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한 장면에서 마주했던 기로에 다시 서서, 다시금 이런저런 비교와 갈등을 시작한다. ‘이랬더라면’, ‘ 저렜더라면’으로 멀티버스 공간이 만들어져 간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비교와 선택으로 이어져 간 점들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진다.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건만, 밤새 뒤척이다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8시간이 넘게 누웠다 일어났는데도 몸이 개운치가 않다.
자리를 떨치고 나와, 자전거에 올라타곤 새벽공기를 가르며 탄천길을 달린다. 한참이 지나도록 이런저런 생각에 쫓기느라, 지나온 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깜빡, 지나치던 행인을 칠 뻔한 아찔함에 정신을 차리고, 이제서야 라이딩에 주의를 기울인다. 달린 거리와는 정반대로, 점점 피곤이 가시기 시작한다.
항상의 반환점에 다 달아 라이딩을 멈추고, 거추장스러운 헬멧과 도구들도 풀어 던지고 좌정에 들어본다. 남아있던 생각의 찌꺼기들 조차 돌아 나가는 숨을 따라 점차 사라지고, 들어오는 숨을 따라 신선한 새벽공기가 느껴진다. 평온하고 감미로운 호흡을 따라 밤새 지친 마음은 10km를 넘는 거리를 달려온 육체적 피로에도 평온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하다.
주위의 모든 것들도 점점 사라지고, 시원하게 들어오는 들숨과 따뜻하게 데워져 나가는 날숨만이 오간다.
문제의 근원은 ‘비교’에 있다. 한번 시작된 비교는 놓칠 않는다.
비교에서 비롯된 생각의 연쇄반응으로, 머릿속에서 쉼 없이 뜀박질 하느라 번아웃(burn out)되고 만다. 몸이 과로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머리를 넘 많이 굴려서 피로해진 것이다.
Mindful, ‘마음챙김’이 아니라 Mind full, '생각채움'으로 머리가 꽉 찬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이루어진 것도 없는데 방전된 느낌이다. 일을 많이 해서 몸이 지친 게 아니라, 비교로 인한 잡생각으로 머리가 피곤해진 것이다. 열심히 뛰어서 힘들어져도, 머리(뇌)가 피곤으로 인식하고서야 피곤을 느끼게 되니, 원인이 무엇이었던 그냥 피곤하다고 느낄 수밖에..
이래서, 현대인들은 이리저리 피곤해한다. 잠시도 쉬질 않았으니, 피곤한 게 당연하다.
허상에 불과한 생각을 통한 비교, 잡생각(잡다한 여러 가지 생각)에서 벗어나 실재(實在)하는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니, 어느 순간 ‘삼매’라 불리는 황홀경에 젖어든다, 뇌과학적으론, 있던 고통도 극복하게 하는 엔도르핀에, 열정 또는 기쁨을 선사하는 도파민 분출까지 덤으로 얻게 되니, 최상의 피로회복제다. 비교 대상의 수만큼 많아진 골목길을 갈지(之) 자로 오가느라 지칠 수밖에 없었는데, 매 순간 마주하는 한 점만으로 쭉 이어가니, 곧게 펼쳐진 아우토반 (autobahn, 고속도로)을 거침없이 달리는 격이다.
‘집중’이라기보다는 ‘주의를 기울인다’가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면 비교, 즉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게 되니, 훨씬 덜 피곤하다.
나아가, 생각이 저절로 걷어진 블랙홀로 빠져들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몰입하게 되는 평온한 삼매에 이르게 되면,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시야 또는 감각에서 사라지게 되는 황홀감도 체험하게 된다. 독서 삼매경, 영화 삼매경, 심지어 게임 삼매경 이라는 표현되는 현상들도 작은 삼매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 보면 멈춤, 그리고 쉼이란, 육체적 휴식보다는 이런 잡생각을 멈추고, 머리에 쉼을 주자는 의미가 더 크다.
잠시 멈추고 앉아서 명상에 들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던 생각들을 멈추고, 호흡만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평안하고 감미로운 호흡만 남게 된다. 이게 멈춤이고 쉼이다.
종로로 가든, 영등포로 가든, 청량리로 가든. 어차피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내 님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마음이, 끊임없는 비교와 갈등을 자아낸다. 지금도 사람들로 가득 찬 을지로에 서 있으면서,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갈 길만 비교하다 결국은 제 풀에 지쳐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간다는 유행가 노랫말처럼, 지금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 사람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님일 수도 있는데, 머릿속 여행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