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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박성민 Feb 18. 2024

눈치가 밥 먹여줘요

시니어 대학의 필살기-‘선생님’ 호칭 사용하기

미국에 사시는 친정어머니께서 막내딸에게 전화를 주셨다.

엄마의 수다를 가장 오래 받아줄 수 있어서 한번 통화를 하면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정기적으로 전화를 드리기에 엄마가 내게 먼저 전화를 주셨을 때는 최근 무언가 언짢은 일이 있어 마음의 해우소가 필요하시거나 무언가 하시고 싶은 일에 차질이 생겨 답답하여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물으시는 경우이다.      


최근에 엄마는 노인대학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평소 하시고 싶었던 취미 생활과 치매 예방겸 피아노를 배우고 치는 연습을 하기 위해 키보드를 구입하실 계획을 세우셨다. 적절한 건반수와 어떤 제품이 좋냐는 통화를 일주일 전즘 했었는데 역시나 구입에 애로사항이 생기신 것이었다. 초보라도 키보드는 88개의 건반과 이동식 다리가 공간 활용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회사는 전통이 오래된 피아노회사 제품을 추천해 드렸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하실 수 있지만 설치와 반품 등에 걱정이 많으셔서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고 싶으신 것이다. 나 역시도 채소와 과일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식을 결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채소와 과일은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야 직성이 풀리기에 온라인 구입 방식을 결정하는데 온라인 구입을 위한 시도와 경험의 시간이 필요했다.      


때로는 직접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죄송하지만, 나는 엄마의 습관과 고집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연세도 연세이지만 누구나 바꾸기 쉬운 습관부터 서서히 알려드리면 변화가 되지, 내 방식을 고수하며 상대의 습관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기적인 효도 차원의 소통이라는 나의 의무감이 무색할 정도로 엄마와 대화할 때는 꿀맛이 있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대화의 내용 속에 내 관심사와 닿아있는 부분을 발견할 때다. 주된 대화의 내용은 노인들의 일상이지만 오늘 대화의 요지는 ‘눈치’였다.     

 

노인대학에서 예전에 엄마가 다니시던 직장의 클라이언트였던 분을 만났는데 노인들은 대부분 과장해서 말하니 내용은 걸러서 듣고, 자신의 정보를 너무 노출하지 말고 적정 수준에서 대화해야 오래 다닐 수 있다는 조언을 주셨다고 한다. 나도 곧 노인이 될 예정이지만 노인들의 사회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엄마께서는 시니어 대학이 아니라 명확하게 하면 시니어 센터인데 노인대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 좋은 과장(허풍, 부풀림, 뻥)’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빵 터지고만 이야기는 식사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인대학에 막 오신 어른께서 식당에서 처음 식사를 하시는데 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이 다른 노인분들께는 식판을 손수 갖다 드리면서도 당신만 갖다 주지 않아서 “여기요. 제가 먼저 왔어요”라고 계속 말을 해도 한참을 일부러 못들은 척하고 안갖다 주더라는 것이다. 계속 식판을 안 갖다 주는 직원을 보며 옆의 할머니들께서 “선생님이라고 해야 갖다줘요. 선생님이라고 안 하면 밥도 못 얻어 먹어”라고 훈수를 해주셨다는 이야기였다. 그 할머니는 노인대학에 오신지 얼마안되는 데다가 눈치가 없으셔서 식당의 문화를 빨리 감지하지 못하셨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수다를 들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수다를 경청해야 하는 이유이다. 식사를 자식이 챙겨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웃기고 슬픈 이야기지만, ‘눈치’는 노인대학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살기이도 했다. 


너도 나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한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사전적 의미(다음 한국어 사전)로 보면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성 또는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이니 상대의 직업을 존중하는 의미로 널리 사용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게 여겨진다.     


예전 특수학교 근무 시절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 차원의 긍정적 행동지원을 하기 위해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언제 어디서든 모든 학생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교육공동체의 일관된 교육을 위해 협력하는 문화를 조성했었다. 당시 버스 기사님들께 운전원 선생님, 식당 조리사님께 조리사 선생님, 행정직원분께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었다. 만약 식당에 와서 계속 음식을 더 달라고 요구하면 담임교사의 협조 요청에 의해 조리사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3번까지 가능하고 그다음은 어렵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안내하시는 것과 같은 지도 사례이다. 교사마다 다를 수 있는 교육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원만이 아니라 직원도 교육공동체로서 교육에 함께 기여할 수 있도록 학교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눈치는 ‘sense’가 아닌 ‘nunchi’로 한국의 화병과 같이 한국어 고유명사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한국인의 눈치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눈치는 학업의 성취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알려져 있다. 태평양을 건너 저 멀리 미국의 노인대학에서도 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직원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대접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용어 속에 사회적 존중이 담겨 있는 사회상에 고마움을 느낀다. 


한때 교사였던 나는 인간으로서 양가감정이 드는 오늘, 나의 노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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