 있는 우리 집 남자도 내 앞에선 가오 좀 잡았으면 좋겠다. 결혼 전에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처럼 허풍 많고 낭만적이었던 우리 집 남자의 옛 모습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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