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와 어른 한 그루
청량하고 맑아서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날씨에 실려가는 느낌이다.
이대로 사람 한 그루로 오월 청량함 속에 놓여 오늘 하루의 생을 산다.
작약, 붓꽃, 꽃양귀비, 수레국화, 꽃창포들과 딸기나무, 미스김라일락, 은행조팝나무도 나와 같이
오월 햇빛과 바람과 땅의 기운을 고르게 받아 한창 살고 있는 중이다.
이 모습, 이 시간 평화롭다. 바람의 움직임이 없다면 이 평화로움은 무료함일 수도 있지만, 다행이다.
2007년에 만난 한 아이가 말했다.
저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좋아요.
가슴이 찡하고 먹먹했다.
이 아이는 그 2년 전에 엄마를 잃어 늘 어딘가 허해 보였다. 밥 먹으러 갈 때도, 야자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혼자 다녔다. 활달성도 있었고 자기표현도 분명했는데, 애써 어울리고 싶어 하진 않았다. 복도 끝이나 운동장의 나무 아래 또는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나기 2년 전에 나도 엄마를 영원히 보내드린 터라 왜 바람 부는 곳이 좋으냐고 묻지는 않았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난다. 투정부리듯 어른스러워 보였던 그 아이도 흘러가는 시간을 가슴에 쌓아 올렸으리라.
시간에게 가로축과 세로축이 있다면 시간은 흘러가는 가로축만큼 세로축으로 쌓여가는 것일 거다.
이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이지만 어떤 이에겐 세로축만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흘러간다지만 누군가에게는 쌓여간다.
그리움조차 흘러가서 이곳에 남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리움이란 말도 본래 없었던 듯이 살면 좋겠는데,
어린아이의 맹목적인 마음만 남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숱한 마음도 실체가 없다
쌓여간 시간은 높이가 없고, 흘러간 시간은 길이가 없으니.
바람이 불어오면 실려오는
그리움 아득함 유랑 자유
이제 아이의 엄마쯤 되었을 그 아이의 시간도
실체 없이 마음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겠지.
그러면 되는 거지.
미스김라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