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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Feb 18. 2024

봄이 오네요

찰나의 소식들

입춘 지났다고 어김없이 봄이 오네요.

동네 옷가게 옷들이 봄빛으로 바뀌고 있어요.

묵은 때를 벗겨 모아 놓은 것 같은 거리의 쓰레기더미들도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눈에 띄어요.

겨울 빗장이 열리나 봐요.

산책길엔 일찌감치 봄기운을 느낀 들고양이들이 요리조리 몸부림치고요, 오늘 아침엔 우리 집 마당에도 놀러 왔어요.

산수유, 매화나무는 어떻고요.

가지치기하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하마 꽃망울을 머금어 곧 비집고 나올 기세라 아차, 싶었어요. 조금만 더 일찍 움직여서 가지를 쳐 줄 걸. 꽃망아리 맺혀 벌어지려는 가지들을 어찌한답니까. 벌써 봄마중하러 나온 생명들 앞에서 몇 번이나 가위를 들었다 내렸다 망설이는 모습, 얕고 여린 갈등에 한참을 주저하네요. 겨울나무보다 게으르게 나온 이 사람을 마당에서 들키고 말았어요.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이른 봄기운을 잡으려 하네요. 하늘로 올라가는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옮겨 다니는 조롱박이 새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요. 

누군가가 나를 불러요. 가까이 가 보니 같이 근무한 동료였어요. 

"어, 어떻게 저인줄 알았어요?"

"아이고, 멀리서 걸음걸이만 딱 봐도 누군지 알겠네."

"하하, 그랬어요? 워낙 위풍당당한 걸음이라. 어쨌건 눈썰미 알아줘야 한다니까."

몸에 밴 습관은 감출 수가 없는 거죠. 사실 난 좀 얌전하게 걷고 싶어 처음에는 조심해서 사브작 걷지만 몇 발작 안 가 조심하는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냥 몸에 밴 대로 걷다 보니 자주 씩씩하다는 소릴 들어요. 나쁘지 않죠. 활기찬 걸음걸이 얼마나 좋아요. 호호.

주말 부부를 하는 그들 모습이 오늘따라 아주 화사해 보였어요. 덕담을 했어요.

"아유, 두 분 화사한 한 쌍의 잉꼬 같아요. 더 젊어지시고. 서로 막 챙겨주기 하시나 봐요."

"무슨 소리? 내가 맨날 다 해주지. 죽을 지경이네."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 참."

한바탕 웃는 사이 새들이 화르르 날아올라요. 

나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이 두 분과 같이 근무했었어요. 한 분은 내가 황망한 시기에 빠졌을 때 친목회장을 하면서 실없는 소리로 자주 웃게 하셨죠. 전화가 오면 참 독특하게 전화를 받았어요.

"나날이 발전하는 박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늘도 기분 좋고 내일도 기분 좋은 멋진 남자 박입니다." 등.

그래서 그때 동료들이 놀리기도 했어요.

"오늘도 저녁 사고 커피까지 사신다는 박 선생님, 내일은 어디서 모일까요?"

또 한바탕 웃기도 했지요. 

세월이 흘러가니 사람도 시절 따라 흐르는가 봐요. 한 분은 미소가 더 부드럽고 화사해졌어요. 머리도 주황으로 물들였고요. 티격태격하던 이들 부부에게도 훈훈한 변화가 느껴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분들이죠. 이런 분들을 보면, 세월 따라 참 많은 내공을 쌓는 것이 나이 듦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봄이 와서 그런가요?


물 밑 작업을 끝낸 겨울물이 흙과 나무를 타고 올라오고 있어요. 산책길을 걷다 보면 해토머리 흙이 운동화에 묵직하게 달라붙죠. '나, 이제 얼음 풀었어.' 하는 거지요. 정말이지 가둬 두었던 생명들이 새 숨결들을 소리 없이 뿜고 있어요. 나는 그 소리 없는 소리들을 '아, 이거구나' 하며 듣고 싶어 날마다 귀를 기울여요. 분명 미세한 어떤 소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연은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이라는 걸 몸으로, 실체로 말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온라인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도 말이죠. 때를 놓치지 않잖아요. 매화, 산수유가 곧 터질 꽃망울을 무심결에 터뜨리는 찰나찰나마다 올 한 해를 그리는 꿈연주되는 것이겠죠? 


찰나의 변화가, 차가웠던 겨울의 힘이 튼튼한 봄을 피워 올리고 있음을 잔잔히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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