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everFenber Mar 12. 2024

잡초가 자란 콘크리트 바닥은 누군가의 안식처였을 테다.

일본 철도 여행 #002, 산리쿠 지역 전편

2011년 3월 11일, 규모 M9.1의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본 전역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공식 명칭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그날 발생한 지진은 땅만 흔들어 놓은 게 아니었다. 쓰나미는 최대 40여 미터의 높이로 바닷가에 들이닥쳤고, 15,901명의 전체 사망자 중 65% 이상이 쓰나미에 의해 희생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침수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전 세계가 방사능의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방사능으로 뒤덮인 마을은 2020년까지 돌아갈 수 없었고, 연안의 쓰나미 피해 지역에는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허겁지겁 세운 콘크리트 제방과 다시 포장된 새 도로만이 남아있었다.


쓰나미(津波), 한국어로 지진 해일이라 부르는 쓰나미는 갑작스럽게 바닷물 높이의 변화가 생길 때 일어난다. 갑자기 바다의 교란이 발생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지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 후 해안가에서는 쓰나미를 조심하여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최대 16.7m의 높이로 들이닥쳤고, 10,035명이 목숨을 잃고 17,443명이 실종되었다. 


동일본 대지진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도호쿠 북쪽 지역을 강하게 타격했다. 복잡한 해안선으로 피해가 가중된 산리쿠 지역 해안가의 수많은 마을은 콘크리트 터만을 남기고 허무하게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도쿄 올림픽에 맞춰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고자 했다. 바이럴 마케팅과 정부의 선전으로 그럴듯해 보였으나 동북(도호쿠)의 땅에 새겨진 상처는 아직도 아련해 보인다. 




오늘의 루트

카마이시와 츠가루이시, 스즈메의 발자취를 쫓아 사라진 마을에.


원래는 산리쿠 지방을 탐방하기 위해서 카마이시 이남의 오후나토선(大船渡線)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도호쿠 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로 오후나토선 연선 지역에 산사태가 일어나 선로 정비를 위해 운휴 한다는 속보를 듣고 급하게 카마이시선을 경유하도록 계획을 수정했다.



토호쿠 본선의 간판 열차 701계. (좌) 기타카미역 서쪽 출구 (우)

갑자기 바뀐 계획 때문에 남는 시간이 애매해진 나는 늦은 오후 이치노세키를 출발해 도호쿠 본선(東北本線) 보통열차에 올라 키타카미(北上)로 이동했다. 다음날은 긴 여정이 될 테니, 일찌감치 역 앞의 토요코인에 체크인하고 오늘 하루는 느긋하게 쉬기로 했다.


락 스피릿이 물씬 느껴졌던 가게.

근처에 구글 맵 평점이 높은 라멘 가게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리뷰에는 음악이 특별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때는 들을 수 없었다. 가볍게 츠케멘을 주문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다. 왼쪽에 깨알 같은 분홍색 서비스 티켓은 덤. 나중에 다시 올 수도 있을 텐데 어느 순간 잃어버린 것 같다.


토요코인 건물이 이 마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듯하다.
키타카미 강 공원, 봄에는 이곳의 벚꽃이 장관이라고 한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조금 걸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시골 마을 풍경이다. 예전에 시모노세키의 시골 마을에 갔을 때,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미군 m50 야상을 걸친 채 카메라를 들고 강가에 쭈그려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걸 지켜보시던 한 할아버지께 다큐멘터리 촬영이냐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쓰르르르 울려 퍼지는 저녁매미 소리가 좋았다.


키하 110계 급행형 실내

다음날 키타카미에서 10분 정도 도호쿠 본선 열차를 타고 하나마키(花巻)까지 올라갔다. 하나마키에서 카마이시선에 직통하는 쾌속 「하마유리」 호에 타기 위해서이다. 쾌속 「하마유리」는 모리오카에서 출발해 도호쿠 본선을 타고 내려와 하나마키에서 카마이시선에 직통한다. 카마이시선의 종점은 이와테현 동쪽 끝의 작은 마을, 카마이시(釜石)이다.


낡은 키하 40계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키하 110계가 활약한다.
쾌속질주하는「하마유리」호.

JR 동일본은 오래된 키하 40계를 대체하기 위해 1989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이 키하 110계를 운용하고 있다. 디젤 기관을 사용하면서 시속 110km 정도의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키하 110계 동차는 「하마유리」를 포함해 도호쿠 지방 로컬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산리쿠 철도와 홈을 공유하는 카마이시역

어느덧 열차는 카마이시에 도착,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여기서 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으로 갈아탄다. 옛날에는 이 구간도 JR 야마다선의 일부였지만 2011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선로가 유실되어 이 지역의 지방 사철인 산리쿠 철도에 이관됐다. 「하마유리」는 3번선에 도착, 4번선에서 출발하는 산리쿠 철도 보통 열차와 바로 환승할 수 있도록 했다.


카마이시역 정리권

조금 느긋하게 카마이시를 둘러본 후 출발하고 싶었지만 산리쿠 철도의 열차 시간 간격이 상당히 넓어서 「하마유리」와 바로 연계되는 열차를 타지 않으면 당일치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탔다. 위 사진은 열차 안에서 뽑은 카마이시역 승차 정리권이다. 정리권에 적힌 「笑顔をつなぐ、ずっと…」 '웃는 얼굴을 이어서, 쭉...'이라는 문구가 어딘가 애잔하게 느껴진다.


우노스마이역에서 하행 열차 교행 대기

여기서 잠깐, 산리쿠 철도산리쿠란 무슨 뜻일까? 산리쿠는 1869년 보신 전쟁에서 패한 무츠국(睦国)이 5개로 쪼개지면서 생긴 율령국들 중 동쪽 해안을 맞댄 세 국, 리쿠오(陸羽), 리쿠츄(陸中), 리쿠젠(陸前)의 이름을 따 (三陸)라고 부르게 된 것에서 기인한다. 산리쿠의 세 국은 각각 현재의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미야기현이 되었다고 한다.


산리쿠 지방의 리아스식 해안 발달 과정

노선명인 리아스선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곳 산리쿠 지역 해안선의 특징인 리아스식 해안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리아스식 해안은 해수면이 상승해 육지가 바다에 가라앉아 생기는 복잡한 형태의 지형으로,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도 리아스식 해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칙칙한 제방.
이와테후나코시역에 정차하는 열차.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 안에서 군데군데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이 새파란 바다가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마을을 덮쳤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꽤 순조롭게 여정이 진행되는 듯 했으나 첫 번째 목적지인 츠가루이시(津軽石)에 도착하기 직전,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타고 있는 열차가 JR패스를 쓸 수 없는 지방 사철의 원맨 열차임을 깜박하고 잔돈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가지고 있던 건 5천 엔과 1만 엔 권 한 장씩이었고 열차에 탄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바꿔달라 부탁했어야 했다. 그러다 열차 끝자락에 앉아계셨던 어느 노부부께서 동전과 천 엔권 넉 장으로 바꿔 겨우 운임을 낼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서 잠깐 일본 철도 여행을 한다면 알아야 하는 원맨 운전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철도 차량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운전수차장 두 명에서 운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원맨 운전임을 알리는 초록색 원맨(ワンマン) 패널. 사진은 오카야마 역에서 촬영한 JR 서일본 소속의 키하 40계.

그런데 원맨(ONE MAN) 운전이란 말 그대로 차장 없이 운전사 홀로 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맨 운전은 복잡한 도시철도 노선과 지방 로컬선에서 주로 행해지는데, 이 둘의 양상이 조금 다르다. 원맨 운전은 대부분의 역에 역무원과 개찰구가 없는 지방 로컬선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원맨 운전을 하는 지방 로컬선의 운전사는 혼자서 운전과 운행 중 차량 관리, 운임 계산까지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골 로컬선에서 쓰이는 열차는 대부분 단칸, 길어봐야 3량 편성이기 때문에 원맨 운전으로 효율적인 운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에치고 토키메키 철도의 ET127계 전동차. 역시 행선지 안내판에 초록색 원맨 운전 표시가 있다.


 * 원맨 열차는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걸까?

원맨 열차에 탑승할 때는 먼저 출입문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정리권 발권기에서 승차 정리권을 뽑아야 한다. 승차 정리권에는 내가 탑승한 역과 날짜가 쓰여 있고, 내가 어떤 역에서 탑승했는지를 증명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운임은 승차 정리권을 바탕으로 정산하기 때문에 만약 뽑지 않거나 나중에 뽑는다면 부정승차로 간주된다. 도중에 잃어버려도 마찬가지니 주의하자.


* 원맨 열차에서 운임은 어떻게 계산할까?

일반적으로 열차 앞뒤에 모든 정차역 중 현재 열차가 지나간 역까지의 운임을 알려주는 전자 운임 표시기가 있다. (간혹 그냥 운임표만 있는 경우도 있다.) 승차 정리권에 쓰여 있는 역을 찾아 표시되어 있는 만큼의 돈을 준비한 뒤, 하차 시에 운전수가 준비하는 운임정산기에 넣고 하차하면 된다. 운전수에게 승차 정리권을 보여주면 지불해야 할 운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운임에 딱 맞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IC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시골 원맨 열차를 탈 때는 항상 잔돈을 챙기도록 하자. 잔돈이 없으면 일단 큰돈을 내고 운전수로부터 영수증을 받은 뒤 철도 회사 본사에 직접 방문해서 거스름돈을 청구해야 한다. 이는 상당히 귀찮고 일반 여행객 입장에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잔돈을 꼭 챙기는 것이 좋다. (내가 그렇게 될 뻔했다.)


조소선에 운용되는 칸토 철도 키하 2400형 동차

도쿄 이북의 지방 간선 노선을 운행하는 간토 철도 조소선(関東鉄道常総線)에 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출입문 바로 앞의 주황색 기계가 정리권 발권기, 운전실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기계가 운임 정산기 그리고 운전실 위쪽에 달려있는 것이 전자 운임 표시기이다.


간토 철도 조소선의 운임정산기, 정리권 발권기, 전자운임표.

주황색 정리권 발권기는 모든 출입문 앞에 설치되어 있고, 승차 시에 그 역에 맞는 정리권이 자동으로 나온다. 운임 정산기(운임함)는 열차가 완전히 정차한 후 운전수가 하차 방향 쪽으로 설치한 뒤에 운영한다. 열차가 역에 정차하면 운전수운임 정산기를 운전실 바로 앞에 세워두고 내리는 사람의 운임을 하나씩 정산하기 때문에 열차 앞문으로 승차한다면 이를 방해하게 된다. 즉, 원맨 열차를 탈 때는 뒷문으로 타고, 내릴 때는 앞문으로 내리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으니 참고하자. (이에 대한 안내가 있는 철도 회사도 있지만 없는 경우도 있으니 알고 있으면 편하다.) 2량 이상의 원맨 열차일 경우에는 뒷 칸의 출입문을 아예 열지 않기도 한다.


토사 쿠로시오 철도에서 설명한 원맨 열차 탑승법(직접 번역) ⓒ土佐くろしお鉄道株式会社

이러한 원맨 운전 시스템은 열악한 시설을 가진 역을 지나는 지방 로컬선의 승무 편의성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역무원과 개찰구가 있는 큰 역에 정차할 때는 프로세스를 생략하기도 한다. 간혹 원맨 열차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특정 역에서 모든 출입문을 개방하고 운전수가 운임 계산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그러한 경우다. 이럴 때는 승차 정리권을 들고 그냥 내린 후 개찰구에 가서 역무원에게 보여주고 운임을 계산하면 된다.


복잡하지만 효율적인 지방교통선 운행을 위해 만들어진 원맨 운전에 대해 설명해 보았다. 이 시스템이 로컬선의 부정승차를 줄이고 자가용 수요가 훨씬 많은 지방에서 철도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바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츠가루이시에 도착하기 직전에 잔돈을 준비하지 않아 낭패를 볼 뻔했다. 이전에는 대부분 JR의 열차를 탔으니 JR패스를 사용해서 새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참고로 JR패스와 같은 패스권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일단 탑승할 때 승차 정리권을 뽑고, 하차할 때 승차 정리권패스를 같이 제시하면 된다.





역 안의 팸플릿과 역 방명록에 남긴 내 그림.

사실 오늘 꼭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이것이다. 작년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의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어렸을 적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집과 어머니를 잃고 멀리 떨어진 큐슈로 떠나 이모와 함께 자란 주인공 '이와토 스즈메‘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곳은 작품에 등장하는 스즈메의 옛 집이며, 영화의 심볼인 '스즈메의 문'이 똑같이 재현되어 있는 걸로 유명하다. 실제로 쓰나미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지역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에도 시대 고풍 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모리아이 가(盛合家) 주택. 방치된 것인지 기울어진 채다.
유난히 새것인 도로와 다리

역 주변은 평범한 시골 마을 같았지만 츠가루이시 강 건너편으로 가니 휑해지기 시작했다. 페인트의 광이 채 벗겨지지도 않은 다리의 난간들과 새로 깔린 듯한 도로가 산처럼 잡초가 자란 땅들과 함께 놓인 신기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을 지나쳐 '스즈메의 문' 스팟에 도착했다. 뒤쪽의 전파탑까지 작품 속과 완전히 동일한 위치였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토착신앙의 정점, 스와에 빠져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