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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희 Aug 16. 2023

사표 쓰고 싶은 날

내기 전에 최대한 버텨보자

일도 너무 하기 싫고, 출근하기도 싫은데, 아이도 아프다. 이건 바로 사표 쓰라는 신의 계시 아닐까? 사표가 내 눈앞을 어른거린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월요일 출근길, 오늘은 사표 쓰고 싶은 날이다.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사표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의 사표는 그리 쉽게 쓸 수 없는 것을 말이다. 나의 남편은 커리어 욕심은 없다. 오히려 육아와 살림에 관심이 많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나 또한 돈 몇푼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벌어오길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부족한 만큼 내가 버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어쨋든,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이면 매번 나를 위해 따뜻한 저녁밥을 챙겨줬다.


"힘들었을 텐데 배달시키지."


"별로 안 힘들었어. 너희 먹는거 보면 좋아~"


그렇다. 내 남편은 흔히 말하는 가정적인 남편으로 아이 돌보거나 살림에 열정적이다. 


가정이 있는데 사표를 쓰려면, 경제적인 상황을 먼저 고려해야한다. 내가 힘들다고 퇴사하고 사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어느 한쪽은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 맞벌이로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결정해야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경제활동을 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육아와 살림을 도맡게 된다.


만약 둘 중 한 사람이 육아를 맡아야 한다면 누가 하는 것이 맞을까? 꼭 여자가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야할 필요는 없다. 서로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나의 경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사람이라 일이 힘들어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살림이나 육아의 경우 정말 하기 힘들고 어려웠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어 허탈감을 느끼곤 했다.


반면 남편은 나와 정 반대였다. 일에 대한 욕심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다. 아이가 먹을 반찬을 고민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하는거라 전혀 힘들지 않다며 쌓이지 않도록 매번 돌려주었다. 생필품이 떨어져 마트에 가면 이것저것 고르며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힘듬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쪽이 육아와 살림을 맡아야 한다면, 그건 남편이 더 적합할 것이다. 내가 그만두고 싶어서 사표를 내더라도, 육아와 살림으로 느꼈던 그 힘듬을 견딜 수 있을까? 


누구는 나가서 돈을 버는게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나가서 돈 버는게 더 쉽다고 느꼈다. 커피 마실 여유도 있고, 사회 활동을 위한 술자리도 가끔 즐길 수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오늘 힘들었나보네 하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 버는 일이 절대 쉬운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사표를 내는 것이지 않을까.


어쨋든 이렇게 회사일보다 육아일이 더 힘든 나에게 사표는 로망이다. 절대 대책 없이 퇴사를 결정해서는 안된다. 쏟아진 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나는 간간히 찾아오는 사표 충동을 최대한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결정은 몇 년 되지 않아 무너졌다. 내가 사표를 낸 이유는 아이가 아파서도,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업무 능력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해서였다. 아이로 인해 잦은 연차사용과 3개월의 휴직은 빨간줄처럼 나의 평가에 매번 악영향을 끼쳤다. 승진은 몇 년간 누락되었고, 내가 일한 것만큼 평가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동료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점차 퇴사를 향한 마음을 커지게 되었다.


동료는 아무리 바빠도 칼퇴근을 했고, 이 업무는 어려우니 다른 일을 달라고 말할 정도로 승진이나 인사고과에 관심이 없었다. 반면 나는 복직 후부터 한 달에 절반은 야근해야할 정도로 많은 일을 처리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 더 열심히 일을했다. 그런데 그런 나보다 동료의 승진이 더 빨랐다. 쟤는 나보다 평가가 좋네? 결혼을 안해서 그런가? 남자라서 그런건가?


그가 나보다 승진이 빨랐던 이유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열심히 한 나에 대한 대우가 이렇게 하면 안된다.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을 해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했던 것일까?'


수 많은 위기를 헤쳐 낸 나에게 사표 쓰고 싶은 날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이직을 준비했다.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되었을 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 속 간직해둔 사표가 제출되었다. 회사는 이미 나에 대한 평가를 끝냈고, 그 인식을 뒤집으려면 새로 쌓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그 노력을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 쌓는 것이 더 쉽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사표 쓰고 싶은 날마다 일단 참아봐라. 이렇게 몇 번 참고 또 참아봐라. 나는 10번 이상 참았는데도 가끔 후회가 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후회는 한다는 것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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