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는 디지털 숫자로 변했을 뿐이다

황금의 도살장

by LUY 루이

[유의사항] 본 소설은 특정 인물, 단체, 사건과 무관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소설 속 투자 기법이나 시장 상황은 문학적 허구이며, 실제 투자 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투자 결정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기꾼들이 객장에서 종이 테이프를 훑으며 시세를 읽던 시대는 가버렸다.

이제는 0.001초 단위로 쏟아지는 디지털 숫자들이 광섬유를 타고 흐르며 인간의 이성보다 빠르게 탐욕을 실어나른다.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했으니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도구는 변했을지언정, 그 도구를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아서 번즈. 여의도의 번쩍이는 유리 빌딩 뒤편, 이름 없는 사모펀드의 '설계자'로 불린다.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누군가 팔고 싶어 할 때 사게 만들고, 누군가 사고 싶어 미칠 때 팔아치우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기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도살업자에 불과하다.


1. 침묵하는 포식자

오전 8시 30분. 여의도의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사무실 안은 고요했지만, 모니터 너머의 호가창은 이미 수만 명의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다. 내 앞에는 네 개의 모니터가 성벽처럼 둘러쳐져 있다. 하나는 실시간 뉴스 피드, 하나는 HTS의 호가창, 나머지 둘은 우리가 설계한 알고리즘 매매 프로그램인 ‘리바이어던(Leviathan)’의 관리 화면이다.


“아서, 오늘 ‘네오-바이오텍’ 들어간다. 타깃 매집가는 11,000원 아래다. 현재가가 13,000원이니, 15% 정도 밀어내야겠어. 물량은 넉넉히 준비됐나?”


강 상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에게 주식이란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털어내야 할 ‘재고 상품’일 뿐이다.


“이미 준비 끝났습니다. 어제 시간외 거래에서 공포를 좀 심어뒀죠. 오늘 장 열리자마자 투매가 나올 겁니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큰 오해는 ‘악재가 있어서 주가가 떨어진다’는 믿음이다.

천만에.

주가는 ‘팔 사람이 더 많아서’ 떨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팔 사람들을 억지로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시세는 스스로의 길을 가지만 그 길에 돌멩이를 던져 물결을 만드는 것은 우리 같은 자들의 몫이다.


2. 공포라는 이름의 전염병

오전 9시. 장이 시작되자마자 네오-바이오텍의 주가는 힘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리바이어던을 가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매도 주문이 아니다.

개미들의 심리를 가장 잔인하게 자극하는 ‘계단식 하락’을 유도한다.


먼저, 13,000원에 쌓여 있던 매수 잔량을 순식간에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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