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막내며느리가 아들,딸,사위,며느리 중 운전을 제일 잘해요.
SUV를 오랫동안 운전하다 세단으로 바꾼 지 며칠 안되어 시내 주행 중 대형차가 급하게 끼어들려고 하자
담담하게 잘 피해 지나가는 나를 보고 같이 타고 있던 큰 아이가 "엄마, 김여사가 운전하는 줄 아나봐요. "라고 농담을 하여 "그러게 김여사 아니고 박여사인데."라며 웃었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김 기사와 김여사의 스타 탄생 이후
김여사와 네비게이션 열풍은 한동안 운전길을 즐겁게 하는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지금은 한 집에 차가 2대 있는 집도 많지만 과거 집에 차가 있는 것은 부의 상징이었다.
S 자동차의 ‘S’를 떼어 간직하면 수능(학력고사)을 잘 봐서 ‘S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청소년기 시절 동네 부잣집의 ‘S’만 빠진 ‘~0000A’ 자동차와
30대 워킹맘일 때 G 자동차를 타는 것을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혼 살림 17평에서 25평, 다시 33평으로 집을 이사하며
재정 상황을 고려하여 반백살이 넘어 큰 마음을 먹고 G 자동차를 구입하였다.
실용성에서 안정성으로 변화된 자동차에 대한 기호는 부러워하던 세단으로 변모하여 반백살이 넘어 내 힘으로 구입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도전해 볼만한 멋진 수입차도 있지만 워낙 강렬한 초등학교 시기 교육의 영향으로 국산차를 선택하였다. 애국자가 되기 위한 길은 다양하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애국자다.
20대 중반에 프라이드베타 중고차를 구입하여 운전을 시작한 후로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구입하는데 30년이 걸렸다. ‘만족지연’에 든 시간이다. 장거리 운전을 위한 아줌마 지인들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비와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승차감과 기술의 발전은 덤이었다. 새삼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차가 나올 때마다 실용성을 강조한 내 발과 같은 자동차를 바꾸고 싶은 유혹에 흔들렸다. 그때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새 차를 부러워하지만 구입할 수 없는 내 모습을 보고 작은 아이는 “멋진 차의 외부는 밖의 사람들이 보지, 정작 운전자는 멋진 차의 외관을 볼 수 없으니 차만 잘 가면 된다.”는 가상한 위로였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 막내는 집 안의 형편을 살필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어 있었다.
고속도로 운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십여 년 전에 비해 요즘은 수입차뿐 아니라 국내 자동차들도 모두 세련된 디자인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예쁘고 멋진 차들이다. 자주 볼 수 없는 오래된 차는 귀해서 더 멋져 보인다.
생각해보니 7남매의 사위와 며느리를 보신 시어머니께서 14명의 차를 타 보았지만, 막내며느리가 운전을 가장 편안하게 잘한다고 칭찬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 “0씨 집안에 시집와서 7남매의 사위, 며느리, 손주까지 28명을 뿌라놨다(불려놨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 우리 시어머니께 인정받은 게 아닌가!
든든한 부모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 대학을 나왔다는 자랑이나 자동차가 아니고,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직스러운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