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뱃길에서
'파도를 탄다'
'파도를 탄다'
바다를 이기는 주문을 했다.
한낱 나뭇잎 같은 여객선에 몸을 싣고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갈 때
바다는 장난이라도 하는 듯 큰 파도를 부렸다.
니나호 2층 선실 뒤에서는 괙괙 토하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배가 흔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기저기서 우웩우웩 하며 뱃속의 것들을 올려냈다. '아이고, 나 죽네' 하는 사람들 한쪽에선 일 분이 멀다 하고 우웩우웩 질러대는 소리에 '아이고, 참. 사람들 식겁하네' 하면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었다.
한쪽에선 괙괙, 한쪽에선 하하하. 이런 상황이 우스워 '아, 진짜 이 아줌마들 웃긴다'며 나도 혼자 큭큭 댔다. 사태가 심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 한편으론 뱃길의 긴장감을 내려주는 해프닝의 현장이었다
대마도 여행을 마음먹은 데는 이 배를 타기 위함이 제일 컸다.
나는 배를 탄 경험이 별로 없는데, 3년 전 울릉도를 다녀올 때 그야말로 식겁했던 일이 있었다. 큰 파도가 몰려와 유리창을 탕탕 때리고, 배는 파도의 높이를 타고 심각하게 흔들려 사람들과 짐들이 반복적으로 이리로 쏠리고 저리로 쏠리는, 정신줄이 나가는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고, 토사용 비닐봉지가 모자라 여기저기서 봉지요, 봉지요 하며 찾기도 했다.
나는 배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이러다가 바다귀신이 되는 거 아냐. 애들은 어떡하노.' 의자 손잡이만 꽉 잡고 어떡하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가던 여름 때라 나는 두려움이 워낙 커서 토도 나오지 않았다. 울렁거리는 속이 문제가 아니라 공포감이 문제였다. 같이 간 언니와 형부는 손잡이에서 손도 못 떼고 겁에 질려 있는 나를 보고, 좀 심하긴 한데 이 정도로 배가 뒤집히지는 않는다고 안심시켰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형부는 울릉도가 고향이라 뱃길에 대해 잘 알았지만, 내 공포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갈수록 파도가 더 심해지는 느낌이 들어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들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지금 배 타고 나가는데 파도가 너무 심해. 그렇게 알고. 목소리라도 서로 들어놔야 될 것 같아서..."
집에 아이들은 이 일을 두고, 바다나 배 얘기만 나오면 나를 놀려 먹었다.
"아 엄마, 그때 목소리 진짜 쩔었어. 하하하..."
아무튼 나로선 바다, 배, 이런 건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선박 사고 뉴스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이번에 아들이 대마도로 배 타고 가는 걸 권하길래 도무지 못 갈 것 같다고 거절하다가, 우선 큰 배 타고 가니까 안전하고, 한 시간 이십 분이면 도착한다고 안심시키면서 몇 번 권유하길래, 서서히 발동이 걸렸던 것이다.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은 휘황찬란했고, 출국수속도 간단했다. 가이드를 따라 니나호에 이르자, 드디어 다시 배를 타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내 자리를 찾아 앉으니 역시나 창가였다. 파도가 치던 울릉도 여객선 유리창처럼 소금기의 흔적들이 흥건했다.
배가 서서히 흔들거리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다소 잔잔한 바다를 보며 무사히, 두렵지 않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빌었다. 그러나 부산항을 출발하고 20분쯤 지났을까. 방송에서 오늘 파고가 다른 때보다 좀 높고, 풍속이 몇 노트라 예정 시간보다 좀 더 걸릴 것 같다며 승객들에게 안전 주의사항을 알렸다.
'나는 진짜 바다하고 안 친한가 보다. 제발 무사히만 가다오.'
그렇게 빌며 바다만 응시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탄 초등학생 둘이 멀미를 했다. 작은 아이는 토하고 자고, 큰 아이는 욕을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아무려면 어떠랴, 내 한 몸이나 잘 챙기자는 마음으로 커져가는 파도를 보는데, 파도가 산을 이루었다가 능선을 이루더니 아래로 툭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옆자리 애들 엄마는 몇 번을 가도 오늘처럼 파도가 크진 않았다며 근심을 보였다. 예보보다 파도가 컸던 것이다.
'나는 어째야 하나. 배 타는 두려움을 떨치려고 마음먹고 나왔는데. 바다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나.'
나는 하는 수 없이 주문을 했다.
'파도를 탄다, 파도를 탄다.'
'선장이 운전하는 배로 나는 파도만 타는 거니까 얼마나 편하냐. 일부러 파도타기도 하는데, 나는 얼마나 편하게 파도놀이를 하느냐.'
파도가 큰 산을 이루고 물밭이 넓어질수록 이리 일렁 저리 일렁 배가 기울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해서 주문을 했다.
'파도를 탄다, 파도를 탄다.'
그렇게 하니 신기하게도 내 몸은 파도와 같이 움직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내 뱃속은 아무런 증상도 일지 않았다. 나는 파도타기를 하며 바다를 이기고 있었다. 긴장 없이 몸은 가볍게 파도를 따라 놀았다. 놀라웠다.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화장실이 있는 뒤쪽으로 몰려들어 '아이고, 여기도 복잡하네. 마, 그냥 니 자리에서 토해 뿌라' 하는 말과 '아이고, 우짜노.' 하며 파도의 리듬에 맞춰 토하는 일행을 토닥이면서 또 하하하 웃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이 더러 있었던 모양인지 겁도 내지 않는 눈치였다. 내 입장에선 기묘할 수밖에 없는 뱃길이었다.
대마도 히타카츠항까지 2시간 20분이나 걸려 무사히 도착했다. 보통 때보다 한 시간이나 더 걸린 거란다. 나로선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배에서 내리는 나는 완전히 이기고 돌아온 자의 얼굴이 되어 옆자리의 모녀에게 '에구, 고생했어요' 라며 위로의 인사말을 건넸다.
나에겐 이번 대마도 뱃길이 의미가 크다.
'두려울수록 힘을 빼고 대상의 마음이 되어 가보는 것. 그러면 상대가 자연스레 자신의 리듬을 보여준다는 것.'
그러면 나는 그 리듬에 올라타면 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바다는 나에게 시였다. 두려움을 싣고 떠났다가 두려움을 내려놓는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 '파도를 탄다'라고 주문하던 그 순간은 바다가 나에게 보여준 시적 순간이었음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두려울수록
'파도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