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
얼마 전 정미경 작가의 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하고는 나는 한참 동안 읽기를 멈추었다.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우니까.
어떤 마음일까.
비록 소설 속 문장이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다시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문처럼 하고 사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그런 비숫한 말을 한, 한 노인이 떠올랐다.
"이 좋은 세상, 죽기는 왜 죽어!"
이 말을 하시던 노인은 당시 지병인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어 숨 쉴 때마다 쉑쉑 소리가 나고 기침을 달고 사셨다. 평소 위장병 때문에 음식도 남이 주는 것은 절대 먹지 않고 자신이 직접 끓여 드셨다. 조그마한 일에도 그저 "고마워서 어째" 하시며 몸 둘 바를 몰라하셨고, 남에게 베풀 때는 자신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은 것을 주면서도 "이리 시답잖은 걸 드려서 어째" 하면서 미안해하셨다.
노인은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하나 있는 아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남의 집 후처가 되었고, 거기서 아들 하나를 또 낳으셨다. 첩살이라는 오명을 평생 씻지 못할 죄로 여겼지만 어린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온갖 수모를 참으며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자신이 일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일절 탐내지 않았으며 공짜로 주는 남의 것은 뭐 묻은 것처럼 거절하셨다는 성품은 우리 가족과 알고 지낸 뒤에도 여전하셨다. 그렇게 키워낸 큰 아들은 남의 첩살이 엄마가 부끄럽다며 발길을 끊었고,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둘째 아들은 세상없는 효자여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때때로 노인에게 들렀다.
명절이 되면 우리 가족들과 같이 술도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들은 엄마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자 해도 한사코 안 가겠다 하신다며 하소연을 했고, 노인은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뭔 낯짝으로 거길 가. 이리 잘 살아 주는 것만도 고맙지' 하며 자주 오지 말라고 하셨다. 아들이 가고 난 뒤 나의 시어머니께서 "왜 그리 안 가는겨.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가면 아들 걱정 안 시키고 서로 좋잖여?" 하시면, "내가 뭔 낯짝으로 가. 첩의 자식이라고 맨날 놀림받고 큰집 애들한테 온갖 구박받고 고생한 자식인데, 아깝고 미안해서 못 가." 그러셨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인공공근로일을 다니시다가 된통 병이 나서 고열에 천식앓이를 심하게 하셨다. 어머니와 병문안을 했을 때, 어머니께서
"에구, 노인네 이제 살면 얼마나 살 거라고, 아파 고생하느니 이제 딱 가면 좋을 낀데."
하시니, 노인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아이구 어마이, 이 좋은 세상, 죽기는 왜 죽어! 얼매나 좋은 세상이여 지금이."
여든이 넘은 노인들끼리 주고받는 흔히 있는 위로의 말인데, 노인은 정색을 하며 받아쳤다. 그 바람에 기침을 해대셨다.
"요래 기침을 해 싸면서 더 살고 싶은겨?"
"암만. 뭔 걱정이여. 나라에서 쌀 주제, 용돈 주제, 누가 손가락질하는 사람 있나. 지금 세상이야 얼매나 좋아."
웬만하면 '죽고 싶다'를 달고 사셨을 팔십 대 노인이 그렇게 골골해 외출도 잘 못하셨는데도 좋다 좋다 하셨다. 그리고 몇 년을 더 사시다가 저 편한 세상으로 가셨다.
당시에 나는 노인의 마음을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들이 있다지만 일상을 혼자 살아가는 노인에게 이 세상이 '이렇게 좋은 세상'이라니, 그것도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첩살이에 홀로 자식을 키우며 온갖 고난을 겪었던 노인이.
지금 생각해 보면, 노인에겐 어머니집에 세 들어 살던 그때가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의식주 걱정 없이 오롯이 자신을 지키고 살 수 있었으니, 험난한 시대와 인생을 살아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겸손한 만족이었지 싶다.
이웃에게 자신이 베풀면서도 언제나 '고맙다' 하고, 작은 것이라도 받으면 그저 몸 둘 바를 몰라하시며, 홀로, 냄비에 흰 죽을 끓여 드시면서도 '이 좋은 세상'이라고 하시던 그 순간들은 노인을 살게 한 '이 좋은' 시적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의 알 수 없는 죽음 끝 비밀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던 말이지만, 그에게도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운' 시 같은 순간들이어서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그토록 아름다운 어떤 순간들이라도, 일천 번을 더 살고 싶을 만큼 연연해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