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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아나무 Jun 27. 2024

뜨악! 기상 이변 코스모스

조화가 깨지다

 뜨악! 코스모스 꽃이 피었다. 오늘은 하지(夏至)인데.


마당에 나가니 이른 아침 공기가 가을 아침처럼 서늘하다. 나무들도 풀들도 무성하게 자라나 제각기 씨앗을 부풀리고 있는데, 마당가 한쪽에는 코스모스가 벌써 여러 송이 피었다. 낮에는 이른 불볕더위, 새벽에는 서늘한 기온이라 코스모스가 계절을 잃어버렸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볼수록 근심스럽다.

뜨거운 한여름을 지나 조금씩 서늘해지는 가을바람이 불어야 방긋방긋 꽃을 보여주는 것이 코스모스다. 낮이 제일 긴 하지, 본격적으로 작렬하는 여름으로 가는 계절,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되는 유월 하순에 가을꽃을 보다니. 


코스모스는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가을을 알리는 계절꽃이다. 우리 세대에는 귀에 익숙한 이 노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이 노래 하나로도 가을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는데, 이젠 계절감을 잃어버린 이 노래를 언제 불러야 하나. 

하얀 실구름, 파아란 하늘, 따끔한 가을햇살 아래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꽃무늬 치맛자락을 하늘거리며 코스모스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옆모습을 이제 이 노래에서 찾을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인가.

때가 되었다고 피어난 꽃을 보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보다는 놀랍고 두려운 마음 상태가 되고 보니 머리가 무거워진다. 기후변화를 우리 집 마당에서 실감하는 중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계절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날에 코스모스를 보니, 먼저 봄과 가을의 고유한 특징이 사라지고, 거기에 서서히 여름의 특징이 섞여버리고, 그러다가 겨울을 겨울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진 않을지 우려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봄, 가을은 사라지고, 뜨겁거나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만 남아서 '여름'이라 하는, '겨울'이라 하는 두 계절 속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도 폭염, 폭한, 폭우, 극심한 가뭄 등 극단을 달리는 '폭'의 환경이 느닷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두 계절이 되면 '폭'의 빈도는 더 증가할 것이다. 가운데가 없는, 숨 고를 조절 기능을 상실해 가는 기후 속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얼마나 맹렬해질까. 계절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만큼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는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를까. 어쩌면 더 무력해질지도 모른다.


2009년부터 기상청에서는 장마 기간을 따로 예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갑자기 덥고, 갑자기 춥고, 갑자기 폭우가 내리고, 갑자기 우박이 떨어지는 '갑작스런' 현상들 때문에 예고가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란다.

예전에는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라고 말했다. 일정한 흐름에서 있을 수 있는 변덕 같은 것으로 보아 순하고 너그럽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변덕의 상태를 넘어서 '갑작스러움'과 '퍼부음'으로 변해버려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버렸다. 그러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분간되지 않는 계절이 되어버리면 식물들도 패닉 상태에 빠져버릴 것이다. 

어느 때에 나가서 꽃을 피워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지구 생명체의 조건인 지수화풍의 조화가 깨져 지수화풍이 성질을 부리면 살아내기가 그만큼 힘이 들고 예민해진다. 이런 기후변화는 벌써부터 예고되었으나 변화를 막을 실천적인 인식과 노력에 대해 인류의 산업화 과정은, 세계의 정부는, 그리고 편리성을 쫓는 개인들은 너무나 책임감 없는 상태로 내달려와 버렸다. 게다가 포탄을 퍼부어대는 지금의 전쟁 상황은 지구환경에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서울의 한 초등학생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지구환경을 살리는 일을 자신의 진로로 정했다고 하는 뉴스를 봤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구 환경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으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는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행동하는 일에 나서겠다고 당차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감과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인류는 대멸종을 피할 수 있을까>(신인철 저)에 따르면 다섯 번의 대멸종을 가져온 기후 변화는 주로 자연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주로 "인류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농업, 축산업, 공업 등으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온실가스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와 냉각화가 반복되던 사이클이 최근 화석 연료의 남용으로 화산 폭발 등에 의해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발생과 그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발생, 인간의 육식 소비를 위해 사육되는 소의 트림 등으로 인한 축산업에서의 메탄가스 방출 등이 주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섯 번째 대멸종을 더 먼 미래로 미루기 위해 화석연료 남용과 대규모 축산으로 인한 기후 변화를 인간의 노력으로 막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초등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려면 우리는 적어도 일상에서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노력이 생활습관으로 배어들어 일상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유기적으로 연동된 정책들이 있어야 한다. 열심히 분리수거를 해놓으면 뭣하나. 쓰레기 하치장에 가면 처리 비용 때문에 그대로 한 통속의 무덤이 되어버린다는데. 

생활방식을 바꾸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현대사회인가 하는 비관적 생각도 들고, 지구 환경에 대변혁이 일어나 현 인류가 사라지면 그다음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잘 상상되지 않는 물음도 가져보면서, 이 거대한 온실가스 발생 구조 속에서 하나의 작은 실천이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무력감마저 든다.


그래도 우리는 먼저, 생활에서 발생하는 낭비와 쓰레기를 줄이는 일을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데, 소비 중심의 생활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집안의 쓰레기를 비롯해서 쓰레기 집하장의 쓰레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육식 위주의 아이들도 서서히 채식 위주의 몸으로 바꾸어가도록 음식환경에 관한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스모스.   6월~10월에 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와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주로 9월부터 10월 초순까지 가을철에 집중적으로 피어나는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가을 하면 코스모스, 코스모스 하면 가을이 상기되는 꽃이다. 


cosmos.   질서와 조화를 갖는 우주나 세계를 뜻한다. <코스모스>는 이 지구를 비롯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 탄생과 죽음, 생명의 탄생 등에 관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명쾌하게 설명한 책 제목이다. 



이렇게 보면 가을꽃 코스모스는 꽃말에서도 보이듯이 '조화'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 '조화'를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깨지고 있다. 조화는 균형이고 질서이며, 모든 사물이 자기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되도록 하는 존재의 힘이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가 그 계절감이 희미해져서 하지에 코스모스가 피는 것은 분명 위기의 시대다. 변화가 거듭되고 거듭되어 본질까지 변화되면, 그렇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내는 게 생명체의 생명력이긴 하지만, 분명 조화와 균형이 깨지는 이 상황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존재 상태가 될 것 같다. 엄청난 고통을 치러내면서 살아낸 지구는 지금까지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지구에 사는 생명체는 지금까지의 존재가 아닌 점점 괴물적으로 변한 생명체들이 되어 살아가지 않을까.

인간의 기술력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어떻게 지구의 근본인 지수화풍을 건드려 이기겠는가. 생명의 모체를 바꾸고서는 지금과 같은 생명체의 DNA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외계인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도 아직 한 번도 지구의 생명체보다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다. 물론 지구 생명체의 입장이긴 하지만, 우리가 없고서 어찌 다른 생명체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코스모스의 또 다른 꽃말은 순종이고 애정이다. 우리 땅에서 가을 코스모스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으로 회복하고, 자연세계를 탐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연세계의 조화가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시적 순간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화'를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깨지고 있는 유월 아침이 쓰리고 겁이 난다. 이번 여름엔 또 얼마나 뜨거운 폭염과 큰 폭우가 들이닥칠지. 이 순간들을 어떻게 시적 순간들로 전환해야 하는지, 질문만 생기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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