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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Nov 01. 2023

·필름느낌 또는 아날로그의 맛

필름사진과 디지털 사진 - 1

연필로 글을 써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작가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굳이 타자기를 사용해서 쓰는 사람 역시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Delete키나 Back skip키 없이,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도 없이, 긴 글을 쓰는 과정을 나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제3자들은 ‘글은 내용이 중요하고 머리에서 나오는 건데, 왜 굳이 쓰는 방식을 문제 삼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방법과 과정이 변하면 생각과 마음이 따라서 변하고,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용인

필름을 DP점에 가져가면, 현상한 필름과 함께 받아오는 건 어차피 (인화(印畫)한 아날로그 사진이 아니라 프린트한) 디지털 사진이다. 그러고 보니, 사진에서 아날로그가 사라진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 같다.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에 디지털 인화가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분명히 DP점에 필름을 갖다 주었다. 그러나 받은 것은 디지털사진이었다.


나는 굳이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하는 분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손 맛'이나 '찍는 맛' 때문에 그런다면 모르지만, '결과물이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는 것 같다. 모니터 위의 사진을 보면서, '색감이 어떻다'느니 '필름느낌 어쩌고'하는 걸 보면, 그런 의심이 든다. 그러나 필름을 스캔해서 모니터로 본다면, 어차피 '디지털 사진'을 보는 것이다. 프린터로 인쇄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컴퓨터가 보내는 디지털 신호를 받아서 픽셀로 표현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표현된 이미지인 것이다.


그래도 그 사진에 '필름느낌이 묻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착각’이거나 ‘기분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냥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포토샵에서 필름 느낌이 나게 보정을 해도 될 것 같다.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포토샵 필터도 있다. 잘 하면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귀찮게)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DP점에 들락거릴 이유가 있을까?’ 시내에서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충무로 DP점에 들러 사진을 찾고 필름을 맡기는 내 사진동무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필름느낌이라는 오해)


디지털은 너무 선명해서 식상했다.

혹은 너무 정확해서 인간미가 없다.



내 사진동무는... 종종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스캔해서 사진동호회 게시판에 올린다. 그 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진을 찍었고, 지금도 다양한 필름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필름 맛'을 못 잊어서 필름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감성 충만한 사진가들 중 한 명이다.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면서 '역시 필름'이라며 좋아했다. '아날로그 느낌'이라는 것이다.


디지털은 (컴퓨터가 알아먹어야 하므로) 오직 숫자로만 표현할 수 있다. 밝기든 색상이든 소리든, 컴퓨터가 일을 하는데 필요한 어떤 정의든 명령이든 다 마찬가지다. 심지어 도저히 숫자로 정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조차 전부 숫자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반드시 '이것이거나 저것'이어야만 한다. 그 세계에서는 모호한 상태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에러'로 처리되기 때문에 표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숫자로 하는 표현은 분명하고 정확할 수밖에 없지만, 한계 역시 명확하다. 정확하고 한계가 분명한 디지털의 특징은 사진이미지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디지털사진은 명암 톤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양 끝 단의 한계 또한 확실하게 드러나 보인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블랙홀과 화이트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필름 사진의 특징은 모호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과 사물간의 경계가 날카롭도록 선명한 그런 느낌은 필름사진에서는 볼 수 없다. 잘린 듯이 나타나는 블랙홀이나 화이트홀도 보이지 않는다.


아날로그의 특성은 '경계와 한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사물과 사물 간의 경계는 선으로 분명하게 그어져 있지 않고 색과 명암의 단계나 구분이 분명치 않다. 계량하고 측정하기 불가능해서 그 단계나 한계를 알 수 없으며, 마치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처럼, 두루뭉술하고 모호하다. 아마 그런 점이 우리 정서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혹하는 건 분명히 그런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날로그는 어설퍼서 '인간적'이지만 디지털은 너무 단호해서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것일 터이다.


우리는 모호하고 한계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신비감을 느끼고 경외심을 갖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디지털의 발전으로 그 표현의 한계가 무한에 가깝게 확장되고 있어서 우리의 감각으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차이를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맛’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록 인식은 가능하지 않더라도, 그걸 알아채는 다른 감각이 우리 몸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느낌은 최소한 컴퓨터 모니터 위나 프린팅을 통해서는 표현될 수 없다. 모니터나 프린터는 디지털매체의 표현 수단이고 거기 아날로그적인 성질은 하나도 없다. 숫자로 정의되는 표현방식이라 정의와 한계가 분명하다. 그 사진들은 (필름카메라로 찍었어도) 전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사진이다. 단지 '어느 시점에 디지털 화 되었는가'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디지털 사진은 촬영시점부터 디지털이지만, 필름 사진은 필름을 스캔할 때 디지털 화가 되는 셈이다.


내가 보기에 필름을 스캔한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은 오로지 아날로그 사진이 가졌던 '흐릿한 느낌' 뿐인 것 같다. 그저 '흐릿한 느낌'은 (굳이 필름사진을 찍지 않고) 디지털 사진에서 출발해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포토샵 등에서 명암 톤을 조절하고 윤곽 부분을 흐리게 하면 될 것 같다. 만일 색감(Color)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색감이야말로 말할 것도 없다. 포토샵에는 색을 쉽게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름사진이 아날로그가 되려면, 현상한 필름을 가지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화까지 마쳐야 한다.


(전기신호로만 존재하는, 허깨비 같은 영상)


아날로그 사진에서는 필름과 도구들을 다루고, 약품냄새를 맡으면서 암실작업을 한다. 필름을 인화하는 과정도 (프린터를 사용하지 않고 작은 필름에 빛을 비춰서 확대하는) 아날로그 방식이다. 그건 미술작품을 제작할 때처럼, 직접 보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지면서, 물질을 다루는 일이다. 어린 시절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진흙으로 개와 고양이를 만들 때처럼 (조형을)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성취와 만족감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사진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 사진은 '엑기스만 쏙 빼 놓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은 영상(Image)이고, 그 영상이 필름이나 인화지라는 지지체 위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영상의 정체는 (빛에 의해 산화된 은염(銀鹽)이 아니라) 전기신호 속의 숫자와 산식이다. 우리가 보는 사진은 컴퓨터 저장장치 속의 숫자와 그걸 해독해서 투사한 모니터 위 이미지인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 저장장치와 모니터는 그 이미지 만을 위해서 부여된 고유한 자리도 아니다. 디지털 사진은 거기 잠시 나타났다가는 사라질 뿐이다.


디지털 사진은, 정착되지 못한 채로 컴퓨터 속을 떠도는, 마치 유령 같은 이미지다. 그걸 다루는 작업에서 과거 필름방식 암실작업에서와 같은 그런 즐거움은 느끼기 어렵다. 인화하고 현상하는 과정이 너무 손쉽게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무게와 질감을 가진 실물(實物)을 만지는 게 아니라, 실체도 없는 ‘허깨비’를 상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조차 없는, 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는 일이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촬영방식 차이에서 나타나는 사진혁명)


나는 정작 필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넘어오면서 일어난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그런 것(사진 품질 문제) 보다 촬영방식에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셔터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맡을게요.”


1888년 코닥社가 손 안에 들어가는 간편한 카메라를 개발했을 당시의 광고 문구다. 카메라가 발달하면서 사진촬영이 획기적으로 쉬워졌고, 벌써 그로부터 130년 이상 지났다. 그 사이 카메라는 발전하고 변신해서, 기능이 자동화되고 성능도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더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질 좋은 사진이 찍혔다. 전에는 도제가 되어 스승에게서 전수받아야 했던 사진촬영기술은 이제 더 이상 ‘기술’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마 가장 극적인 변화는 ‘디지털로의 전환’이었을 것이다.


카메라는, 약 140년 전 처음 발명된 이후, 소형화되고, 성능이 발전하고, 많은 작동과정이 자동화되었다. 그러나 필름카메라의 변화는 대부분 발전 혹은 개선에 해당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이 나온 일은 거의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그 사건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혁명적 사건이었다. 단순히 필름을 반도체 센서로 대체한 것만이 아니었다. 진짜 '혁명'은 그로 인해 카메라 사용방식, 즉 '찍는 방식에 일어난 변화'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그 변화들을 대충 나열해보면 이런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전환되면서


1. 필름 대신 거의 영구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 센서로 대체되었다. 필름을 교체하는데 따른 불편이 없어지고, 컷 수 증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줄면서, 촬영횟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이게 사진이 될까 안 될까, 찍을까 말까 하며 갈등하는 대신, 일단 찍어서 결과물을 본 뒤에 판단해도 별 문제 없게 된 것이다. 뿐 아니라, 전에는 프로사진가들이나 가능했던 방식, 즉 '한 장만 제대로 걸려라' 식이 아마추어사진가들도 가능해졌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데 따른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2. 현상/인화 작업을 컴퓨터로 하게 되면서, 그 과정에서 이미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폭이 무한정 넓어졌다. 표현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공을 들여서 디지털 후보정작업을 할 각오를 한다면, 사진을 좀 더 쉽게 찍을 수도 있게 되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출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보다, 한두 가지 미흡한 부분이 있어도 후보정을 통해 보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대충 찍는' 방식이 허용된 셈이다. “하늘에 구름만 있으면 작품이 되겠는데..” 그러나 굳이 구름이 있는 날을 기다려서 거기 다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장장치를 뒤져서 멋진 구름이 떠있는 하늘사진을 찾으면 된다.


3.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현상/인화하지 않고, 찍으면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초점과 노출을 맞추는 등의 기본적인 사진촬영기술이 별 의미 없어졌다. 원리를 몰라도 시행착오를 통해 얼마든지 잘 찍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사진술을 쉽게 배울 수도 있게 되었다.


“어! 사진이 왜 이렇게 찍히지?”


그러면 다이얼을 돌려서 새로 찍으면 된다.


4. 미러리스 카메라가 상용화되면서 사진 찍기가 한 층 더 쉬워졌다. 사진을 찍기도 전에 미리 (LCD모니터 등을 통해) 결과물을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찍은 뒤에야 확인이 가능한, SLR방식 카메라보다 한 발 더 나간 셈이다. 뿐 아니라 카메라를 눈에서 뗀 채로 다양한 앵글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게 되었다. 쪼그려 앉거나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여야 할 상황에서도 그냥 팔만 상하좌우로 움직이면 된다. 요즘 유행하는, 팔을 뻗어서 ‘셀카 찍는 자세’는 SLR카메라로는 불가능하다. 같은 자리에 서서 구현할 수 있는 앵글의 변화 폭이 획기적으로 확장된 것이다. 앵글파인더와 같은 보조장치도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


(진정한 아날로그의 맛)


촬영방식 변화로 얻게 된 획기적인 효율성과 편의성을 알면서도 ‘필름 맛 어쩌고’ 한다면, 그건 거의 아이러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느낌’이라는 식의, 그러니까 남들은 잘 모르는 혼자만의 ‘기분문제’ 때문에 너무 큰 비용을 치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를 고수하려 들면,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남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그 예민함을 약간 억누르고 타협해서 적당히 맞춰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몇몇 고집불통들을 빼고) 다들 그러고 사는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디지털 방식은 장점도 많고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후각(?)이 있는 것 같다. 아날로그의 특성은 경계가 모호하고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건 물론 ‘물질’의 특성이고 ‘물질’이 컴퓨터 속에 들어가서 디지털화 되면서 모든 게 분명한 상태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아날로그적 특성에서 비롯된 그런 느낌을 디지털에서도 느낄 수 있게 구현할 수 있다. 물론 (물질 아닌 것이 물질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디지털이 일부러 경계를 흐리고, 아무리 한계를 확장해 나가도, 나는 그게 아날로그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쉬워지고 편리해지면서 잃게 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연필로 글을 써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작가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굳이 타자기를 사용해서 쓰는 사람 역시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Delete키나 Back skip키도 없이,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도 없이, 긴 글을 쓰는 과정을 나는 상상조차 못하겠다. 제3자들은 ‘글은 내용이 중요하고 머리에서 나오는 건데 왜 굳이 쓰는 방식을 문제 삼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방법과 과정이 변하면 생각과 마음이 따라서 변하고,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필름 카메라로 찍어야 사진 찍는 맛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귀찮고 어려운 사진촬영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는 것인 지도 모른다. 혹은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함에 대해 불만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단지 과정을 힘들고 어렵게 진행하는 것으로 사진에 '맛' 같은 게 배어들 수도 있는 걸까? 따지고 보면, 사진은 처음부터 이미 수제품도 아니었다. 자연현상을 이용해서 실물을 복제한 그림이고,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제작되는 과학산업의 산물이다. 그 기계적 처리과정이 얼마나 많이 자동화 되었는지 아닌지, 혹은 더 편리해 졌는지 아닌지에 관한 문제가 사진의 본질이 바꾸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니까 굳이 필름카메라를 쓴다거나, 굳이 수동모드 만 써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혹은 미러리스 카메라 대신 굳이 SLR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결과물 사진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옷이나 도자기 등에서 수공품인지 기성품인지를 구분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만일 정말로 ‘과정이 달라서 결과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면 말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이 있다. 아니, ‘얕은 생각’을 두고 쉽게 '이치'라고 내가 믿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훌륭한 것'들이 '우직한 사람들의 뚝심'에서 탄생한 사례를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마지못해 이런 식의 생각도 해본다. 절제하며 신중하게 누른 셔터는 ‘쉽게 다시 찍을 수 있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으로 누른 셔터와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성가시고 복잡한 현상/인화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셔터를 누르기 전에 더 신중하게 성찰할 기회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였으니 결과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직장상사의 질타가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다)


[우리는 필름카메라 시대에 비용의 노예였든지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이미지를 남발하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필름카메라는 한 컷 한 컷 넘어갈 때마다 빛을 철저하게 읽고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피사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배경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단 한 장을 찍는다. 이런 상황은 사진에 대한 사진가의 자세를 아주 진지하게 만든다. (이상엽. 최후의 언어 p17) ]


솔직히, 나는 (잔머리를 굴려서) ‘마치 연필로 또박또박 쓴 것처럼, 워드프로세서로 쓰는 방법'을 강구하는 타입이다. 사진에서는 디지털 사진을 찍어서 필름느낌이 나게 후보정을 하면 된다는 식이다. 또한 ‘아날로그 느낌’ 같은 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지 '마음의 문제'일 뿐이어서, 마음만 잘 통제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이 주는 그 편리함에는 그에 못지 않게 혹독한 대가가 있는 것 같다. 어딘지 허전하고 왠지 의미를 잘 느낄 수가 없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덧붙여서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실제로, '필름 느낌의 디지털 사진'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필름 느낌의 디지털 사진'은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필름을 스캔해서 만든, '필름느낌 디지털 사진'과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포토샵 필터로 보정해서 만든 '필름느낌 디지털 사진'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다를 수 없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설사 그게 이미지의 품질저하 현상에 불과하다고 해도) 만일 그 차이를 중요시해서 굳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또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다만 너무 작은 것을 위해 너무 큰 희생을 한다는 느낌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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