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기 전 나를 위해 사용했던 연차는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 돼버린 지 오래다. 지끈 거리는 머리, 갑자기 찾아오는 복통, 회식으로 술병이 나도 나는 무조건 출근이었다. 내가 아플 때 쓰는 연차는 사치였다. 언제 아플지 모를 아이를 위해 늘 모아둬야 했다.
그렇게 모은 연차는 오롯이 아이가 아파서 등원이 어려울 때 사용한다. 거짓말처럼 1년에 한두 번은 꼭 이렇게 모아둔 연차가 유용히 사용해질 때가 온다. 수족구, 아데노바이러스, 여름방학 등 가정보육이 꼭 필요한 때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전염성이 강한 수족구이다. 수족구는 폐렴 직전의 기관지염으로 일주일 넘게 가정보육을 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아이의 면역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다 낫는 데까지 빨라야 일주일에서 길게는 3주까지 등원을 하지 못한다. 바쁜 시기에 아이까지 수족구에 걸린다면 정말 진퇴양난인 셈이다.
'띠링~'
키즈노트에 알람 공지가 떴다.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가 열이 나서 하원했는데 수족구 판정이라는 공지였다. 아이에게 증상은 아직 없었고, 전염되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바랐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던데, 간절함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날 저녁, 아이는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힘이 없는지 계속 누우려고 했다. 몸을 만져보니 불덩이 같길래 황급히 체온을 쟀더니 39도였다.
'비상사태다. 고열이라니.'
남편은 해열제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물수건으로 아이의 체온을 낮추려 노력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열이 조금씩 내려갔지만 아직 10시밖에 되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은 새벽에 열이 많이 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2시간마다 열 체크를 해야 하고,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교차복용시켜야 한다.
그날 잠은 다 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빠르게 생각을 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중 누군가는 아이를 케어해야만 했다. 다음 날 장거리 운전이 예정되어 있는 남편은 일정을 취소할 수 없었고 거실에서 자도록 했다.
밤 12시, 열은 또다시 39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다행히 해열제를 복용시키면 곧 내려갔다. 밤새 그렇게 아이의 열은 오르락내리락했고 가라앉을 듯 가라앉지 않았다.
오전 일곱 시가 다가오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프지만 회사에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급여 전이라 바쁜 기간이고, 얼마 전 아이가 아파서 연차를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눈치가 보였다. 아이가 아파서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회사에 얘기하려니 더 머리가 아팠다.
회사에 어떻게 얘기할지 걱정하느라 잠도 설쳤다. 눈치가 많이 보였지만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두 눈 꼭 감고 용기를 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내 걱정과는 달리 선임은 흔쾌히 결재해 주었고, 그렇게 혼자만의 눈치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부터는 진짜 아이만 신경 써도 된다. 연차를 얘기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서둘러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타 근처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아이의 목이 많이 부어있고 입 속에 수포가 여럿 있다고 했다.
역시나 수족구였다.
집으로 돌아와 약 먹이기 전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데 쉽지 않았다. 몇 번 실랑이를 했지만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이는 입 안이 아픈지 밥을 입에 넣으면 엉엉 울었다. 아이와 나 둘 모두에게 감정소모인듯하여 결국 밥 먹이지 않고 약만 먹이기로 했다.
내 생각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입에 약을 넣어주니 주르륵하고 뱉어버린다. 사탕 준다는 설득도 통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열은 계속 올랐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우는 아이 입에 억지로 약을 넣어야 했다. 애도 울고 나도 울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다. 힘든 내 마음을 위로해 주듯 2번의 약 복용 후 아이의 열이 완전히 내렸다.
아이의 열이 내리고 나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수족구면 일주일 동안 등원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회사에 이를 알려야 한다. 남편과 조율 끝에 다음날 하루만 더 연차를 쓰고 남편이 남은 기간을 돌보기로 했다.
이렇게 바쁜 기간.. 다음 날도 연차를 사용해야겠다고 말하면서 엄청난 눈치가 보였다. 아.. 내가 내고 싶어서 낸 연차도 아닌데 말이다. 일하면서 육아하기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