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공격으로 오해하는 경직성
조직에서 어떤 일을 그르치게 되면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궁금해하고
원인을 찾아 다음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싶어진다.
나는 술술 풀리던 일에 렉이 걸리면 왜 그런지 원인을 찾아나가는 것을
일종의 게임 퀘스트를 깨듯 즐기는 습관이 있다.
어려운 일이야 있을 수 있는데 해결하려면 과정을 알아야 정확한 진맥을 할 수 있어서다.
얼마전 성과 평가에서 fail이 뜬 부분의 입력을 누가 했는지 조교와 직원에게 물었다.
조교는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인데 자기가 잘못 입력한 것 같다고 하고,
직원은 자기가 한 일이지만 기준대로 입력했다고 한다.
아이구 그 포인트가 아닌데... ㅎㅎㅎ
누가 입력했는지 알면 다음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방비를 할 수 있어서 질문을 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입력자가 조교이면 해당 전공과목의 입력 방법과 요령을 알려주면 되고,
직원이면 해당 전공과목의 분류를 모르니 다음에는 조교님이 입력하는 체계로 바꾸자는 제안을 하려고 여쭌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일은 그 전 조교에게도 있었던 일이었다.
처음에는 없었던 특성인데 근무한지 2년즘 되면 변명을 먼저 시작한다.
일의 원인을 찾아서 문제를 뚫으려는 질문을 책임을 추궁한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직장 내 조직문화가 책임을 추궁하는 문화가 있어서일까.
없던 병이 조직생활을 하며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책임은 결재권자가 지는 것이므로 과정을 알려주어야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나는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람이 아니고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주지시킨다.
그 다음부터 직원은 안심하고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곤 한다.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전가해서일까.
책임 추궁의 조직의 문화가 만연해서일까.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책임에 경직된 공무원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질문의 요지 파악보다
우선 면피에 급급하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특성이나 세상이 하도 사나워진 영향일 수도 있을 게다.
해결이 어려운 사안에 대한 변명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프로세스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걸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서다.
문제해결사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궁리하고 또 궁리하면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누군가의 질문을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면 일의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당연히 리더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기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